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사례

초고령사회의 새로운 주거 모델 영국 ‘서비스제공주택’

 

더 오래, 더 건강하게, 내 집에서

영국은 1976년에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후 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고령화에 대응하는 다양한 정책을 실험하며, 실패와 성과를 축적해왔다. 최근 영국이 주목하는 정책 중 하나는 고령자용 ‘서비스제공주택(service-led housing)’이다. 이 주택 모델은 단순한 거처를 넘어서, 고령자가 가능한한 오래, 독립적으로, 그리고 안전하게 살아 갈 수 있도록 주거와 돌봄 서비스를 결합한 형태다.

 

핵심은 ‘자기 집처럼 사는 것’이다. 입주자는 자신만의 현관문이 있는 독립 공간에 거주하며, 필요할 때만 맞춤형 돌봄서비스를 선택적으로 이용한다. 기존의 요양시설처럼 정해진 규칙과 획일적인 서비스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자율성과 존엄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서비스제공주택이 주목받는 이유

영국에서 서비스제공주택이 정책적 우선순위로 부상한 데는 네 가지 배경이 있다.

첫째는 고령자의 삶의 질 향상이다. 영국 보수당은 2010년 집권 이후 사회돌봄 정책의 핵심 원칙으로 ‘자기주도적 돌봄’과 ‘조기개입’을 내세웠다. 이에 따라 돌봄서비스 는 이용자가 직접 선택하고 설계할 수 있도록 했고, 주거 공간도 독립성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개편되었다.

 

둘째는 비용효율성이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서비스제공 주택에 거주하는 고령자는 일반 주택 거주자나 요양시설 이용자보다 병원 방문율과 입원율이 낮다. 신체적·인지적 기능 저하도 늦춰지는 경향이 있어 사회돌봄과 의료비 지출 모두 절감된다.

 

셋째는 병상 부족 문제 해결이다. 영국에서는 고령자의 퇴 원이 늦어지는 일이 빈번하다. 전체 퇴원 지연의 약 85% 가 65세 이상 환자에게서 발생하며, 주된 이유는 퇴원 이후 갈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서비스제공주택은 이들 의 안전한 퇴원을 유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으로 주목 받고 있다.

 

넷째는 세대 간 주거 불균형 문제다. 영국에서는 고령자가 필요 이상으로 큰 주택을 점유하고 있는 ‘주거공간 초과 점 유’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는 청장년층의 주택 구입 기 회를 줄이고, 주택시장 순환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고령 자가 더 작고 적합한 공간으로 이주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전체 주택시장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정책적 고민이 서비 스제공주택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서비스제공주택 vs 요양시설, 무엇이 다를까?

표면적으로는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구조와 운영 철학이 다르다. 우선 계약구조부터 다르다. 서비스제공 주택은 주거와 돌봄이 각각 별도 계약으로 분리되며, 입주자는 주택을 소유하거나 임대하고, 돌봄 서비스는 필요에 따라 유료로 이용한다. 반면, 요양시설은 주거와 돌봄이 통합된 단일 계약이며, 모든 서비스가 일률적으로 제공된다.

 

비용 구조에서도 차이가 있다. 서비스제공주택은 주택비와 돌봄비용이 각각 산정되며, 개인의 자산 수준에 따라 공공지원이 제공된다. 요양시설의 경우, 자산이 일정 기준 이상이면 모든 비용을 자부담해야 하며, 주택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주거지원금은 제공되지 않는다.

 

지방정부와 민간이 함께하는 모델

영국 정부는 2023년 고령자주택 시장에 민간 투자를 유도 하기 위해 ‘고령자주택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이 태스크 포스는 서비스제공주택의 정의와 기준을 명확히 하고, 민간이 참여할 수 있는 규제 환경을 마련하는 데 집중했다. 특히 태스크포스는 고령자의 돌봄 필요도를 기준으로 주거 유형을 세분화하고, 그에 맞는 서비스 및 인프라를 설계 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현재 영국에는 약 60만 호의 서비스제공주택이 존재하지만, 대부분 2000년 이전에 공급된 공공·비영리 주택이다. 민간 부문의 공급은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나 고령 인구 증가와 재정 부담 심화라는 이중 압박 속에서, 서비스제공주택은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 주는 시사점

한국은 2017년 고령사회에 진입한 이후, 7년 만인 2024년 말 초고령사회로 전환되었다. 정부는 최근 고령친화주거 공급 확대와 규제 완화를 포함한 대책을 발표했지만, 아직 제도적으로나 물량적으로 갈 길이 멀다.

 

특히 ‘장기요양 3~5등급’의 경증 요양자나 85세 이상 1인 가구처럼, 일반 재택돌봄으로는 부족하고 요양시설에 들 어가기에는 애매한 고령자층을 위한 새로운 주거 대안이 필요하다. 서비스제공주택은 이들의 자립성과 건강을 동시에 지킬 수 있는 유효한 모델이다.

 

주거는 복지다

주거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삶의 방식과 철학을 담는 그 릇이다. 특히 고령자에게는 생애 마지막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와 직결된 중요한 문제다. 영국이 보여준 서비스제 공주택의 사례는 고령사회의 다양한 과제들을 하나의 주 거정책으로 통합해 풀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도 이제부터는 ‘요양’과 ‘시설’만이 아닌, 다양한 대안 을 상상하고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서비스제공주택은 그 상상의 첫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고령자가 병원이 아닌 집 에서, 시설이 아닌 삶의 공간에서 마지막까지 사람답게 살 아갈 수 있도록. 그 출발점은 집다운 집에서 시작된다

 

[지방정부티비유=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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