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종영
한양대학교 테크노프로덕트디자인학과 교수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하나같이 강조하여 발표한 ‘국민과 소통하는 정부’는 정권 시작의 출발부터 의지와는 달리 그 실효성을 기하지 못하고 번번이 용두사미 정책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일찍이 동·서양을 막론한 인류역사를 살펴보면, 왕이 백성의 신망과 지지를 얻기 위해 취했던 정책 또한 하향식 소통방식이었다. 하향식 소통이라 함은 왕은 국민의 지배자로서 국민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이를 왕의 절대 권력으로 해결해 줌으로서, 백성의 절대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전통적인 전근대적 통치방식의 하나이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더 이상 하향식 소통방식에 이용당하는 국민은 없다. 이젠 새로운 소통방식의 등장이 필요하다. 하향이던 상향이던 간에 수직적 소통방식은 계급, 계층, 지위체계를 동반하기 때문에 그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청하고 이를 해결하고 결과에 대해 은혜를 입고 이에 대한 또 다른 예속과 종속이 유지되게 된다.

일찍이 민주주의가 발달한 서구국가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수평적인 시민이 직접 관장하는 자생적 민관소통위원회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통해 해결해 왔다. 특히 혁명을 통해 자유를 찾고 민주주의를 쟁취한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일찍부터 이러한 자생적 시민소통위원회제도가 자연스레 발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주의적 민주주위를 채택하는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삼권분립에 있어 특히 입법기관인 국회가 주로 이러한 자생적 민간소통주의의 표상이 되고 있다.
독일의 예를 보면 양대 정당이라 할 수 있는 기민당(CDP)과 사민당(SPD) 모두 중앙당과 지구당 산하에 국민들과의 진정한 소통을 귀담아 듣고 이를 입법에 적용하기 위한 시민중심의 위원회가 매우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또한 정당은 이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특히, 정책의 전문화를 위한 분야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문가 특별위원회는 변화와 혁신을 가져오는 매년 수백 건의 전문성이 수반된 훌륭한 정책과 대안을 생산해내는 의회민주주의의 실질적 중추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의 현실과 비교할 때, 그저 정치적 문제에 주로 집중하며 정당의 지원을 받고 있는 여러 정책연구소들과는 그 기능과 역할에서 매우 다른 점을 볼 수 있다.

물론, 의회민주주의에서 정권의 유지 또는 쟁취가 정당정치에 가장 기본이 된다는 점은 지극히 상식에 가깝다. 그럼에도 보다 합리적으로 국민에게 다가가 무엇보다 국민친화적인 혁신적 정책들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소통을 위한 국민 스스로의 자생적 움직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창립된 행정자치부가 지원하는 ‘민관소통위원회’는 정말 많은 기대와 소망이 담긴 의미 있는 행보라 할 수 있다. 다만, 처음의 그 취지대로 실효성 있는 행보를 실현하려면 아직까지 더 많은 방해적 요소와 어려움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빠른 산업발전과 경제성장 만큼이나 급속한 변화를 가져왔다. 대한민국은 외세의 통치와 원조를 받고서도 외세의 개입 없이 스스로 군사정권을 불식시키고 자유민주주의를 쟁취한 세계 유일의 국가라 한다. 이제 우리 스스로도 더 이상 우리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데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만큼, 성숙된 민주국가에 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소수를 위한 다수의 희생이라는 비민주적 국가에서 벗어났으나, 다수를 위해 소수의 의견과 요구는 무시되어야 한다는 ‘대중의 정치’라는 잘못된 민주주의 또한 우리는 원하지 않는다. 소수의 의견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대중에게 그다지 큰 해를 주지 않는 보다 창의성이 있는 요구라면 그 또한 정책으로 채택되어 신중히 판단되어야 한다. 그 예는 아마도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을 것이다.
‘민관소통위원회’의 출범은, 그 존재가치와 앞으로의 행보에 정말 많은 국민의 기대와 관심이 집중될 것이다. 때문에 그 책임 또한 그만큼 막중하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