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 지방자치》는 매달 공무원들이 퇴직 후를 알차고 의미 있게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퇴직공무원협동조합의 기고를 게재하고 있다. 이번 호에는 퇴직공무원협동조합원인 윤승원 수필가의 원고를 소개한다. 윤승원 수필가는 대덕경찰서 치안정책 정보관과 금강일보 논설위원을 거쳐 경찰문화대전 금상, 제6회 문학시대 문학대상 등을 수상하는 한편 《청촌수필》 외 5권의 수필집을 펴냈다.
아무리 가진 게 많아도, 높은 지위와 명예를 누려도, 노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곡절과 시련이 많았던 노인일수록 이야깃거리가 많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여전히 인정받고 싶어 한다. 꽃은 시들면 추하다. 사람도 늙으면 육신은 보잘것없지만 건강한 정신으로 창조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노년의 삶은 아름답다. 건강을 잘 지키면서 마음의 풍요를 누리는 노인의 얼굴은 편안해 보인다. 그래서 ‘곱게 늙었다’는 소리는 노인들에게는 최상의 찬사다.
곱게 늙으려면 신체적인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야 한다. 그런데 뜻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다. 이 시대 노인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게 ‘노년 3고(三苦: 가난, 질병, 고독)’다. 3가지 중 어느 한 가지도 해당이 안 되는 노년은 행복을 말할 수 있다. ‘3苦’도 이겨내기 어려운 명제인데, 또 한 가지가 생긴다. 하고 싶은 말을 제 때 하지 못하고 사는 일이다. 자식, 며느리 앞에서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고 말을 하지 못하고 산다. 말을 절제하는 것도 좋지만, 제 때 감정표현을 하지 못하면 화병과 우울증이 된다.
세상 사람들은 걸핏하면 ‘열린 가슴’을 말하고, ‘소통’을 이야기하지만 노인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젊은이들은 많지 않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자연히 말수가 많아진다. 말수가 많은 노인을 젊은이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래 사실 분들이 아니다. 돌아가시고 나면 잔소리마저 그리워지는 게 자식의 마음이다. 가뜩이나 ‘3苦’에 힘들어 하시는 노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도 터놓고 하도록 젊은이들은 진지하게 경청하는 자세를 보여드렸으면 한다. 노인은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찾아오는 ‘내일의 내 모습’이기 때문이다.
‘퇴직공무원협동조합’의 회원이거나 미래의 회원(현직 공무원)이라면 ‘노년 4고’를 크게 걱정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한평생 박봉을 쪼개어 기여금 명목으로 부은 연금이 비록 작은 액수일지라도 노후에 기본 생계유지에 도움이 되니, ‘빈궁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남다른 자긍심을 가진 공익단체에서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과 함께 이따금 소주 한잔 나눌 수 있으니, ‘고독의 고통’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하고 싶은 말’ 제 때 내뱉지 못해 화병을 키우는 일도 슬기로운 전직 공무원들은 만들어가지 않는다.
우리 사회 도처의 잘못된 현상을 보고도 침묵하거나 수수방관하지 하고 따끔하게 바로 잡아주는 이 시대 ‘올곧은 어르신 역할’을 제대로 하고 계신 분들이니, ‘노년 4고’를 스스로 해소하고 산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