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필 경기도지사
대한민국의 위기
대한민국 전체를 진단해본다면 과연 지금은 위기인가요? 아니면 이대로 괜찮을까요? 저는 대한민국이 여러 가지 면에서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정치의 위기입니다. 지금 우리 정치 리더십은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갈등을 부추깁니다. 사드배치 문제 하나만 해도 계속 우왕좌왕하고 있고, 경제가 안 좋다고 정부가 추경안을 제출한지 꽤 됐지만 아직 논의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습니다.
경제
그럼 경제는 어떻습니까? 우리 대한민국이 일궈왔던 그동안의 수출주도 전략, 대기업 성장의 낙수효과로 경제가 성장하고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그 모델. 지금은 한계에 봉착한 것 같습니다. 대기업의 성과가 아무리 좋아져도 그 효과가 우리 국민에게 오지 않습니다.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고, 우리 경제를 이끌어왔던 대기업 30개 중 부채 이자를 갚지 못할 정도의 영업이익을 내는 기업이 절반에 가깝습니다.
이런 저성장, 양극화, 우리를 둘러싼 안보환경도 간단치 않은 상황에 미국과 중국의 충돌, 국제질서 구조의 변화 등을 해쳐나갈 역량이 있는가? 이런 면에서 보면 우리 대한민국은 위기입니다. 그럼 이 위기를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까요? 저는 그 방법이 과연 무엇일까를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위기를 단순히 헤쳐나가는 정도가 아니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것을 기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100달러
제가 늘 하나 가지고 다니는 것이 있는데요. 뭔지 아십니까? 달러입니다. 달러 중에서도 100달러입니다. 100달러를 상품으로 생각해 보시죠. 한화로 약 12만 원 정도 합니다. 그런데 원가는 얼마인줄 아십니까? 100달러짜리 하나를 만드는 데 7센트입니다. 우리 돈으로 많이 쳐봐야 100원입니다. 100원에 찍어서 12만 원에 파는 거죠. 이걸 가지려고 모든 나라가 난리입니다. 대한민국은 1998년에 이게 없어서 부도가 났습니다. 이걸 가지려고 사람 목숨을 빼앗기도 합니다. 그런데 미국 연방은행은 이걸 자기들 마음대로 찍어냅니다. 이런 상품이 어디 있습니까? 광고도 안 하고, 12만 원짜리를 100원에, 그것도 마음대로 만들어내죠. 저는 역사상 가장 멋진 상품은 이 달러라고 생각합니다.
글로벌 스탠더드
미국이 1조 달러가 넘는 적자를 일으켜도 국가부도가 나지 않는 이유는 바로 달러가 화폐를 뛰어넘는 글로벌 스탠더드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이 도전해야할 것은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바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만드는 겁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얼마나 많이 만드느냐가 앞으로 대한민국이 이 위기를 극복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화두는 ‘글로벌 스탠더드를만들자’는 것입니다.
51 대 49
저는 경기도지사입니다. 도지사로서 도정을 이끌면서 저의 철학적 기반은 경기도민 한 분 한 분의 행복을 크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의 행복이 극대화되면, 그것이 모여서 사회도 건강해지고 국가가 강해진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개인의 행복을 어떻게 하면 높여줄 수 있을까요?
우리 국민들이 다 그럽니다. ‘정치 좀 바꿔라’, ‘맨날 싸우냐’. 그런데 싸울 수밖에 없어요. 시스템을 그렇게 만들어놨습니다. 선거가 거의 51 대 49로 끝납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 대한민국의 권력 시스템은 100 대 0입니다. 불과 2%로 차이로 100%의 권력을 가지는 겁니다. 게임의 룰이 이러하니, 사람들은 이기기 위해서 수단방법 가리지 않게 됩니다. 상대방을 흠집 내고 네거티브 하며 갈등이 지속됩니다.
권력의 공유
저는 정치에서 협치를 이야기합니다. 협치의 핵심은 권력을 나누는 것입니다. 권력을 공유할 때 진짜 대화가 됩니다. 권력을 공유하지 않으면서 협치해 달라? 그건 말이 안 됩니다. 내 것을 나누어주고 상대방의 협력을 받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권력의 공유입니다. 제가 해보니까요 권력은 나누면 커집니다. 어떻게 하면 권력을 나눌 수 있을까요? 저는 여기서 우리 경기도가 글로벌 스탠더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헌
많은 분들이 내년 대선에서 개헌이란 이름으로 정치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4년 중임제로 가자, 어떤 사람은 내각제로 가자고 합니다. 제가 볼 때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을 직접 손으로 뽑고 싶어 하지만 대통령이 너무 독주하는 것은 견제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면서 의회와 협력하기를 바랍니다. 이런 시대적 요구에 따라 새로운 제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을 직선으로 선출하고 의회에 의석 순에 따라서 내각을 부여합니다. 대통령은 시스템대로 분배해 구성된 내각에서 모든 문제를 논의합니다. 대통령과 각 당에 파견 나온 대표자들이 토론을 통해서 결정을 하면 의회에서는 순조롭게 예산과 정책이 확정될 겁니다. 어차피 의회에서 하는 일을 아예 내각이 미리 하는 거죠.
경기도의 연정
경기도는 이미 시작을 했습니다. 이미 저는 야당과 함께 연정을 하고 있는데요. 거기에 더해 의회에 지방장관을 요청했습니다. 양당의 의원님들이 지방장관을 파견하면 저는 그분들과 예산과 정책 등 모든 것을 논의해서 결정하고, 그렇게 되면 의회에서는 문제없이 자연스럽게 풀려나가겠죠. 아울러 지금 어떤 정책을 우리가 할 것인가에 대한 아주 디테일한 연정 계약서를 쓰고 있습니다. 이런 계약서와 지방장관의 파견을 통해서 시간은 좀 들겠지만 시스템적으로 협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왜 가능할까요? 제가 그만큼 야당, 의회와 권력을 나누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픈 플랫폼
두 번째로 지금 전 세계를 움직이는 글로벌 기업 중 가장 주목받고, 우리 삶을 드라마틱하게 바꾼 기업들이 바로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입니다. 이 기업들의 공통점은 오픈 플랫폼입니다. 그들이 깔아놓은 플랫폼에는 누구든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과정에서 수익을 가져갑니다. 이것은 우리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모델입니다. 대한민국 경제는 이제 오픈 플랫폼 형식으로 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공유입니다.
너의 아이디어
여러분이 계신 이곳 스타트업 캠퍼스가 바로 그러한 공유경제의 모델입니다. 경기도가 1700억 원을 투자해 만들었습니다. 변리사, 정부기관, 통계청 그리고 벤처캐피털, 엑셀러레이터 등 스타트업을 위한 모든 기관들이 다 들어와 있습니다. 운영은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IT의 희망, 김범수 카카오 의장에게 맡겼습니다. 여기에서는 창업을 하려는 젊은이들에게 출신, 학력, 배경 묻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의 불공정은 부모의 재산 상태가 아이들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곳에서는 부모의 재산에는 아무도 관심 없습니다. 관심 있는 건 하나, ‘너의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느냐’입니다. 혁신적인 생각만 있으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주고, 투자도 해줍니다. 여기는 불공정이 없습니다. 아주 공정한 경쟁만 있을 뿐입니다.
프링글스와 경기도 감자칩
하나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링글스라는 감자칩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마트에서는 3300원에 팔립니다. 그런데 바로 옆에 경기도의 어떤 중소기업이 만든 감자칩이 있습니다. 퀄리티는 좋지만 브랜드는 없습니다. 이건 2800원에 팔립니다. 소비자들은 3300원짜리 세계적인 프링글스를 먹을까, 2800
원짜리 맛있지만 이름 모를 제품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대부분 프링글스를 고릅니다.
경기도 주식회사
2800원짜리 감자칩을 만드는 중소기업을 위해 경기도가 플랫폼을 깔았습니다. 이름은 경기도 주식회사입니다. 실제로 10월에 문을 여는, 경기도가 투자하는 주식회사입니다. 감자칩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 물류비용, 마트 입점료, 홍보비, 시장개척비가 필요합니다.
e커머스 시대에 기업 경쟁력의 핵심은 얼마나 도시와 가까운 곳에 물류단지를 짓느냐입니다. 그러나 도시에 가까울수록 땅값이 비싸죠. 제가 도지사 되고 보니까 경기도에는 땅이 많은데, 땅을 놀리고 있어요. 그래서 물류단지를 원하는 기업들에게 땅을 공짜로 내줄 테니 땅값 대신 물류단지의 30%를 받아 경기도 주식회사에 들어오는 중소기업에 거의 공짜로 줍니다. 이렇게 한계 비용을 최대한 낮추고 낮추면 2800원짜리 감자칩이 900원이 됩니다. 경기도의 우수한 중소기업이 만든 물건이 경기도주식회사 브랜드를 달고 우리가 만든 플랫폼 위에서 놀기 시작하면 프링글스를 무찌를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새로운 공유경제의 모델입니다.
새로운 혁신
또 경기도 협동조합도 문을 엽니다. 은퇴자, 경력단절여성 등 이런 분들이 할 수 있는 사회적 일자리 공동체를 위한 플랫폼입니다. 이처럼 중소기업과 공동체, 그리고 창업하는 청년들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어 어떻게 공정하게 게임을 하게 할 것이냐. 이것이 바로 새로운 행정의 경제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경기도에서 시작하지만 조만간 대한민국 전체, 전 세계로 퍼져 공공이 플랫폼을 깔고 상품의 질과 아이디어의 혁신성만 있으면 그 안에서 누구든지 전 세계와 겨룰 수 있는 플랫폼, 정치와 경제의 공유 이 두가지가 새로운 혁신 모델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 위 내용은 지난 8월 19일 경기도 판교 스타트업캠퍼스에서 열린 한국지방자치학회 하계국제학술대회에서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기조특강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