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초기인 1996년부터 학부모들 사이에서 ‘엘리트 양성소’로 알려지며 인기를 끌었던 민족사관고등학교, 일명 민사고를 기억할 것이다. 당시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에서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민사고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민사고가 위치한 횡성군은 현재 지방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되어있을 정도로 서울과는 거리가 멀지만 부모들은 너도나도 민사고에 입학시키려 전쟁을 치렀다. 유레카! 대한민국 균형발전의 방향은 이런 쪽일까?
현재 민사고의 위상은 예전만 못하다. 물론 입시제도 변화, 문재인 정부의 특목고 폐지 정책, 학령인구의 감소 등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수도권에서 태어나고, 수도권에서도 이에 대한 대안이 많은 현실에서 지방에 위치한 고등학교가 경쟁력을 가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방의 청년을 끌어들일 대안은 없는 것일까? 이번 달에는 노무현의 꿈, 균형발전에 대한 방향과
(이재명 후보의 메가시티 공약은 이미 많은 논의가 있었기 때문에) 새롭게 떠오르는 한동훈 후보의 ‘5대 메가폴리스’ 공약에 대해 청년 인구학자의 시선으로 논의하겠다.
청년 인구학자가 본 균형발전
우리나라 인구학계가 수도권 집중이 초저출산의 근본적인 원인임을 밝혀낸 지금, 우리는 새삼 노무현 대통령의 선견지명을 되새기게 된다. 그는 학문이 도달하기 전, 이미 정책으로 그 해답을 제시한 드문 리더였다. 만약 그의 국가균형발전계획이 없었다면, 수도권 쏠림은 지금보다 훨씬 심각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지만, 인구학자이자 청년의 입장에서 아쉬움 또한 크다.
2003년 이후 수도권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전체 출생아의 절반을 넘는다는 사실은 지방의 미래가 결코 낙관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서울보다 낙후됐다고 여겨지는 지방에서 교육 수준 높은 청년들을 정착시키겠다는 발상 자체가 허상에 가깝다. 어차피 소멸될 지방을 살리는데 본인의 세금이 투입된 다는 점은 오히려 청년의 분노를 조장할 수도 있다.
기득권 중심의 시선으로 균형발전을 설계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일자리가 아니라 개인의 성장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삶, 문화와 주거, 그리고 관계와 네트워크가 있는 지역이다. 균형발전은 자원을 나누는 일이 아니라, 청년이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지역을 만드는 일이다. 그 선택이 모일 때, 진정한 균형발전은 비로소 시작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청년들이 앞으로 더 오래 살아갈 미래라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인구가 기본이 되어야!
1989년 KBS 뉴스는 이미 “2021년부터 인구가 감소할 것”이라는 내용을 보도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예측은 놀랍도록 정확하게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도시 개발이나 산업단지 조성 등 주요 정책 계획에서는 여전히 인구가 성장하던 시대의 추계 기준이 사용되고 있다. 예컨대, 전라북도 새만금개발청은 2050년까지 20만 명의 인구 유입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해당 지역의 출산율과 인구 유출 속도, 청년층의 정주 의지 등을 고려할 때, 이 수치는 현실과 괴리된 목표에 가깝다. 인구 데이터를 무시한 개발은 결국 실제 수요와 맞지 않는 인프라와 시설만을 남기게 되고, 이는 필연적으로 재정 낭비와 인구 정착 실패로 이어진다. 인구학적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균형발전은 역설적으로 지역 불균형을 더욱 고착화 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한동훈 공약, 인구가 줄어드는데 서울을 5개 만든다고요?
한동훈 후보의 ‘5대 메가폴리스’ 균형발전 전략은 도시의 외형은 설계했지만, 인구 흐름과 인구 구조 변화에 대한 고려는 부족하다. 인구변천이론(Demographic Transition Theory)은 출생률과 사망률이 낮아지는 4단계 또는 5단계의 변화를 거친다고 설명한다. 한국은 이미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2024년 기준 합계출산율 0.75)에 이르며, 고령화 속도도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즉, 한국은 전형적인 후기 인구 전환 단계에 있다. 이 시기의 정책 우선순위는 도시의 확장이나 팽창이 아니라, 인구 감소에 맞춘 조정과 전환이어야 한다. 그러나 한 후보의 메가폴리스 공약은 여전히 성장과 집중, 산업 팽창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지금 필요한 건 ‘5개의 서울’이 아니라, 줄어드는 인구 속에서도 지속 가능할 수 있는 도시의 설계다. 또한 수도권에 대한 구조 전환 없이 새로운 중심만 만든다고 해서 지속 가능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점을 염려하지 않은 계획은 자칫 더 큰 불균형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한국에 대학원생이 줄어들 것은 정해진 미래…
R&D를 주도하는 핵심 인구는 대학원생이다. 하지만 학령 인구에 감소로 대학원생의 인구가 감소될 것은 정해진 미래이다. 전체 대학원생 학생 수는 박사과정생의 증가로 어느정도 유지되고 있지만 석사과정 학생 수는 2011년을 기점으로 감소 추세로 접어들었다.
한 후보는 보스턴의 바이오 테크 허브, 실리콘 밸리, 영국의 골든 트라이앵글의 성공 사례를 언급했지만, 이들 사례에 등장하는 대학들은 전 세계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풀 요인(Pull Factor)을 갖춘 기관들이다. 반면 한국의 지방대학은 청년의 유출이 심각한 푸시 요인(Push Factor)을 안고 있으며, 현재의 구조로는 단순한 산업 입지나 규제 특례만으로는 그 흐름을 되돌리기 어렵다.
오히려 인구학적 시각에서 보자면, 해외 유학생을 유치해 인구 기반을 다변화하고, 청년층 유입의 국제적 경로를 여는 전략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수도권에서 청년을 빼오는 제로섬 경쟁이 아니라, 새로운 인구 자원을 지역에 유입시키는 플러스섬 전략이 될 수 있다.
유학생 유치는 전 세계적으로 이미 성공한 풀 팩터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한국의 지역 대학이 살아남고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데에도 훨씬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5대 메가폴리스 공약’은 산업과 공간의 논리는 있으나, 가장 중요한 인구학적 논리는 결여된 전략으로 보인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도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머무는 이유’를 설계하는 일이다.
조기 대선 국면에서는 포퓰리즘적 공약이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덕분에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핵심 문제들이 공론화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정치인이 정치인 했다”에 연연하지 말자. 언제나 지금이 곧 기회이다! 조기 대선의 혼란 속에서도 대한민국이 수많은 기회를 사로잡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
[지방정부티비유=최원재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