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기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우리나라 복지정책과 지방자치
지난 2~3년 동안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기초연금, 무상 보육, 무상급식 등에 소요되는 복지정책의 재정부담을 놓고 상호갈등의 양상을 보여왔다. 2015년 예산결정 과정에서 크게 논란이 됐던 무상보육 관련 ‘누리과정’ 예산은 제주도를 비롯해 다수의 교육청에서 3개월 정도의 예산만이 확보된 채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금년 4월 이후에 집행될 누리과정 예산이 없기 때문에 시·도교육청은 최소한 금년 4월 이전에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해야 금년도 누리과정 사업을 지난해와 같이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특정한 정책에 따른 재정부담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서로에게 넘기려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배경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첫째, 중앙 및 지방정부 모두 동원할 수 있는 재원은 한계에 직면해 있으나 국민 또는 지역주민의 욕구를 충족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이들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재원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둘째, 현재 서로에게 재정부담을 넘기려 하는 무상보육이나 무상급식 등과 같은 복지정책은 그내용이 ‘최저생활보장’이나 ‘중증장애’처럼 기본적인 생존권적 차원에서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의무적 복지를 벗어난 정책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개발연대의 경제정책이 중심이 됐던 1990년대 이전의 우리 나라 복지정책의 중심은 국가(중앙정부) 중심의 ‘생활보호 법’(1961년)이었다. 생활보호법은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인해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는 당시 헌법 제34조 5항의 규정에 의한 국가사회보장정책의 일환으로 제정됐다. 이후 1980년대 후반에 도입된 최저임금제(1988년), 법정퇴직금제 도(1989년) 등 각종 사회보험 제도의 확대도입 등으로 사회복 지정책의 구조적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어 1990년대에 들어와 이뤄진 ‘사회보장기본법’(1995년 제정)과 ‘국민기초생활보 장법’(1999년 제정)의 제정은 취약계층에 대한 기초적 복지서 비스에 대한 인식을 국가의 책임이자 국민의 권리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1990년대까지 도입된 우리사회의 복지는 국가가 국민에게 최저수준(national minimum)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제공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복지정책에 소요되는 재정의 책임은 전적으로 국가(중앙정부)의 몫이 됐다.
그러나 1991년 지방의회의 부활과 1995년 자치단체장의 직선으로 외형적으로 완전한 모습을 갖춘 지방자치제가 의회와 집행기관을 구성하는 선거를 거듭할수록, 지방정부 중심의 복지정책들이 후보자들에 의해 제시되고 이후 조례의 제·개정 등을 통해 정책화됐다. 특히 21세기 이후 저출산·고령화 등과 같은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대한 대비와 보편적 복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대되면서 출산정책, 기초연 금, 보육료지원, 무상급식 등과 같은 재정지출이 요구되는 복지정책이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자치단체에 의해서도 주도됐다.
선거에서 주민의 복리증진을 위한 정책을 후보자들이 경쟁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지방자치제의 도입 취지에도 적합할 뿐만 아니라 주민의 선호를 정책에 반영한다는 차원에서도 매우 바람직한 것이라고 볼수 있다. 그렇지만 실질적인 문제는 이러한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재원을 스스로 확보할 수 있는 지방 자치단체는 전국 243개 중 실로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갈수록 증가하는 복지재정
주지하는 바와 같이,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열악성은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더욱 악화되고 있다. 지방자치제 부활 바로 이전 해인 1990년 자치단체의 평균 재정자립도(일반회계 순계예산 기준)는 64.8%였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매년 하락하던 자치단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2014년 44.8%이며, 이 중 70% 이상의 재정자립도를 가진 곳은 서울특별시 한 곳뿐이다. 50% 이상의 재정자립도를 가진 자치단체도 서울 특별시를 포함해 12곳(광역 3곳, 기초 9곳)에 불과하다. 자치단체의 재정열악성과 함께 지방정부의 자율 적인 복지정책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중앙정부가 시행하는 각종 국고보조 복지사업에 대한 자치단체의 대응사업비(지방비) 부담분의 증가에 있다. 일례로, 보건복지부가 주관하고 있는 복지사업의 2010년 부터 2013년까지 국비 평균증가율 9.4%임에 비해, 동 기간 중 이에 대응하는 지방비부담 평균증가율은 13.8%로 나타나 자치단체의 재정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고보조사업에 대한 지방비부담 증가와 함께 자치단체의 각종 복지 관련 사업으로 인해 최근 자치 단체의 복지예산 증가율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자치단체의 최근 5년간 예산규모(일반회계 및 특별회 계, 순계기준, 당초예산 기준)는 2010년 138조 8565억원에서 2014년 163조 5793억원으로 증가해 약 16.95% 상승했다. 동 기간 중 복지예산(사회복지·보건분야)은 28조 7592억원에서 42조 4971억원으로 약 60.1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변화는 자치단체가 다른 분야에 투입해야 할 예산의 증가를 최소화하고, 복지분야의 세출예산에 재원을 집중적으로 배분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복지재정의 증가로 인해 지방재정의 압박이 점차 심해짐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선거, 총선, 지방선거가 있을 때마다 복지재정지출의 확대가 경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선출직 공무원의 득표극대화의 행태와 정치적 경쟁이 심해질수록 국가의 책임이 강조되는 참전유공수당 또는 출산장려정책 등과 같은 사무조차도 지방자치단체가 재정적 책임을 약속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복지정책 의변화과정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역할이나 재정관계에 대한 구분이 명확히 정립되지 않은 것이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오츠(Wallace E. Oates) 교수는 사회복지와 같은 소득재분배정책은 지방자치단체보다는 중앙정부가 담당해야 할 재정적 기능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복지정책은 해당 자치단체로 복지수혜계층의 유입을 촉진하는 반면 조세를 부담하는 계층들이 해당 자치단체에서 다른 자치단체로의 이탈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지정책의 효과를 특정 자치단체 내로 국한할 수없는 경우에는 중앙정부가 그 정책에 대한 보조금을 주든지 또는 중앙정부가 직접 시행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된다. 광주광역시 동구의회 김동헌 의원은 광주광역시 동구가 매년 출산장려금으로 수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결과 출산율이 20%에 가까운 증가를 보였으나, 출산장려 혜택을 받은 이후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전출자가 21%에 달해 오히려 전체 인구는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출산장려금 지급과 관련한 위장전입에 대한 우려”를 지적한 바 있다. 광주광역시 동구는 첫째아이와 둘째아이 출산장려금으로 각각 100만원과 200만원을, 셋째아이 이상은 1000만원의 출산축하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에 비해 같은 기간 광주광역시 서구는 셋째아이 출산 시 5만원의 출산축하금을 지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저출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광주광역시 동구의 정책은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매우 바람직한 일이나 실시한 정책이 동구청 관내에 한정되지 않고 전국으로 파급되기 때문에 재정부담을 책임지는 동구 주민의 입장에서는 이 정책이 자신의 효용을 직접적으로 증진하는 것이라고 인식하지 않을 수도 있다.
복지정책 우선순위의 기준
이러한 문제를 지켜보면서 향후 자치단체가 시행하는 복지정책은 어떠한 기준에서 도입돼야 하고, 도입된 많은 복지정책들 중에 우선적으로 시행해야 할 기준은 어떻게 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실제 복지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합의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지난해 보육예산 편성 과정에서 정부와 여당은 무상보육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기 때문에 예산편성의 의무가 정부에 있고, 무상급식은 2010년 지방선거를 통해 일부 자치단체가 재량에 의해 도입한 정책이기 때문에 재정부담의 책임이 자치단체에 있다는 논리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논리라면 무상보육에 대한 지원은 정권이나 대통령이 바뀔 경우 폐지될 수도 있으며, 향후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무상보육보다 무상급식이 우선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에 대한 재정부담을 중앙과 지방이 서로 떠넘기고 있는 또 다른 배경으로,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에 대한 이념적 문제보다는 우리 사회의 공적재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을 꼽을수 있다. 그러므로 복지정책에 대한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면 한정된 재원을 그 순위에 따라 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복지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기준은 ‘사회 구성원에게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 당사자 이외의 사람이 생업을 포기하고 그 사건에 어느 정도 매달려야 하는지의 여부와 복지정책에 따른 외부성의 여부’에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제주도에서 지난 2~3년 사이에 논란이 됐던 ‘무상급식’, ‘무상보육’, ‘농어촌지역 고등 학교 의무교육’의 사례를 이 기준에 의해 우선순위를 정해보자. 월 3백만원의 소득을 가진 세 가구(家口) 에게 다음과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고 가정하자. 첫 번째 가족에게는 초등학교 재학 중인 자녀가 있다. 이자녀에게 학교에서 무상급식을 제공하지 않으면 이 가족은 월 8만원 상당을 학교에 납부해야 급식을 제공받을 수 있다. 초등학교 아이의 급식문제 해결을 위해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생업을 포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가족의 경우, 월 8만원 정도의 급식비를 지불함으로써 초등학생 자녀의 급식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두 번째 가족에게는 만 2세 되는 아이가 있다. 무상보육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 아이의 양육을 위해 맞벌이하던 아이의 엄마는 월 150만원 정도의 급여를 받았던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이로 인해 이 가족은 150만원의 소득이 감소하게 된 것이다. 이 가족에게는 아이의 양육을 위해 엄마가 생업을 포기하는 사태가 발생될 수도 있다.
세 번째 가족에게는 고등학교 다니는 학생이 있다. 이 학생이 연간 납부하는 등록금은 120만원이다. 고등학교 의무교육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 가족은 월 10만 원 정도의 소득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세 번째 사례도 초등학교 아이의 급식문제처럼 가족 중 어느 누구도 현재 하고 있는 생업을 포기할 필요가 없는 경우에 해당된다.
위에서 논의한 사례 이외에 가족 구성원 중 1명에게 중증질환이나 치매가 발생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가족구성원 누군가는 환자의 간호를 위해 생업을 포기해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이 가정은 사실상 보호가 필요한 한 사람으로 인해 다른 가족구성원의 삶이 피폐해질 것이다. 이 같은 기준에 의해 복지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무상보육이나 중증장애, 치매환자 지원 등이 무상급식이나 고등학교 의무교육 보다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에 이론(異論)을 제기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정책을 위한 기준과 합의가 필요
지난 몇 년 동안 무상급식, 무상보육, 대학생 반값 등록금 등과 관련된 복지논쟁이 우리 사회의 이슈를 주도한 적이 있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떠나 복지와 관련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의 크고 작음, 그리고 정치인들의 표의 득실에 따라 복지정책이 결정되기도 했다. 대학 반값 등록금 제도보다 우선적으로 시행돼야 할 고등학교 의무교육 도입에 대한 진지한 논의도 없이 연간 3조원 가까운 재원이 대학생 등록금 무상지원에 배정됐다. 이어, 제주도를 비롯한 일부 자치단체에서는 학자금 융자를 받은 대학생에 대해 융자에 따른 이자를 지원해주는 조례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지금보다 복지정책을 확대하자는 그룹들은 복지를 국가의 의무와 시민의 권리로 인식하며, 국가는 소득과 재산의 구분 없이 모든 국민에게 복지서비스를 평등하게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와 달리 사회구성원의 삶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각 개인에게 있으며 개인이나 가족의 노력으로는 국가가 정한 최저생활을 할 수 없는 경우에만 국가는 선별적으로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도 우리 사회에 상당 부분 존재하고 있다.
이 같은 주장들은 그 이념적 배경에 따라 모두 나름의 합리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복지정책은 한정된 재원을 배분해야만 하는 현실적 과제다. 이렇게 제한된 재정의 범위 내에서 지속가능한 복지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자치단체의 상황에 맞는 복지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있는 기준의 수립과 이기준에 대한 정치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복지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유권자의 목소리나 정치적 지지를 의식해 재원을 배분하거나, 모두를 만족시키겠다는 정치적 계산에서 한정된 재원을 소액으로 분산하는 현재와 같은 예산배분의 행태가 크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