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조직’은?
오래전 군복무시절, 대규모 모의군사훈련(War Game)에 참가한 적이 있다. 피아간에 공방이 치열한 전투 중에, 부대 병력의 30%가 전사나 부상 등의 손실을 입고 70% 정도 남게 되면 후방으로 빠지거나 다른 부대와합치는 등 재편이 이루어졌다. 그 부대가 이미 전투부대로서의 정상적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군 전술적인 측면 말고도, 우리 공공조직의 경우에도 겉모습만 온전한 조직이지 실제 들여다보면 정상적인 기능 수행이 어려운 이런 조직(소위 ‘좀비조직’)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좀비조직에 관한 에피소드(Episode) 하나
과거 A기관에 근무하면서 그 기관의 인력운용 실태를 면밀히 살펴본 일이 있다. 그 기관은 책정된 정원의 100% 중에 실제 일하는 인력은 70% 정도 수준이었다.
정원의 10% 정도는 육아와 유학, 질병 등에 따른 휴직인원이었고(물론 휴직 인원에 대해서는 일부 충원이 되거나 한시임기제를 활용하고 있었지만 업무 역량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 외10% 정도는 조직의 인력운용 방침상 결원(빈자리)으로 놔두거나 아니면 다른 기관의 중요한 현안 등에 인력지원(비별도 파견, 근무
지원 등)으로 비워져있는 자리들이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나머지 정원의 10% 정도도 조직 부적응자나 문제 유발자, 정년 임박자, 외국 유학 가기 전잠시 와있는 경우, 그 외 건강상 이유로 사실상 일하기가 쉽지 않은 업무 부적절자 등으로 채워져 있어 조직기여도가 그리 높지 않은 경우들이었다. 결국 그러다보니 정원의 30% 정도는 인력이 “없거나, 있더라도 없는 자리”나 마찬가지이고, 나머지 70%로 그럭저럭 꾸려가는 상황이었다. 군사학의 견지에서 보면 부대 병력이70% 정도 남아있다면 전투에서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처럼 한 조직이 인력의 70%만으로 운영된다면, 이미 ‘좀비 조직(?)’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인력의 70%만 갖고서도 조직 운영에 그리 큰 문제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처음 조직이 만들어질 때부터 30%가 과잉 산정되었다는 이야기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조직이 만들어지거나 증원될 때는 나름대로 업무 분석을 통해 최소한의 필요 인력이 부여되는 것이 조직 관리의 기본원칙이다.
(물론 이 과정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고, 이후 기능이 줄었음에도 인력은 그대로 두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체계적으로 직무분석을 통해 인력규모가 정해졌다면 주어진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해야 제대로 된 조직이다. 그런데 경험칙상으로 보면 인력이 모자라면 업무분장에 나와 있는 일을 일부 방치하거나 일을 줄이게 된
다. 자연스럽게 업무와 기능의 효율적 구조조정(?)이 이루어진다고나 할까?
“이제는 우리 공공조직 안에서 유령처럼 어슬렁거리는 이런 좀비요소들을 과감히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문제는, 이런 조직일수록 조직의 운영이 현상유지(TheStatus Quo) 중심으로 흐른다는 이다. 기능의 중점이 연례 반복적인 업무, 행사나 회의 등 의례적인 업무, 단순 집행적인 업무와 이 비교적 쉽고 편안한(?) 업무에 치중하게 된다.
가급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주어진 일만 하는 그런 형태가 된다. 그러다보니 어렵지만 진짜 해야 하거나 필요한 업무, 중요한 업무, 발전적이거나 장기적이고 전략적 업무 등은 뒷전으로 려나게 된다. 외양상 별문제는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직의 효율성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조직의 미래와 발전을 위해 큰 문제가 아닐까? 과거 적정 정원에 미달되는 인력을 갖고 부서를 운영하다보면, 정작 해야 할 일은 엄두도 못 내고 당장 눈앞의 현안 처리에만 급급했던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문제는 도처에 있을 수도…
문제는, 이런 좀비적 요소들이 내가 근무했던 그 기관에 국한된 사안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다.
중앙기관과 지자체, 공공기관, 그 외에도 각종 협회와 단체 등 공적 업무(public affair)를 수행하는 수많은 기관들에 이러한 거품들이 일부 있을 것이고 국민 세금만 축내는 좀비기관들이 부지불식간에산재해 있으리란생각은 지나친 기우일까? 과연 민간기업의 오너라면 자기 기업 내 이런 좀비적 요소들을 그대로 방치해 둘까?
이제는 좀비조직의 정상화가 필요한 때
업무량과 관계없이 관료조직은 지속 팽창(?)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파킨슨의 법칙 (Parkinson’s Law)’이 있다. 이 법칙을 새삼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 많은 공공조직 안에는 이런 좀비요소들이 여전히 있으리라 본다. 사실 공공조직 전반에 걸쳐 이런 낭비요소들을 걷어내는 것은 무척이나 지난한 일이다.
과거 역대정부(문민정부의 행정 쇄신, 국민의 정부의 행정개혁, 참여정부의 행정혁신, 이명박정부의 행정선진화)들이 공공조직의 슬림화나 효율화를 국정 개혁의 첫 순위에 두었음에도 공공조직의 규모는 늘 비온 뒤 죽순처럼 몸집만 자랐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공공조직 안에서 유령처럼 어슬렁거리는 이런 좀비요소들을 과감히 정리하자. 특히나 우리는 이미 정보통신기술(ICT) 고도화라는 ‘제4의 기술혁명’의 한가운데 진입해 있고, 저출산·고령화 등과 같은경제사회구조의 거대한 변화가 몰려오고 있기에 공공조직의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