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충훈 전라남도 순천시장(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회장)
20년 전 지방자치를 처음 시작할 당시 지방자치를 노골적으로 반대하거나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심지어 ‘지방자치를 하면 나라가 망한다. 산불도 못 끄고 구제역 막을 사람도 없어진다’고 얘기하는 국무위원이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여러 면에서 부족했지만 보완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기대를 갖고 지방자치가 출발했습니다. 덕분에 어려운 여건에서도 지역을 특화·발전시키고 행정을 주민 중심으로 변화시키는 큰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러나 지방자치를 둘러싼 환경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아진 게 없습니다. 국세와 지방세 8대 2의 구조가 고착됐고, 재정자립도는 1995년 민선 시작 당시 44%에서 현재 25%로 반 토막 났습니다. 또한 지자체는 상위법령의 근거나 위임 없이는 조례 하나 제정할 수 없습니다. 행정조직도 총액인건비제나 기구정원 규정에 얽매여 지역실정에 맞게 운영할 수 없습니다.
지방자치와 분권을 해야 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중앙정부는 법령 제정권, 예산권, 인사권을 모두 쥐고 있지만 생활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적인 사례가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입니다. 중앙집권체제에서는 더 이상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신속한 대응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지자체는 20년간 역량을 향상시켜 크고 작은 사건에 신속한 대응이 가능합니다.
둘째, 지방자치와 분권은 ‘주민 삶의 질’과 ‘지역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중앙정부가 전국 226개 시·군·구 실정에 맞게 법령을 제정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로 인해 잘못된 법령을 그대로 집행해 주민들과 마찰이 발생합니다. 지방의 손발을 묶어 놓고서는 주민 삶의 질 향상과 지역발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중앙정부의 권한과 사무, 재원과 인력을 지방에 이양하는 게 절실히 필요합니다.
셋째, 국가발전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세계화·정보화 시대가 되면서 과거의 중앙집권적 성공모델은 더 이상 성공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소득 2만달러에서 벗어나 3만달러 시대로 도약하기 위해선 지역다양성, 자율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지역의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이는 세계 석학들의 공통된 지적입니다.

이러한 지방자치와 분권의 발전을 위해서는 분권형 개헌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은 중앙집권적 헌법으로, 지방자치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헌법 130개 조항 중 지방자치관련 조항은 단 2개뿐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지방자치 조항이 이처럼 빈약한 나라는 없습니다. 현행 헌법을 지방분권형 헌법으로 개정하지 않고서는 지방자치를 더 이상 진전시킬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법 개정 등을 통해 지방의 정책자율권과 재정권, 자치조직권 등을 추진해 왔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헌법에서 담아내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합니다.
분권형 새 헌법에 꼭 담아야 할 내용은 우선 프랑스 헌법처럼 우리나라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 국가’임을 명시해 ‘자유민주주의’와 함께 ‘지방분권’을 국가운영 기본 원칙으로 천명해야 합니다. 또 과세자치권을 헌법에서 보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치재정권과 입법권, 조직권을 헌법에 명시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되지 않기 위해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을 배제하는 내용을 명문화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분권형 헌법 개정을 어떻게 이룩할 것인가? 먼저 헌법 개정을 위해선 국민적 지지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따라서 풀뿌리에서부터 공감대를 형성해 국회의원들을 움직여야 합니다. 이에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지방분권형 개헌을 위해 ‘주민아카데미와 자치분권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주민아카데미는 지방자치와 분권의 실상을 주민들과 함께 공유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학습프로그램입니다. 이를 토대로 지방분권과 헌법개정에 대한 관심과 여론을 전국으로 확산하고,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자치분권조례를 제정하여 전국 226개 시·군·구가 ‘전국 자치분권 네트워크’를 조직해 개헌 필요성을 확산시켜 나가야 합니다.
분권형 개헌을 위해선 올 연말까지가 ‘골든타임’입니다. 내년 총선에 대비해 지방자치와 분권을 쟁점화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전국협의회에서는 16개 시·도 순회토론회를 진행하였으며, 마지막 토론회는 서울에서 열립니다. 서울 토론회에서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을 위한 결의문’을 채택하여 학계와 시민사회단체, 언론 등과 함께 ‘국회의원 후보자 총선 의제 선정 및 정책 공약화’를 촉구할 방침입니다.
지방자치 단체장이 더 많은 권한을 가지려고 지방자치와 분권을 추진하는 게 결코 아닙니다.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고 삶의 질을 더욱 향상시키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지방자치를 제도적으로 보장받기 위해 자치분권과 개헌을 준비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전국 협의회 및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지방을 바꿔 나라를 바꾼다’는 신념에 따라 지방 스스로가 솔선수범해 개혁하고 나라를 바꾸는데 기여하겠습니다. 지방자치가 올곧게 실현되도록 국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