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시는 올해 8월 ‘종합민원담당’ 직제를 부시장관할에서 시장 직속으로 개편하며, 사랑이 가득한 민원행정을 구현하고 있다.
고대 이스라엘의 한 과부가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불의의 재판관’을 여러 차례 찾아가 자신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가진 것이 없고 주위의 도움을 구할 수 없는 그녀가 취할 행동은 재판관에게 떼를 쓰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녀의 원한은 무엇이었을까? 남편이 억울하게 죽었거나 남편을 잃고 어린아이들과 살아가는 생존 기반마저 빼앗긴 일일지도 모른다. 정의를 외면하고 살아온 이 재판관은 여인이 계속 찾아와 자신을 번거롭게 하는 것을 견디다 못해 마침내 그녀의 원한을 풀어주었다. 끈질김의 승리를 시사하는 이 이야기는 성경에 기록돼 있다.
이 여인의 사례를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에 적용해보면 ‘반복민원(23조)’이다. 반복민원이란 동일한 민원을 3회 이상 반복해 제출하는 경우를 말한다. 반복 민원은 자체종결 처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법제23조), 종결처리하려면 ‘민원조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시행령 제26조). 이 위원회는 반복민원뿐만 아니라, 거부처분에 대한 민원인의 이의신청을 심의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즉 민원조정위원회는 민원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해결해줄 수 있는 방안이 없는지를 공무원과 외부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여 토의하는 민주적 제도인 것이다.
다른 기초자치단체에 비해 민원조정위원회 운영이 활발한 곳이 있다. 바로 남양주시다. 2018~2019년 2년간 남양주시를 제외한 경기도와 도내 전체 시·군의 민원조정위원회 평균 개최 회수는 0.83회인 반면, 남양주시는 15회에 달한다. 위원회가 심의한 25건의 유형을 보면 건축 및 개발행위 허가 19건, 하천점용 허가 4건, 사설묘지 설치신고 1건, 식품영업신고 1건이다.
심의결과는 인용 4건, 의견 제시 2건, 기각 19건이다. 의견 제시란 위원회가 민원인에게 대안이나 처리 부서에 재검토를 제시하는 것인데, 2건 중 1건은 후자에 속하며 처리 부서는 위원회의 의견을 받아들여 민원인의 요구를 수용했다. 25건의 심의안건 중 민원인의 뜻이 받아들여진 것은 5건으로 20%에 불과하지만, 민원구제수단인 행정쟁송이 시간이나 경비의 과도한 부담을 수반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의미 있는 숫자이다. 이 중 몇 건은 민원인의 이의신청이나 반복민원이 아닌데도 처리부서가 법규적용 및 해석상의 의문이 있어 자발적으로 개최 요청을 한 경우로 적극적 민원행정의 모범사례라고 평가된다.
민원사항은 당사자에게는 생업, 아니 생존이 걸릴 정도로 절박한 사정이었을 것이다. 위원회를 통해 용이하고 신속하게 뜻을 이룬 해당 민원인은 남양주시에 감사함을 느끼고 행정기관의 존재 이유를 새삼 실감했을 것이다. 뜻을 이루지 못한 민원인들은 그래도 남양주시가 외부 전문가와 더불어 자신의 민원을 한번 더 검토해주니 억울하다는 느낌을 조금이나마 덜었으리라.
기자는 경기도 공직 시절 남양주시청을 몇 차례 방문했거나 가끔 가평과 강원도를 여행하며 경춘로(舊 경춘국도) 변에 위치한 이곳을 관심 있게 보았다. 오랜만에 가보니 크게 달라진 점이 있는데, 첫째는 아름답고 평온해 보이는 민원실이었다. 특히 민원실의 벽·바닥·기둥·천장의 온통 하얀색과 불빛이 공무원의 순수한 영혼과 정직·공정을 상징하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둘째는 청사 외부에 말끔하고 편안한 공중화장실이다. 청사 부지가 부족한데도 시민과 경춘로를 따라 여행하는 운전자들에 대한 큰 배려라는 것이 느껴진다.
남양주시가 취급하는 민원사무는 무려 652건에 달한다. 상수원보호구역과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가장 넓은 개발제한구역 같은 규제가 많고, 도로철도 등의 인프라가 다양하게 뻗어 있으며, 수도권인지라 인구가 증가하면서 민원업무가 타 자치단체에 비해 월등히 많다. 하지만 남양주시는 시민의 소리를 경청하고 시민이 만족하는 민원행정을 실천하기 위해 올해 8월에 ‘종합민원담당’ 직제를 부시장 관할에서 시장 직속으로 개편했다. 민원행정을 시장이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헌법」과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은, 국민은 국가와 행정기관에 특정한 행위를 요구할 권리를 지니며, 국가와 행정기관은 이를 처리할 의무를 진다는 뜻을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 단 한 명의 시민이 자주 찾아와 번거롭게 할지라도 경청하고 헤아려주며 인내로 설명해주는, 사랑이 가득한 민원행정을 구현하는 남양주시가 되기를 기대한다. 남양주시는 다산 정약용의 고향이다. “백성이 근본이다.” “백성이 목민관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목민관이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는 그의 말이 더 한층 가슴에 와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