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인 영국 런던에서 흙수저였던 사디크 아만 칸이 서구권 최초로 무슬림 출신 단체장이 되었다. 전 세계 흙수저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보여준 칸 시장의 일대기와 IS의 위협으로 전 세계가 무슬림에 대한 편견이 있는 가운데 세계 평화의 전도사로서의 행보를 살펴본다.
기획|양태석 기자
칸 시장은 파키스탄계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영국 런던 투팅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25년간 버스기사로, 어머니는 재봉사로 일했다.
8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칸 시장은 정부가 지원해준 임대주택에 살며 가사에 보탬이 되고자 공립학교에 다니면서 청소년 시절부터 신문 배달이나 공사 현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칸 시장은 원래 치과의사가 되려 했
으나 토론에서 두각을 나타낸 모습을 본 교사의 추천으로 법학(노스런던대)을 선택했다. 덕분에 칸은 변호
사 개업 후 종교·인종 차별을 뒤엎는 역사적인 판결을 끌어내 주목받았고, 인권변호사로 두각을 나타냈다. 심지어 ‘법정의 운동가’라는 애칭이 따라다니는가 하면 런던 경찰의 최대 감시자로 ‘경찰 킬러’라는 별명도 붙었다.
동료 변호사이자 자신과 똑같이 버스 기사의 딸인 사디야 아흐메드와 결혼한 칸 시장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 브라운 전 노동당 총리에 의해 2005년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칸 시장은 2008년 지방정부·커뮤니티 담당 장관으로 임명된 데 이어 교통부 장관에도 임명되면서 주목받았고, 영국 최초로 내각에 진출한 무슬림이 되었다. 이후 노동당이 집권하지 못해 하원의원으로서 예비 내각의 ‘그림자 장관(집권하면 내각에 임명되는 내정자)’ 자격으로 여러 부처를 거쳤다.
그랬던 그가 지난 5월 5일 영국 지방선거에서 득표율 56.8%로 집권 보수당의 잭 골드스미스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칸의 선거구호는 ‘예스 위 칸(Yes We Khan)’으로 ‘예스 위 캔(Yes We Can)’문구를 패러디한 것이다. 칸 시장은 당선사에서 자신은 무슬림 지도자나 무슬림의 대변인이 아닌 런던시장이며 모든 런던 시민을 대변한다고 말했다.
칸 시장은 이후 런던이 EU일원으로 남아 있어야한다면서 50만개의 일자리가 EU에 직접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종교나 이념을 떠나 소통과 통합을 위한 유연한 언행이 주목받았다. 특히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고, 노동당 내 강경 좌파세력과도 거리를 뒀다. 무엇보다 칸은 탄탄한 노동당 지지층에 집착하지 않고 외연을 넓혀야 노동당의 미래가 있다고 주장하며 다양한 정치 세력을 포용하겠다는 빅텐트 전략을 펼치고 있다.
칸 시장은 서민들이 살 수 있는 저렴한 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 요금을 4년간 동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최우선 공약으로 런던에서 새로 건설하는 주택의 절반을 평균 소득 근로자가 살 수 있는 정도의 저렴한 주택으로 짓겠다고 약속했다. 빅텐트 전략에 입각해 그의 첫 시장 공식행사는 런던 바넷에서 개최한 유대인 홀로코스트 추념식에 간 것이었다. 선거 운동 과정에서 노동당의 반유대주의 의혹을 잠재우기 위한 의도였다.
한편 이런 칸 시장을 두고 영국 언론들은 “인종과 종교 갈등이 유럽 전역을 휩쓰는 상황에서 런던이 다문화와 톨레랑스(관용)의 얼굴을 보여준 역사적 선거”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