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소멸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도시가 있다.
전라남도의 가장 큰 화두는 ‘인구소멸’ 대응 방안.한데 순천시는 오히려 인구가 늘고 있고, 특히 청년이
몰려오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순천을 광주·전주에 이어 ‘호남 3대 도시’로
올려놓은 허석 순천시장에게 그 비결을 물었다.
어떤 시민이 휘발유를 사들고 시청 앞에 나타났다. ‘분신(焚身)’하겠다며 위협하는 불청객에게 누구도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상황을 전해들은 허석 순천시장은 그를 시장실로 초대했다. 휘발유를 손에 든 채 시장실에 들어선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왜 안 앉습니까. 앉으세요.”
허석 시장의 말에 엉거주춤 앉은 그는 “진짜로 만나주실 줄 몰랐습니다”라며 놀라워했다. 이윽고 억울한 사연을 하소연하는 동안, 허석 시장은 묵묵히 그의 말을 들어줬다.
들어올 때와 달리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인사하며 나간 그는 며칠 후 정장 차림으로 다시 시장실을 찾았다. 정식으로 사과를 하기 위함이었다.
취임 100일 ‘광장토론’을 시작으로 ‘별밤토크’와 순천시 홈페이지 내 ‘OK소통1번가’ 리뉴얼까지, 3년 동안 숨 가쁘게 달려온 허석 순천시장은 2021년을 ‘직접민주주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지자체에서 소통을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는 많았지만, ‘광장토론’ 같은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지속한 사례는 없었다.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노동운동을 했습니다. 공장 생활을 7년 한 뒤로 노동상담소를 10년 했습니다. 그 10년 동안 체불임금, 부당해고, 산재 등 다양한 상담을 했는데, 상담의 기본은 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허석 순천시장)
듣는 힘이 남다른 허석 순천시장은 시민 민원과 관련된 많은 에피소드를 갖고 있다. 재밌는 일화는 차차 다시 언급하기로 하고, 허 시장과의 대담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이영애 발행인_ 시장님, 안녕하십니까.
허석 순천시장_ 네, 안녕하세요.
이영애_ 시장님의 브리핑 영상도 QR코드로 만들어봤습니다. 직접 보신 소감이 어떠신지요?
허석_ 코로나19로 많은 변화가 있는데, 잡지나 신문도 변화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앞서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영애_ 감사합니다. QR코드에 담긴 브리핑 영상이 경전선 전철화 사업 관련 내용이었는데요, 시장님의 청사진을 안 들어볼 수 없겠죠.
허석_ 경전선 전철화 사업과 남해안 고속철도가 실현되면 목포에서 부산, 광주에서 부산을 2시간 이내로 주파할 수 있게 됩니다. 과거에는 한 6시간 걸렸거든요. 이게 순천에 어떤 의미를 가지냐면, 부산으로 오는 외국인들이 순천만습지와 국가정원으로 오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이영애_ 일자리 창출도 있습니까?
허석_ 아무래도 관광객들이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고, 고속전철과 다양한 교통수단을 통해 순천에 오게 된다면 관련 일자리가 많이 창출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더 나아가 만약 철도 노선이 우회하거나 지중화된다면, 기존 철도를 공원으로 조성해 정원도시로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겠죠. 그린잡(Green Job) 육성 및 정원산업 활성화로 여러 일자리가 정원 속에서 꽃피우게 될 것입니다.
직접민주주의 원년 ‘숨은 참여자 발굴의 해’ 선포
이영애_ 시민주권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하셨는데요, 몰라서 소외되는 시민들이 없도록 깊숙이 파고들어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계획을 들려주신다면.
허석_ 우리 시 조직도를 보면 제일 위에 29만 순천시민이 있습니다. 모든 지자체가 시민을 주인으로 받든다고 이야기하는데, 사실은 받드는 게 아니고 원래 시민이 주인인 것이죠. 그럼에도 시민은 관에 의지하려는 경향이 있고, 관에서는 시민을 이끌어간다는 느낌으로 군림하려는 경향도 없지 않습니다. 저는 순천시의 실제 주인은 시민이므로, 시민이 주인인 자리로 돌려놓자는 것입니다. 시민에게 먼저 다가가야지, 시민이 시장에게 오게 하는 것은 잘못된 행정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영애_ 먼저 다가가는 소통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례가 역시 ‘별밤토크’겠지요. 흥미로운 일화가 많을 것 같습니다.
허석_ 순천에서 가장 북쪽, 가장 서쪽 같은 오지 마을을 제가 택했습니다. 이런 마을을 찾아가서 하룻밤 자고, 시민들과 애환을 함께하며 밤새 이야기 나누는 게 바로 별밤토크였습니다. 시민들이 정말 좋아하십니다. 마을이 생기고 시장이 온 게 처음이기도 했고요.
이영애_ 기억에 남는 사례도 많으실 것 같아요. 한 가지만 소개해주신다면.
허석_ 사실 많은 민원 사례가 다 기억에 남지만 하나만 꼽으라면 순천의 가장 서쪽 마을인 외서면 별밤토크입니다. 그 마을에서 하룻밤 자면서 이런 민원을 들었어요. 외서면은 배추로 유명해 회사를 만들어 절임배추를 생산하고 있는데, 저한테 이 절임배추를 좀 팔아달라는 거예요. 제가 선뜻 “올가을에 완판해드리겠습니다”고 말은 했지만 대책이 없지 않습니까?(웃음) 그래서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김장대축제’였어요.
이영애_ 김장대축제요?
허석_ 네. 순천만국가정원에 3,000명이 모였습니다. 3,000명의 시민이 김장을 70톤 했고요, 7,000명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드렸습니다. 작은 대화에서 시작됐는데, 3,000명의 순천시민이 국가정원에 모여 김장대축제를 벌인 이 사건은 시민들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큰 감동이었습니다.
인구소멸 위기, 홀로 떠오르는 순천
이영애_ 지난 3월호에서도 다뤘지만 전라남도(도지사 김영록)가 인구소멸 문제로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거든요. 유일하게 순천은 인구가 늘어나고, 특히 가장 중요한 청년들이 오고 있습니다. 광주·전주에 이어 인구만 놓고 보면 순천이 ‘호남 3대 도시’로 올라섰는데요, 순천시만 인구가 증가하는 이유는 뭘까요?
허석_ 순천에 여행을 오셨다가 “이런 곳에 살고 싶다” 해서 은퇴하고 순천으로 오신 분을 많이 만나봤습니다. 첫 번째는 ‘인심’입니다. 사자나 호랑이가 사는 마을에 토끼가 이사가진 않지 않겠습니까. 우리 순천시민들은 이름 그대로 하늘의 순리를 좇아 사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두 번째로 순천은 ‘생태금수저’입니다. 제가 선거 때부터 종종 했던 얘기가 “환경이 밥 먹여준다”는 것이거든요. 서울은 교육이나 의료 인프라 등은 당연히 A+일 텐데, 환경은 ‘생태흙수저’인 거죠. 반면 순천은 전반적인 인프라 측면에서 평균 점수로는 오히려 서울보다 높다고 봅니다. 인심도 좋을뿐만 아니라 전반적 인프라의 평균 점수가 높기 때문에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어르신이 편한 도시, 생태도시’로서 순천의 인구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영애_ 청년 인구 증가는 어떤 비결인가요?
허석_ 제가 공약으로 내세운 게 이겁니다. “아이디어 하나만 있으면 성공 신화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의 땅 순천을 만들겠다!” 재작년 창업 아이디어 경진대회 할 때 1등 상금 1억 원을 내걸었고요. 아이디어가 선정되면 시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합니다.
이영애_ 시장님이 좋은 활동을 굉장히 많이 하고 계신데요, 순천시민들도 체감하는지 궁금합니다.
허석_ 일부에서 저한테 왜 홍보를 안 하냐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묻어날 것이라고 봅니다(웃음).
이영애_ 이번 기회에 순천시민에게 시장님의 못다 한 이야기 한 말씀 하시죠.
허석_ 2023년에 국제정원박람회가 두 번째로 열립니다. 같은 국제 행사를 두 번 치르는 대한민국 최초의 도시가 우리 순천시가 될 것입니다. 2023년 국제정원박람회는 관이 주도하는 게 아니고 시민이 주축이 돼 준비하겠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벌써 24개 읍·면·동에 시민정원추진단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여러분 삶의 주인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순천시를 도시 정원으로 만드는 데 있어서도 여러분이 책임의식을 갖고 앞장서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영애_ 마무리를 하려고 하는데요, 진정한 지방분권이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론은 재정분권이 돼야 하겠지요. 실천을 위해 중앙에 바라는 말씀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허석_ 좋은 말씀입니다. 재정분권이 되지 않고 진정한 지방분권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시장을 3년째 하면서 가장 한계를 느낀 게 예산 문제입니다. 중앙에서 예산을 틀어쥐고 있고, 특히 기재부의 벽이 정말 높습니다. 저희는 재정분권이 꼭 필요하고, 법제화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전국의 지방자치 단체장들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중앙정부에서도 열린 마음으로 지방정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영애_ 중앙에서도 지방정부의 이야기를 꼭 잘 듣고 실천하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