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국 한국디자인진흥원 진흥본부장
2015년 58위, 2014년 47위, 2013년 41위…. 급격히 하락 중에 있는 우리나라의 순위이다. 어떤 순위일까? 이것은 매년 UN이 발표하는 ‘세계행복지수’ 중 우리 나라의 최근 성적이다. 양극화, 물질주의, 가족 관계의 악화 등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심대한 사회 문제들은 행복지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심화되어 가고 있는 사회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다른 나라들은 디자인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2007년 영국의 디자인진흥기관인 디자인 카운슬은 지자체와 함께 Dott07(Design of the time 이시대의 디자인)라는 프로젝트를 실행하였다. 디자인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음을 입증한 캠페인이자 디자인 주도의 공공서비스 혁신 프로젝트였다. 총 110 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었고, 학교/커뮤니티, 에너지/환경, 식품/ 영양, 건강/웰빙, 지속 가능한 관광, 도시/농촌, 운송/교통, 주택/ 주거환경 등 8개의 주제로 공공 서비스를 혁신하기 위한 디자인 프로젝트가 광범위하게 시행되었다. 국민의 생활 전 범위를 아우르는 영역에서 당면한 문제들을 디자인을 통해 해결하고 삶의 질을 위한 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눈에 보이는 부분만이 아닌 보이지 않는 부분을 디자인의 영역으로 인정하고,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무엇인지, 문제의 핵심 원인은 무엇인지 발견하는 과정을 디자 인을 통해 다루고 있는 것이다.
국민이 참여하여 정책을 제안하고 추진하는 호주 사회혁신센터
호주 사회혁신센터(TACSI, The Australian Center for Social Innovation, www.tacsi.org.au)는 2009년 설립된 독립적인 비영리 기관이자 호주의 대표적 사회혁신센터이다. 이곳에서는 사회학자, 인류학자, 서비스디자이너, 사회복지사, 마을 만들기 활동가, 파이넌스 전문가 등 다양한 전문가가 함께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디어들을 직접 실행하면서 대안을 만들어 가고 있다. 초기에는 호주정부의 지원을 받았지만, 현재는 정부로부터 자율성을 가지면서 사업 내용의 구성과 결정을 모두 독립적으로 진행하고 정부 내 혁신을 위한 다양한 훈련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등 공무원들을 변화시키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많은 흥미로운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데 그 중 가족 관계와 관련된 사회 문제를 디자인적 접근법을 통해 해결한 사례를 소개한다.
패밀리 바이 패밀리(Family by Family, familybyfamily.org.au)는 호주 내 주요 사회 문제인 가족 관계로부터 오는 문제를 해결 하는 서비스를 디자인한 사례이다. 호주 사회혁신센터의 ‘급진적 리디자인팀(Radically Redesign Team)’이 협력디자인(Co-design) 방법을 통해 개발한 것으로 가족 문제를 이웃 간 대화와 교류 증진을 통해 해결하는 서비스이다. 어려운 시기를 겪은(불화, 재정 등) 가정을 모집하여 상호 간 상담 트레이닝을 지원한다. 현재 문제를 겪고 있는 가정은 문제를 온라인에 기술하고, 상담 가족은 만나고 싶은 가정을 선택할 수 있으며 자연스럽게 공개된 다른 사람들의 기록을 보고 자극과 위로를 받아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문제를 극복한 가정들은 다시 다른 구성원과 이를 공유하며 긍정적인 피드백을 얻는다. 법이나 전문 카운슬러에 대한 고려 없이 지역민 간의 네트워크를 조성해 주는 것만으로 사회 현안인 가정 문제를 해결 가능하며 금전이나 전문가의 지원보다 지속적이고 세심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을 제시한 프로젝트이다.
또한 각 가족이 서로의 목표를 개발하도록 돕는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에 대한 인식까지 유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용자의 관점에서 개발되어 참가자들의 심적 변화를 효과적으로 유도해 낸 사례라 할 수 있다. 남호주의 세 군데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시범 사업이 진행되었다. 디자인이 정책을 개발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결과 이 프로젝트는 2012년 호주 국제디자인어워드에서 최고 상을 수상하였다. (출처: www.australianinteriordesignawards.com)
국내에서의 국민 참여 정책 디자인 동향 국민디자인단
국내에서는 행정자치부, 산업통상 자원부, 한국디자인진흥원이 함께 계획하고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실행, 서비스디자이너를 비롯한 1500여 명의 국민이 참여하며 추진되었던 국민디자 인단이 주목할 만하다. 국민이 참여하여 정책의 문제를 수요자 중심으로 다시 살펴보고 해결책을 구상하는 정책 기획 워킹 그룹인 정부3.0 국민 디자인단 활동은 작년 248개 주제로 전국 지자체에 운영되면서 디자인 방법에 대한 관심이 전국으로 확산되도록 하는 효과가 있었다. 공무원들에게 정책을 수요자 중심으로 개선하는 데 디자인 방법이 역할을 한다는 점을 알게 했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 참여자들에게 정부 정책에 대해 이해와 공감을 갖게 하는 큰 효과가 있었다.
예를 들면 에너지복지 제도에 대한 주제를 다루었던 팀은 일주일간 전기제품과 온수를 사용하지 않는 등 복지 사각지대의 사람들과 공감하기 위한 노력을 해보면서 그 참여를 통해 수요자와 공급 자간의 간극을 줄이는 정책을 구상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에너지 복지 대상자가 개별로 신청하지 않아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안된 정책 개선안은 2016년 산업부와 보건부와 협력, 시스템 통합을 통해 실현될 계획이다. 국민디자인단은 올해 초 ‘iF디자인 어워드(ifworlddesignguide.com)’에서 서비스디자인 부문 최고상(골드)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 iF 디자인어워드는 1953년부터 시작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디자인 상으로 미국 IDEA, 독일 레드닷과 함께 세계 3대 디자인어워드로 꼽힌다. 현재까지 iF의 서비스디자인 부문 수상작은 국민디자인단이 세계 최초이자 유일하다. 디자인계에서 오스카라 불리는 iF 골드를 수상하였으니 우리에게도 이제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대표적인 정책 디자인의 사례가 생긴 셈이다.
공무원은 정책의 공급자이면서도 동시에 수요자라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정책 수요자에게 진정 필요한 것을 돌아볼 수 없는 지도 모른다. 디자인은 수요자의 관점에서 미세하게 정책의 개선방향을 찾고 창의적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혁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도 혁신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효과적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수요자와 관점에서 문제의 핵심 원인을 찾아내는 데 디자인을 활용하자. 디자인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