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축적으로 지역 자생을 이루는 가파도 AiR

 

국가의 문화관이 세계적으로 공감대를 얻는데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나라의 뚜렷한 사회 문화유산을 컨텐츠화하는 것 (태국의 자연과 종교, 중국의 정치와 사회관이 그 예다), 또 하나는 특정 시대적 상황에서 해당 국가의 역할에 대한 담론을 쌓는 것. 가파도 AiR는 첫 번째 방식으로 제주 가파도의 지형적, 문화적 특색을 활용한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Artist in Residence)이다.

 

소멸 위기에 처한 가파도를 위한 <가파도 프로젝트>, 지역 재생이 아닌 자생을 목표로 하다

가파도는 제주도에서도 특별한 섬이다. 평지 섬이라 주변 풍경을 여과 없이 품어 바람과 파도가 거세기로 유명하고, 일출에서 일몰까지의 햇빛을 온전히 흡수하는 땅이다. 가파도 프로젝트를 이끈 건축가 최욱이 이 섬을 “자연의 무대 위에서 몸이 만나는 장소”라 일컬을 정도이다.

 

허나 이 섬은 지난 30년간 인구가 170여 명으로 1/10이 줄어들며 소멸 위기에 처하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2013년부터 진행된 <가파도 프로젝트>는 억지스럽고 난잡한 유입이 아닌, 섬의 환경과 문화를 최대한 존중하여 지역의 경제와 생태계에 지속 가능한 활력을 불어넣고자 하였다.

 

본 프로젝트의 최대 목표는 섬 주민들이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었다. 리조트, 골프장과 같은 시설을 설립해 관광지로 새롭게 거듭나게 할 수도 있었으나, 그럴 경우 막대한 환경파괴가 우려될 뿐 아니라 지역민보다는 자본을 투자한 이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기에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중심의 개발을 하게 된 것이 <가파도 프로젝트>이다.

 

보존을 위한 변화 - 문화의 축적을 위한 가파도 AiR

터미널, 해녀 쉼터, 레스토랑과 같은 시설의 경우 본래 매력을 그대로 보존하되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개발하는 것이 가파도 프로젝트의 첫 번째 단계었다. 허나 이 시설들이 실제로 잘 사용되고, 주민들과 여행객들의 일상 자체가 풍요로워지려면 섬 자체의 문화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설립된 것이 바로 가파도 AiR이다.

 

이 건물은 본래 공사가 중단되어 유후 공간으로 남아있던 콘도미니엄 건물이었다. 2018년에 현대카드와 제주도가 이 건물을 국제 아티스트 레지던스로 재탄생시켰고,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총 43여 명의 국내외 작가들이 각 2~6개월간 입주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오롯이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제공해 왔다. 전시와 워크숍은 물론, 필드트립, 작가와의 만남 등 지역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문화를 통해 지역과의 화합, 소통을 적극적으로 도모하였다.

 

2023년부터는 서울에서도 역대 입주 작가들의 경험과 성과를 공유하는 전시를 열어 제주도 외 지역과의 연대를 확장하고,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싱가포르 아트 뮤지엄 레지던시, 국립현대미술관 창동 스튜디오 관계자 등과 포럼도 주기적으로 주최하며 계속해서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과연 가파도에 적합한 문화였을까?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는 그 성격상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또 이 프로젝트는 수년간의 플랜이 있는 마스터 플래닝이 아닌, 상황에 따른 변수를 위한 시나리오 플래닝으로 진행되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가파도를 “우리가 던진 질문에 대답을 하고 나가야 할 섬”이라고 표현하였는데, 과연 가파도는 목표한 대로 주민들이 자생할 수 있는, 또 외지인들도 ‘그 섬’이 아니라 ‘가파도’로 기억할 수 있는 문화의 축을 세우고 있을까.

 

얼마나 더 긴 시간이 걸려야 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질문은 아직도 더 커져만 가고 있다. 세계 유수 작가들의 활동과 전시로 가파도의 매력을 널리 알리겠다고 했으나, 지금까지 참여한 작가들은 대중보다는 전문가들에게만 알려진 작가들이 대부분이고, 탄생한 작품들도 현대미술의 특징상 추상적이라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오랜 시간과 적극적인 교육을 통해 비로소 이해가 가능한 순수예술이 과연 이 가파도에 어울리는 문화 요소였을까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오히려 좀 더 대중에게도, 주민들에게도 자연스러운 음악가나 안무가들의 레지던스로 운영되었다면 어땠을까. 혹은 이미 대중들이 많이 알고 있는 순수예술 작가들이 이 섬에 와야만 하는, 또 오고 싶은 이유를 더 부각할 수는 없을까. 가파도가 물리적으로 쉬이 가기 힘든 섬인 만큼, 온라인에서 가파도와 이 기관의 매력을 더 잘 알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더욱 필요해 보인다. 앞으로 더욱더 적극적인 홍보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섬에 오고 싶은 생각이 들게끔, 또 이를 통해 가파도 고유의 미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게 하길 바란다.

 

[지방정부티비유=티비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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