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무효를 주장하며 삭발을 감행한 성일종 국회의원(자유한국당)을 만나 패스트트랙의 의미와 자유한국당이 집단 반발하는 진짜 이유를 들었다.
이영애 발행인_ 의원님 안녕하세요. 패스트트랙에 대해 많이들 궁금해하면서도 특히 10~20대들은 잘 모른다고 하는데, 패스트트랙이 무엇이지요?
성일종 국회의원_ 패스트트랙은 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하는 제도 중 하나로, 국회가 극한적 대치 상태에 놓이거나 정쟁이 발생하더라도 민생 법안, 즉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나 현장에서 시급히 처리해야 할 필요가 있는 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여야 간 합의에 따라 지난 19대 국회 때 만든 제도로,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된 법안은 본회의에 상정되기까지 최장 330일이 걸립니다.
이영애_ 안건을 신속히 저리하는 제도이군요. 그런데 의원님, 이번에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에 포함된 선거법개정안, 공수처법안은 무엇인가요?
성일종_ 이번에 지정된 법안들은 패스트트랙 사안이 아니에요. 특히 선거법개정안은 정치인들이 선거를 치르는 일종의 ‘게임 룰’을 정하는 것으로, 국민의 실생활에 긴급하고 필요한 법안이 아닙니다. 또 공수처법은 고위 공직자의 범죄나 부패에 대한 전담 수사기구를 설치하고 일부 기소권을 부여할 수 있게 하는 법안으로, 3권 분립인 우리나라에서 이 법이 도입되면 대통령 직속으로 공수처장을 두게 되고 그러면 대통령의 권한이 매우 막강해집니다. 사법부는 고유의 판단 영역이 있는데, 판사들까지도 청와대가 조사 내지 내사하면 양심에 따라 판결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권력 분립을 명시한 헌법 정신에도 맞지 않아요. 이 점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나가고 미래를 펼치는 데 매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영애_ 패스트트랙 지정 관련해 법적 절차에 문제가 있어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나요?
성일종_ 패스트트랙에는 여당과 제2·3·4 야당이 국회법을 무시하는 등 절차상 문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 패스트트랙에 태울 법안이 전자입안지원시스템을 통해 접수된 점입니다. 행정부나 사법부와 달리 국회법상 법안을 전자 접수할 법적 근거가 없어요. 두 번째, 사보임의 문제입니다. 지난 2002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인 김홍신 의원이 그 당시 당론과 다르게 자기 소신을 끝까지 펼치다가 결국 당에서 사보임시킨 사례가 있습니다. 이후 2003년 지도부 마음대로 사보임할 수 없도록 국회법을 개정했어요. 그런데도 오신환 의원과 권은희 의원을 사보임해 문제가 됐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시끄러웠고요. 이와 같이 절차상 문제와 법률 위반 사항이 있어 패스트트랙, 특히 선거법과 공수처법 관련해 여진이 큰 겁니다.
이영애_ 절차상의 문제로 반대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는데요.
성일종_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나머지 야당은 사실상 준여당입니다. 소수 정당에서 전체 의석을 정당투표에 따라 배분하는 연동형비례대표제로 선거법을 개정해달라고 요구하지만, 현행 1인 2표제를 통해 지역구 후보에게 1표, 정당에게 1표를 줌으로써 비례의 원칙이 구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바꾸려고 보니 공식이 하도 복잡해서 심상정 의원 자신도 어려워하지 않았습니까. 또 현재 세계적으로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한 나라는 독일과 뉴질랜드가 있는데, 얼마 전 독일을 방문해 의원들을 만나보니 제도의 문제점이 너무 많은데 왜 한국에서 도입하려고 하냐고 얘기했습니다. 이런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게임의 룰을 만드는 데 플레이어인 여야 모두의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패스트트랙에 태우면 안 됩니다.
이영애_ 삭발까지 하셨을 때는 강하게 반대할 만큼 필요하다는 뜻인 것 같은데, 현직 국회의원의 신분으로 삭발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성일종_ 국회의원이 하는 의사 표현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말로써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이 통상적인 방법이지요. 이번 사태를 보면서 선거법개정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워 최장 330일 안에 통과되면 집권당과 제2·3·4 야당이 연합해 장기집권으로 갈 수 있습니다. 공수처법 통과도 마찬가지이고요. 3권 분립의 균형이 깨져 대통령이 막강한 권한을 가질 수 있어요. 생각지 않은 방향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익이 억압되는 방향으로, 장기 독재화로 갈 수 있습니다. 의정 생활 중 그 어떤 상황보다도 심각성을 느꼈고, 이를 국민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해 삭발까지 감행했습니다.
이영애_ 중대한 사안임을 알리기 위해 삭발하셨는데, 만약 입장이 바뀌더라도 저지하겠습니까?
성일종_ 국회의원직은 국민이 맡겨주시는 그 기간에만 할 수 있습니다. 현 여당이 야당이 될 수 있고 현 야당이 여당이 될 수도 있어요. 입장과 처지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는 야를, 야는 여를 이해해야 해요. 어떤 법안이 현재 나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해서 그것을 반대하고 그럴 필요가 없어요. 가령 신문등의진흥에관한법률(일명 신문법) 개정안의 경우 임원 임명을 권력으로부터 자유화하자는 내용인데 민주당이 결사반대해 통과를 못 했어요. 우리 당은 처음에 통과시키려고 하지 않다가 지금은 통과시키자는 입장이고요. 이런 법안은 먼 미래를 보며 국민과 국가를 향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영애_ 이번 기회에 정부와 여당을 향해 필요한 말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성일종_ 여당은 야당을 이해해야 하고 야당도 여당을 이해하면서 비판도 해야겠지요. 여야가 국민을 보되, 특히 여당은 국민을 위해서라도 좀 넉넉하게 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영애_ 타협이 잘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지역구인 충남 서산과 태안 주민들에게도 한 말씀하시죠.
성일종_ 정치에 입문하기 전 국회의원의 임무에 대해 크게 고민했었어요. 국회의원을 왜 해야 하는지, 한다면 누구를 위해 하는지, 어떻게 할 것인지를요. 생각을 정리해보니 국회의원은 눈물을 흘리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고 억울한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며 외롭고 힘들어하는 분들의 손을 잡아드리고 응원해주는 역할인 것 같더라고요.
요즘 국민들께서 어렵고 힘들어하시는데, 저희가 큰 힘이 되어드리지 못 하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입니다. 여러분 곁에 자주 다가가고 따뜻하게 위로하겠습니다. 힘내십시오.
이영애_ 다른 말이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여러분에게 힘내라는 말씀이 굉장히 마음에 와 닿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