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지방 문제가 심각하다. 특단의 조치를 하지 않으면 지역 격차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지방도시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수도권이 인구, 자원, 산업을 다 빨아들였기 때문에 지방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지방에서 유출되는 인구가 어디로 갔느냐 하면 지방의 대도시권으로 이동했다. 또 대도시권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2차 이동 현상이 같이 발생하고 있다.
수도권 집중 현상의 큰 원인 중 하나는 대도시권의 인구가 수도권으로 집중되기 때문이다. 부산이나 대구 같은 대도시의 주변 생활권을 포함한 대도시권 인구를 보면 아직은 지방이 버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도시권 이외 지역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고 대도시권의 젊은이가 수도권으로 이동하고 있다. 수도권에서는 젊은 층 중심으로 외곽으로 밀려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저출산, 집값 등 여러 문제가 공간 분포와 관련돼 있다. 청년들이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교외로 밀려난다. 실제 청년들의 통근시간을 보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청년들의 고통스러운 상황의 이면에는 이런 공간의 쏠림 현상과 관련돼 있다. 그래서 이런 공간 분포를 어떤 식으로 재조정할 것인가에 따라서 다양한 문제를 풀 수 있다. 현재의 수도권 집중 현상은 대도시권화 현상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배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시장이 그렇게 원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우리 국토를 어떤 식으로 고르게 분포시킬 것인가에 이런 사회적 문제들을 풀 수 있는 키가 있다고 본다. 여기에 덧붙여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 있다. 산업구조조정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고 혁신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혁신기업이 성장하는 터가 수도권, 수도권에서도 서울, 서울에서도 부도심, 그중에서도 강남 같은 지역에 집중돼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이런 혁신성장의 산업적 배경 속에서 어떻게 균형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성장 동력이 떨어질 때는 좀 더 일자리가 보이는 곳, 그다음에 거점중심으로 사람과 자원이 재편된다. 그 과정에서 광역 교통이 빠르게 발전한다. 코로나19 시대에 원격근무를 하면 사람들이 분산될 것 같으나 정작 도시의 결절점으로의 집중 현상이 일어난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이런 교통의 결절점 중심으로 자원과 사람이 모일 것이다. 또 기계가 대체하기 쉬운 일자리가 어디에 많은가 분석해보니 비수도권 지역, 인구가 적은 지역에 몰려 있었다. 이것이 대도시권화를 부채질한다.
중소도시에서 대도시권으로 인구가 빨려가는 현상은 앞으로 대략 20년 정도 지속될 것이다. 20년 후에는 다시 대도시권 인구가 빠져나갈 것이다. 남은 불씨가 있을 때 지방의 대도시를 수도권과 어느 정도 대등한 규모로 키워야 그래도 뭔가 균형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226개 기초자치단체를 대상으로 분석하니 인구 불평등, 수입 불평등 지니계수가 점점 높아져 지역 간 불평등이 커지고 있다. 운동장이 더 많이 기울어질수록 격차에 가속도가 붙는다. 인구 격차, 산업 격차가 너무 기울어진 운동장이기 때문에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진다.
재정분권과 관련해 지금까지 나온 논의는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8대 2인데 문재인 정부 들어 7대 3을 거쳐 6대 4로 변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부자 지자체는 재정 수입이 늘어나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지자체는 그렇지 못해 재정 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
부자 지자체는 고령자, 청년 등에게 맞는 정책을 펴서 사람을 끌 수 있으나 가난한 지자체는 한계가 있다. 행정에서 이야기하는 티보가설은 시간 축 상에 연장됐을 때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방법이 한쪽은 통합, 다른 한쪽은 쪼개는 방법이다. 지역의 선을 어디에 긋느냐에 따라 실제로 인구가 줄어들 수도 늘어날 수도 있다. 재정분권은 너무나 소중한 가치이다. 하지만 분권을 위해 선행해야 할 일이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것이다.
일본의 행정구역 합병에서 얻는 교훈은, 지방분권이 격차를 완화한다는 순진한 레토릭은 등장하지 않았고 대도시 중심으로 흐르는 경제의 큰 방향에 대해 인정할 건 인정했으며 국토 전역에 선택과 집중 원리가 구현되도록 전략을 짠 점이다. 중소도시들의 인구 이탈을 막기 위해 도시들이 연합해 도시권을 형성하고 연계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일본은 지자체 간 인구, 재정 격차가 크게 나타나고 있고 대도시권 성장의 이익을 주변 지역과 나눌 수 있는 시스템이 부재했다. 일본의 공간 전략은 ‘압축과 연결’이지만 압축의 내용은 구체적이나 연결을 위한 구체적 사업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대도시권은 지역을 살리는 마지막 불씨다. 시장의 흐름은 공간적 흐름이고 시장의 힘에 대항하는 것은 헛수고다. 대도시권은 신산업 육성으로 국가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지방 대도시권은 특화 발전을 통해 광역 중심 지역으로 성장할 필요가 있다.
지방을 살리는 방법은 과거 정부의 지역 정책 속에 녹아 있다. 첫 번째 광역화 시각은 이명박 정부 정책, 혁신거점 육성은 노무현 정부 정책, 연계사업의 구축은 박근혜 정부 정책을 각각 차용한 것이다. 국토 전반에 걸친 압축(뭉치기) 전략과 네트워크(연결하기) 전략이 필요하다.
지방 중소도시들을 기능 연계로 합쳐 인구 30만 명 이상의 연합도시권을 형성해야 한다. 우리는 광역단체가 너무 힘이 없다. 광역 단위로 분권이 이뤄지고 지역 특색에 맞는 정책이 필요하다. 거점을 제대로 활용해 이익을 뽑아 주변 지역과 나누는 정책이 필요하다.
※ 이 글은 “한국판 뉴딜과 좋은 도시, 혁신공간” 주제 아래 자치와 균형 포럼에서 마강래 교수가 한 강의를 요약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