“제복의 품격이 국격이다”...“AI 등 치안도 과학화 급해”

순직 경관 유족돕기 ‘100원의 기적’ 성과 자부심
이태원 참사 등 가슴 아파… 굴곡진 2년 큰 경험

검푸른 제복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공복(公僕)의 색깔이다. 빛나는 견장 무궁화 4개는 국민이 달아준 한량없는 무게를 지닌다. 남들이 우러르는 가슴의 약장은 그저 가슴에 담으라는 뜻일 게다. 여전히 빛나는 구두의 광채는 그가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비춘다. 그게 제복의 사나이가 지니는 품격이다. 그 품격은 자부심과 자긍심을 품어 국격으로 나아간다. 14만 경찰의 총수 윤희근 경찰청장의 제복 30여년. 아쉬운 일은 눈에 밟히고 가시처럼 목을 찌르지만 보람은 자랑할수록 닳아 없어지는 일이라며 지난 세월 경찰의 길을 되뇐다. 제복의 국격과 공직의 품격. 2년 임기를 다하는 윤 청장에게 격론(格論)을 듣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윤희근 경찰청장 약력

1968년 충북 청주 출생

2021.12. 경찰청 경비국장

2022.6 경찰청 차장

2022.8.~ 현 제23대 경찰청장

 

이영애 발행인_ 부임하신 지 2년이 다 돼 갑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윤희근 경찰청장_ 세월이 어떻게 흘렀나 하는 생각도 들고, 아쉬움이 묻어나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영애_ 자치경찰제가 실시된 지 3년이 다 되 가는데 아직 체감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성과가 있나요?

윤희근_ 우리 국민이 센 거를 원한다는 걸 알았어요.(웃음) 한국형 자치경찰제인데 즉 이원화된 경찰제도인데 국민들께서는 자치단체장들이 지휘도 하고 인사권도 행사하고 아마 그런 걸 염두에 두신 것 같습니다만 그렇지 않아 와 닿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좀 시간이 지나면 개선될 거라 생각합니다.

 

이영애_ 경찰청장직을 수행하면서 잘한 것도 있고 잘 못한 것도 있다고 봅니다. 어떠신가요?

윤희근_ (목소리가 조금 높아지며 표정이 진지해진다) 저는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취임 때부터 일관되게 생각한 게 국격과 품격입니다. 국격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게 바로 법질서입니다. 저는 2년 동안 경찰의 노력도 있었지만 질서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고 봅니다. 화물연대나 건설현장 등에 만연돼 있던 이른바 ‘떼법’ ‘민폐’ 등이 좀 달라졌다 하는 게 국격과 연결지을 수 있는 법질서의 회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영애_ 품격은 어떤가요?

윤희근_ 제복은 바로 제복의 품격입니다. 제복을 입은 공직자들이 자긍심과 명예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품격의 바탕인데 그런 면에서 제가 일조를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안직 기본급 인상입니다. 공안직은 일반직보다 업무 난이도가 높고 불확실성이 높아 상대적으로 우대를 해주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입니다. 우리는 수십년동안 그렇지 못했습니다. 줄기차게 요구한 끝에 현 정부들어 실현이 됐습니다. 또 공무 수행 중에 순직했을 경우 그에 맞게 처우해주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작지만 굉장한 진일보입니다.

 

 

이영애_ 보람도 있었지만 아쉬움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윤희근_ 제가 청장을 그만두더라도 많은 분들은 저를 이태원참사와 연관지어 생각하실 거라 짐작됩니다. 사실 그 이태원참사가 가장 가슴아픈 부분입니다. 사고 원인에 대한 말도 많았고 지금은 달라진 게 뭐 있느냐 등 하실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참사와 관련해 재판 중이라 섣불리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그 아픈 과정을 겪고 경찰 업무 시스템부터 재난 접근 방식 재검토, 우리 자체 업무 시스템 등 관련해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귀중한 계기로 삼았습니다.

 

이영애_ 변화의 계기로 삼았다니 다행입니다. 국민체감 약속 1호로 악성 사기 근절을 말씀하셨는데, 성과는 어떤가요?

윤희근_ 당시에는 특히 전세사기, 보이스피싱 사기 등이 가장 기승을 부렸습니다. 제가 청장 취임 청문회를 앞두고 치안력이 필요한 부분 조사를 했더니 전세사기가 1위였어요. 저는 그때 이를 경제적 살인이라고 불렀어요. 개인과 가정을 파괴하는 악질 범죄인데도 심각성을 잘 모르고 있던 터라 저희 수사력을 대거 투입해 단기간에 성과를 올렸었죠.

 

이영애_ 요즘은 문자사기도 부쩍 는 것 같아요

윤희근_ 저희 경찰이 사건 조사를 위해 출석 문자를 보내도 열에 일곱여덟은 안 봅니다. 전화도 안 받아요. 그만큼 피해를 보았고 불신이 커졌죠. 결론적으로 저희 경찰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과기정통부와 금감원 등과 머리를 맞대야 해결책이 나오리라 믿습니다.

 

이영애_ 화제를 가볍게 해보렵니다. 순직 경찰 유족을 돕는 100원의 기적이 있다는데 궁금합니다.

윤희근_ 간단히 말하면 저희 현직 경찰이 매달 자발적으로 100원 또는 1천원을 월급에서 자동이체하는 겁니다. 그러면 한 달에 5천만원 정도, 1년이면 6억 됩니다. 5년 전인가요. 한강순찰대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하려던 한 분을 구하려다 순직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부인은 임신 4개월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충격으로 지체아를 조기출산했습니다. 제가 청장으로 여러 유족들을 모시고 오찬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그 분을 뵀죠. 어린 아이 특수교육 등 비용 대느라 몹시 힘들어했습니다. 국가 지원이 좀 있었지만 많이 모자르죠.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경찰 구성원들의 십시일반이었죠. 돈을 모아 순직 경찰 미성년 자녀에게 매달 얼마씩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영애_ 유족들에겐 큰 도움이 되겠네요.

윤희근_ 2년 뒤 다시 보니 가족들 얼굴이 많이 폈어요. 저도 순간 뿌듯해졌고 우리 경찰 구성원들이 자부심을 가져도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자긍심을 심어준 일이 제가 가장 잘한 일 첫손에 꼽습니다. 또 부산에서 화재 현장에 출동한 여경이 화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가에서 주는 간병비가 턱없이 낮아 엄청 힘들어 하더라고요. 정부를 설득한 끝에 간병비 현실화를 이뤄냈습니다.

 

 

이영애_ 장기 재직 경찰관에 대한 예우로 국립 현충원 안장 문제도 거론되고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윤희근_ 현충원을 포함한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는 사실상 90% 이상 군인들이죠. 그러나 우리 같은 경찰이나 소방 해경도 나라에 헌신하고 희생합니다. 지금 전국 어디에선가 공상을 당하기도 하고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이들에 대한 예우를 개선하는 게 글로벌 기준에 맞는 국격 회복이라고 봅니다. 지금은 국립묘지 안장 대상을 30년 이상 근무 정년퇴직자에 한하고 있는데 기준이 너무 엄격합니다. 조금 낮추는 안을 연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영애_ 미래 치안이라는 좀 생소한 어젠다를 내걸었습니다. 설명 부탁드립니다.

윤희근_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데 치안도 선제적으로 대응하자라는 취지입니다.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는데 치안 수요가 어떻게 바뀌고 범죄 양상은 또 어떻게 변하는가 등을 미리 대비하자라는 차원에서 화두를 던진 겁니다. 미래 치안은 세가지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 과학 치안입니다. 예를 들어 AI기술을 수사 기법에 응용하는 것이고 둘째는 글로벌 치안입니다. 이젠 범죄가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는 초국경 범죄가 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제협력이 어느때보다 중요합니다. 제가 일본 중국의 치안총수를 만나고 온 것도 그런 배경입니다. 세 번째는 플랫품 치안이라고 할 수 있죠. 범죄 양상이 자꾸 복잡해지는 가운데 여러 단체들이 한 이슈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게 저희가 판을 깔아준다는 거죠. 예를 들어 주취자 문제를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해결책을 공동 모색하자는 얘기입니다.

 

이영애_ 청장님이 오늘 취임한다면 스스로 본인에게 무슨 말씀을 해주실 수 있나요?

윤희근 _‘ 초심을 잃지 말고 담대하게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의 공직 생활 37년을 관통하는 정신은 조국 정의 명예입니다. 2년 동안 초심을 잃지 않고 중심을 잡는다면 물론 그 동안 많은 변수와 변화가 있겠지만 원대한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집니다. 외부에서 아무리 흔들어도 반전의 기회는 또 옵니다. 저처럼 굴곡 많은 청장이 또 있었나 하는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이영애_ 후배들에게 어떤 청장님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까?

윤희근_ 대한민국 경찰이 윤희근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있다는 말을 후배들이 농 삼아 합니다만 어불성설이고요, 저는 오로지 제복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영원한 경찰로 남고 싶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후배들에게 당부한다면 우선 ‘공부를 하라 그리고 미래를 고민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영애_ 14만 경찰의 마음을 이 인터뷰로 어떻게 다 담을 수 있겠습니까? 경찰관 여러분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청장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방정부티비유=티비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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