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는 선진국일수록 놀랄 만한 규모의 기초의회를 구성하고 행정부를 직접 운영하는 수준의 권한을 부여하며 선진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있다. 대한민국 지방자치에 기초의회가 꼭 필요한 까닭이다.
앞서 살펴본 바대로 기초의회는 그 부작용 만큼 순기능도 적지 않다. 기초의회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으로 지역 주민 스스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게끔 해 대한민국 지방자치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나라보다 빠르게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이룩했다. 그러나 길게는 300년에 걸쳐 민주주의와 지방자치를 이룩한 해외의 정치 선진국에 비해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지방자치가 아직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부작용이 많다고 섣불리 폐지를 주장하기보다는 개선책을 모색해 선진적인 지방자치를 이룩할 수 있도록 잘 활용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해외 선진국일수록 지방자치제도와 그 근간을 이루는 지방정부가 의회 조직이 ‘지나치다’ 싶을 만큼 복잡하고 비대하다. 극단적으로 가면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1000만 명가량 많은 프랑스의 지방의원 수는 52만 명가량으로 3600명가량인 대한민국 지방의회 의원 규모에 비해 140배 넘게 많다. 프랑스가 아니고서라도 인구가 우리나라 6분의 1에 불과한 오스트리아는 지방의회 수가 2350여 개로 우리의 10배가 넘는다. 스페인은 우리보다 850만 명가량 인구가 적지만 지방의회의 수는 무려 8100여 개다.
이 같은 차이는 해외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기초자치단체 평균면적 차이에서 기인한다. 안성호 대전대학교 교수가 2009년 한 토론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대한민국 기초지자체 평균 면적은 423㎢로 세계에서 가장 넓은 수준이다. 프랑스와 스위스의 경우는 이 면적이 15㎢며, 독일은 24㎢, 스페인은 64㎢, 일본은 210㎢ 수준이다. 심지어 국토면적이 한반도의 50배에 달하는 미국도 이 면적은 240㎢로 대한민국의 절반 수준이다.
물론 정도와 규모, 그리고 역사적인 차이는 있지만 선진국의 민주주의와 지방자치 모델이 세계의 보편 모델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지방자치도 시간이 지날수록 이 같이 변화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이들 선진국 기초의회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영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과 프랑스의 경우까지 살펴봤다.
영국, 대단위 지방정부 구성하며 의회가 지방정부 효율적으로 구성토록 위임
영국은 기초자치단체 평균면적이 530㎢로 거의 유일하게 선진국가 중 우리보다 더 넓은 면적을 보유한다. 이는 수천개의 소규모 기초자치단체인 디스트릭스(District)와 함께 마가릿 대처 정부가 정부혁신정책 중의 하나로 지방정부의 행정구역을 통합을 유도해 ‘통합형 지방정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992년 지방정부법에 근거해 에이본(Avon), 클리블랜드(Cleaveland), 험버사이드(Humberside), 요크(York) 등은 광역 정부인 카운티 정부와 기초 정부(District)가 통합해 1996년부터 통합 지방정부로 대체됐다. 이 같은 사례가 다양하게 발생해 영국에서는 1998년까지 런던 시 및 라이트섬 등을 포함해 모두 47개의
통합지방정부가 탄생했다.
영국은 중앙정부와 유사하게 지방정부들이 영국 고유의 의원 중심 집행부 제도(Cabinet System)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지배적이다. 이는 ‘내각책임제’라고도 하는데, 특별히 영국적인 의원내각제를 일컫는 개념으로서 수상을 정점으로 하는 내각이 의회보다 우월한 지위를 가지고 정치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형태의 정부이며 이런 형태가 지방정부 수준에서도 동일한 정치원리로 작동하고 있다.
리버풀시를 살펴보면 90여 명의 시의원이 4년의 임기를 수행하는데, 선거를 동시에 치르는 것이 아니라 3분의 1씩 매 3년마다 선출된다. 리버풀 시는 시정부 리더인 지방의회 의장 겸 시장(Council Leader, Lord Mayor)이 의회에서 선출되면, 리더의 추천으로 지방의원 중에서 집행부를 구성한다. 집행부(Executive Board)는 지방의회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며, 지방정부의 일상적 업무 수행을 책임진다. 이들은 격주마다 회의를 하고 시정부를 관리하며, 집행부는 시장 집행부 의원, 수석행정관과 주요 국장들이 관리하고 있다.
미국, 주민 편의에 맞도록 기초의회와 행정부의 권한과 구성 다양화
연방 국가인 미국은 주마다 정한 지방자치단체의 요건이나 종류, 그리고 단체별 의회와 행정부의 권한 배분이 상이한 경우가 많다. 광범위한 국토와 연방제에 기초해 많은 부분을 주와 주민자치에 위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광역자치단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카운티(County)가 3000개 가량 존재하고, 그 하위의 시·읍(Municipality)의 경우 2만여 개가 존재한다. 카운티는 통상 3~5인의 광역의원이 의회를 구성하고 기초자치단체의 경우 3~50인의 규모로 기초의회가 꾸려진다.
특히 미국에서는 이 같은 일반 지방자치단체 이외에 학교를 비롯해 소방, 토양보전, 상수도, 주택, 하수도, 도시재개발 등 여러 공공사업 부문을 담당사무별로 관장하는 특별지방자치단체도 4만 9000여 개에 달한다. 특별지방자치단체는 우리나라도 지방자치법에 규정돼 있지만 세부규정이 없어 활성화되고 있지 못한 제도다. 이 같이 미국은 다양한 차원의 지방정부를 구성하고 있고, 이 지방정부 의회에 소속된 의원은 42만 명이 넘는다.
미국은 동일한 지방자치단체 유형 내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행정부-의회 구성을 나타낸다. 대부분 대도시에 위치한 지방정부는 50% 이상 기관대립형-강(强)시장 제도를 택하고 있는데, 이때 시장은 대선거구제로 주민이 직접 선출하고 그에 따라 지방의회가 거부권을 행사하며, 구역별로 선출된 지방의원이 3분의 2이상 찬성할 때만 이를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권한이 약한 기초의회를 가진 곳도 많다.
한편 본지가 지난 4월호에 소개한 오렌지 카운티(Orange County)와 같이 지방의회-전문경영인형의 지방정부 형태로 지방자치단체가 운용되는 경우도 많다. 이는 주민이 선출한 지방의회가 의결을 통해 지방정부 이끌고 나가는 전문경영인(CEO)을 임명하는 제도다. 또한 기초자치단체로서 시정부(Municipalities)는 많은 곳에서 기관통합형 의회-행정부 운영제도를 택하고 있는데, 이는 지방의회가 중심이 되어 집행부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이는 상당히 의회 우월적인 제도로, 많은 기초정부 단위의 주민들은 의회를 기초정부 운영의 핵심인 주민이 선출한 대의기관인 의회로 보고, 집행부는 단지 의회가 결정한 행정을 수행하는 행정기관에 불과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이 같이 다양한 형태의 지방정부 구성으로 미국은 기초의원의 권한과 사무도 지방정부와 상이하지만 의원의 급여나 보좌인력을 제공하는 등 기본적인 지원은 이뤄진다.
1) 낫소 카운티(Nassau County)의 오이스터 베이타운(Oyster Bay Town):
주민직선으로 선출된 지방의원은 모두 7명으로, 이는 6명의 시의원과 2년 임기의 단체장(Supervisor)를 포괄한다. 이들은 당적을 보유할 수 있다. 타운 지방의회의 권한을 보면 지방정부가 수행할 주요 정책의 기본계획 수립, 업무의 시행기준 설정, 주민 권리증진과 의무에 관련되고 주민의 실제생활에 영향을 주는 각종 조례 및 지방법규의 제정, 지방정부의 연간 예산 승인, 주요 공무원에 대한 임명 동의 등을 행사한다. 이러한 업무에 대하여 모든 의원들이 풀타임 보좌관을 1명씩 두고 있으며, 지방정부 내에 법률자문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2) 마운트 버논(Mount Vernon) 시정부:
인구 6만 7000명 수준의 마운트 버논은 의회와 지방정부가 분리돼 있다. 5명의 의원이 선출되며 의원들에게
연봉과 연금혜택, 건강보험 등이 주어진다. 의원은 파트타임 형태로 근무한다. 마운트 버논은 개인보좌관이 없으며 의회담당비서 등의 지원인력을 의회 사무국 형태로 두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2003년 기준으로 의장의 연봉이 2만 8500달러, 의원의 연봉이 1만 5000달러 수준인데, 의회담당비서의 연봉이 2만 7000달러로 급여로는 상당히 대우받고 있다는 점이다. 의회 내의 권한과 역할과 달리 급여 등의 특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프랑스, 기초의원은 무보수 명예직 대신 생계 위한 직업 겸직은 인정
프랑스의 최하위 기초자치단체는 코뮌(Commun)이다. 코뮌의원의 임기는 6년으로, 국회의원 임기 5년보다도 길다. 코뮌의원은 주민 직접투표에 의해 선출되는데, 특이하게도 프랑스는 인구수에 따라 코뮌의회 선거 방식을 다 다르게 규정해 적용하고 있다. 인구수가 많을수록, 좀 더 복잡한 방식으로 의원을 선출하는 것이다.
코뮌의원은 우리와 달리 무보수 명예직이다. 때문에 타 지방자치단체 의원이나 주요 정부기관의 공직, 군인 등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겸직이 허용된다. 때문에 많은 코뮌의원이 공공기관이나 사기업에서 각자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의회 일정이 있을 때는 직업을 결근해도 이를 고용주가 근무한 것으로 인정해줘야 한다.
덧붙여 무보수 명예직이기는 하지만 보직이 없는 의원에게 우리돈 30만 원 정도의 의원 수당이 지급된다. 출장을 갈 경우 10만 원 내외의 일일 출장경비가 지급된다. 즉 활동비와 실비 정도의 수당만 지급하는 것인데, 프랑스는 상기한 영국과 미국의 사례보다도 더 기초의회가 활성화되어 기초의원이 52만 명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이 기초의회와 기초의원 수가 많아지는 것은 서구 일부 선진국에만 나타나는 특정한 현상이 아니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선진국으로 좋은 싫든 우리나라 정치제도의 가장 기본적인 참고자료가 된 일본의 경우도 기초의원이 6만 명이 넘는다. 이 같은 추세를 감안하면, 당장 상기한 사례들을 우리나라에 바로 적용하긴 어렵더라도 의원의 겸직과 보수, 권한 등에 대해 선진의회가 어떻게 선을 긋고 있는지 정도는 참작해야 하지 않을까?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 기초의회는 꼭 필요하다. 우리 기초의원들이, 대한민국 기초의회가 이 같은 지방자치의 ‘미래형 모델’을 거울삼아 기초의회의 혁신을 이뤄내길 기대해본다.
참고자료
김주현, 『지방의회 운영체제 다양화 방안에 관한 연구』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주요 선진국 지방자치제도 및 지방의회 운영제도 사례 수집 : 영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