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진 경상북도 행정부지사
지방자치를 제약하고 있는 현행 헌법
올해 3월 26일 대통령이 지방분권이 포함된 헌법 개정안을 발의하였다. 하지만 엄청난 정치적 논란을 거쳐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 개정안이 5월 말 정족수 미달로 투표가 성립 되지 않아 폐기되었고 아쉬움을 남겼다. 우리나라 헌법 제8장에 지방자치를 2개 조 문에서 규정하고 있다. 현행 헌법상 지방자 치에 관한 규정은 1949년 제헌헌법에서 처 음으로 규정된 이래 내용상 큰 변화 없이 5 차례에 걸쳐 개정되었다. 1987년 10월29일 개정된 현행 헌법은 개정된 지 30여 년이 지 났다. 1995년부터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직선제 로 하면서 지방자치 시대가 본격 개막했다. 1950년대 및 1960년대 초반의 부분적인 지 방자치 경험을 제외하고는 지방자치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규정한 헌법하에 지방자치를 하는 셈이다. 헌법 규정과 지방 자치 현실 간에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자치단체에서 지방자치 업무에 종사하다 보 니, 헌법 개정 없이 법률의 제·개정만으로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하기에는 어려운 부분 이 한둘이 아니다.
자치입법권 대폭 확대
우리나라는 헌법 제117조에서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도 록 하고 있다. 헌법 제37조에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 안전보장, 질서 유지 또 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지방자치법 제22조에서 주민의 권리 제한 또는 의무 부 과에 관한 사항이나 벌칙을 정할 때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조례를 제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치입법권 측면에서만 보면 지방의회 무용 론이 나올 정도로 자치입법권이 제한적이 다. 국회에서 국가 사무나 자치사무 구분 없 이 자세한 내용을 담은 법률을 제정하거나 개정하더라도 현행 헌법상 합법이다. 또 행 정부에서 시행령 등을 통해 행정입법에서 자 세히 규정하는 경우 자치단체의 조례로 규정 할 사항이 대폭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일본의 경우 헌법 제94조에서 법률의 범위 내에서 조례를 제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일본 지방자치법에서 법령에 특별한 규 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치주의의 원 리에 따라 조례에 의해서만 주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도록 명확히 하고 있고 조례를 위반한 자에 대하여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 100만 엔 이하의 벌 금, 구류, 과료 또는 몰수의 형 또는 5만 엔 이하의 과료를 부과하는 취지의 규정을 둘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독일도 헌법 제28조에 서 게마인데(Gemeinde)는 법률의 범위 내 에서 지역공동체의 모든 사안을 자기의 책임 으로 규율할 권리가 보장되도록 하고 있다. 자치입법권의 범위를 자치단체별 특성에 맞 게 탄력적이고 자율적인 규율이 가능하도록 ‘법령의 범위 내에서’라는 굴레를 어떠한 형 식을 취하든 완화해 줄 필요가 있다. 특히 행정입법을 통해 자치단체의 입법권을 제약 하는 부문은 제고되어야 한다. 조례의 법 집 행력 제고를 위해 헌법 제37조의 기본권 제 한의 법률 유보 규정과 관련해서도 일정 부 분 조례를 통한 권리·의무가 가능하도록 개 정이 필요하다.
자치단체 사무 범위의 확대
2013년 법령상 사무 총조사 결과 총 4만 6,000건 중 68%에 해당하는 약 3만 1,000 건이 국가사무고 32%에 해당하는 약 1만 5,000건이 자치사무로 나타나 중앙정부에 과도하게 권한이 집중된 구조다. 이렇게 된 근본 배경에는 헌법에서 자치단체의 사무 보 장이 미흡한 데서 기인한다. 헌법 제117조 제1항에서 자치단체의 주민복리사무 처리 권, 재산관리권, 자치입법권을 인정하고 있 을 뿐이다. 프랑스의 경우 헌법 제72조를 통해 “지방자 치단체는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가장 잘 실 행할 수 있는 권한 전반에 대한 결정권을 가 진다”라고 보충성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고 독일의 경우 헌법 제28조에서 “게마인데는 법률의 범위 내에서 지역공동체의 모든 사안 을 자기의 책임으로 규율할 권리가 보장되어 야 한다”라고 자치단체의 자기 책임의 원칙 을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자치단체가 그 소관 사무를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처리한 다는 자기 책임의 원칙과 중앙정부의 역할은 자치단체가 수행하기 곤란한 부분만 보충적 으로 인정한다는 보충성의 원칙을 헌법에 명 시하여 자치단체의 사무와 권한을 확대할 필 요가 있다.
자치단체의 재정권 신설
헌법 제59조에서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 률로 정한다”고 규정하여 엄격한 조세법률 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지방세를 주민들이 대표에 의해 승인한 조례로 정하는 것이 타 당하고 자치단체의 자주 재정권을 보장하는 것이 지방분권의 이념에 부합한다는 주장이 일정 부문 설득력을 얻고 있다. 즉 우리나라 가 채택하고 있는 엄격한 조세법률주의를 완 화하자는 것이다. 지방세 조례 주의를 전면 채택할 경우 지역 간 세 부담 격차 확대, 중 앙과 지방과 이중과세 발생 등 부작용도 예 상할 수 있다. 일본처럼 다소 완화된 조세법률주의를 채택하여 조세법률주의 근간은 유 지하면서 과세자치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법률에서 자치단체가 조례로 세목 신설이나 세율을 조 정할 수 있는 요건과 절차를 두면서 부분적 으로 과세 자치권을 인정하는 근거를 헌법에 규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수도권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의 자치단체가 지방교부세에 의존하는 세입 구조이기 때문에 지방재정조정 제도를 헌법 에 명시하여 헌법에서 실질적인 제도 보장을 할지 여부도 항상 논란거리다. 지역 간 재정 격차가 심한 한국적 지방자치의 현실 등을 반영하여 중앙정부와 자치단체 간, 자치단 체 간 재정조정제도를 헌법에 반영하여 중요 한 국가운영 방향으로 선언해 안정적인 재정 운영을 보장하는 것이 자치단체의 재정적 기 초를 튼튼히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조속히 분권형 개헌을 위한 공론화의 장 마련
이 외에도 헌법 전문이나 총강에 지방분권 국가 선언,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명 칭 변경, 중앙정부와 자치단체 간 협력회의 신설, 자치단체의 종류에 대한 명문화, 자 치권 침해 시 제소권 명시 등과 같은 분권형 개헌과제가 있다. 분권형 개헌의 상당 부분 은 국회나 중앙정부가 가진 권한을 내놓아야 가능하고, 너무 많은 내용을 헌법에 담으려 하는 경우 이해관계자 간에 합의가 어렵다. 현실적으로 많은 내용을 헌법에 담으려고 욕 심을 내기보다는 지방자치의 핵심요소인 자 치입법권 확대, 자치단체의 사무 범위 확대, 자치단체의 자치 재정권을 보장 등을 중심으 로 개헌을 논의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내용이 빠진 분권형 개헌은 효 과 면에서 의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기 때문 이다. 민선 7기 지방선거도 끝난 만큼 다시 한 번 분권형 개헌을 위한 공론화의 장이 조 속히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