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데이비스 라이언은 제54대 미국 하원의장이다. 1970년생으로 나이가 40대 중반에 불과하지만 그의 정치 경력은 그 어떤 정치인보다 묵직하다. 전(前)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이자 9선 하원의원이다. 하원 예산위원회 위원장, 세입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젊고 똑똑하며 경제에 밝다. 맥도날드 알바 출신 40대 미국 하원의장의 포부를 알아보자.
기획|편집부
폴 데이비스 라이언은 제54대 미국 하원의장이다. 201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마코 루비오, 테드 크루즈와 함께 공화당의 젊은 목소리로 꼽히며 미국 공화당 서열 1위이다.
폴 데이비스 라이언은 위스콘신 중서부 작은 도시 제인스빌에서 어려운 가정환경을 극복한 ‘자수성가형’ 정치인이다. 아일랜드계 부친과 독일·영국계 모친에게 태어난 그는 5대째 위스콘신 토박이로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하지만 라이언은 16세 때 부친이 심장마비로 숨진 뒤 알츠하이머를 앓는 할머니와 한 집에서 살며 사회보장연금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맥도날드, 레스토랑, 피트니스센터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렵게 대학을 졸업했다.
라이언이 정치에 입문한 것은 대학 시절 우연히 존 베이너(오하이오 주) 전 하원의장의 선거운동 자원봉사에 나서면서다. 베이너 캠프 일을 지켜보다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때부터 그는 연설문 작성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이후 대학 지도교수가 위스콘신 주 봅카스텐 상원의원에 인턴 자리를 소개했고, 라이언은 졸업 후 봅 카스텐 상원의원의 보좌관이 됐다. 당초 우편물 담당이었지만 능력을 인정받아 바로 경제담당 보좌관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박봉으로 밤에는 웨이터와 헬스트레이너로 일하는 힘든 생활을 했다. 그 이후,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과 잭 캠프 전 부통령 후보의 보좌관을 지냈고 윌리엄 베네트 교육부장관 연설문 작성자로 일했다. 1998년 고향인 위스콘신으로 돌아온 라이언은 바로 위스콘신 주 1지역구에서 28세의 젊은 나이에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당시 최연소 연방하원의원 기록을 세웠다. 그 이후 계속 당선되어 현직 9선 의원이며 매번 55%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할 만큼 그의 인기는 높다.
라이언은 동료 의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그는 의사당 헬스실에서의 강도 높은 운동을 하는 ‘운동광’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무엇보다 어려운 재정 정책에 대해 논리적이고 정책 벌레 성향의 열정으로 이름이 높다.
2011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새해 국정 연설에 맞선대응 연설을 통해 ‘오바마 저격수’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며 ‘공화당의 샛별’로 부상했다. 2012년 대선 당시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하면서 전국구 스타가 됐다. 그는 ‘저격수’에서 그치지 않고 2013년 하원 예산위원장으로 있으면서 건강보험개혁법(오바마케어)을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연방정부셧다운(업무정지) 사태로 치닫기 직전 공화당 내 강경파를 설득해 민주당과의 합의를 이끌어내며 정치력을 인정받았다.
공화당 내에서는 온건파와 강경 보수파 의원들을 이어주는 다리로 인식되고 있다. 통일과 통합에 큰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는 미국 정치계는 그의 능력을 주목하고 있다.
“미국은 지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민의(民意)의 전당인 이곳 하원에 모인 우리는 이 나라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어느 지역 출신이든, 무엇을 믿든 우리는 한 배를 탔다” 라며 하원의장 수락연설에서 그는 미국의 통합을 강조했다. <뉴욕타임스>는 라이언 의장의 통합을 이끌어 내는 능력에 대한 기대가 높은 편이라고 평가한다. 정파 갈등이 치열한 미 의회에 ‘변화’를 예고하며 40대 리더가 탄생했다. 40대 리더, 폴 라이언의 역동적 정치를 기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