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급격히 떠오르는 신조어 ‘개저씨’를 다룬 다큐가 방영됐다. 그러나 재미는 있었다는데, 시청한 사람들은 왠지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 모양이다.
기획 정우진 기자
‘개저씨’라는 단어가 있다. ‘개+아저씨’의 합성인데, 나이와 지위를 무기로 약자에게 횡포를 부리는 40대 이상의 남성을 뜻하는 말이다. 이 용어는 최근 SNS에서 올 상반기 대표적인 신조어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관련 3월 14일 SBS는 ‘아저씨, 어쩌다보니까 개저씨’라는 제목의 스페셜 다큐를 방영했다. 이 다큐는 참신하고 익살스러운 편집으로 방영 당시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뒷맛’은 개운치 않았던가 보다. “통쾌하다” 보다 “찝찝하다”는 반응이 더 많은 것이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미디어는 ‘프레임’을 얼마나 세련되게 다루느냐가 관건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y Lakoff)는 현대인들이 복잡한 사회적 현상을 설명할 때 효율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사고 방식을 메뉴얼화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를 ‘프레임(Frame)’이라고 명명했다. “그림을 액자 프레임에 끼우듯 그림도 글도 우겨넣는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운데, 이는 특히 미디어가 사회적 의제를 다루는 방식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이론이다.
예컨대 뉴스든 영화든 짧게는 1분에서 길게는 2시간 동안 하나의 문제를 가지고 서론부터 결론까지 다 보여준다. 그런데 세상일이 얼마나 복잡한가? 때문에 그 시간 안에 모든 걸 다 설명하긴 어렵다. 그러나 하나의 영화나 다큐, 뉴스보도는 대게 결론이나 원인 분석이 필수불가결하기에, 그 과정 에서 논리적 비약이나 비현실적인 장치가 들어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결국 미디어에서의 ‘편집’이란 이 프레임 속에 얼마나 잘 ‘우겨넣느냐’가 관건이다. 초반 얼개를 짜는 것, 그리고 후반 편집의 역할이 정말 중요한 것인데, 잘 된 미디어는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곧바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쩌다보니까 개저씨’, 어쩌다가 이렇게 다큐를?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 다큐는 잘 우겨넣지 못해 논란이 된 케이스다. 다큐는 ‘개저씨’가 어떤 용어인지 소개하고, 특히 직장에서 부하 여직원에게 막말과 성희롱, 훈계를 하는 중년 직장 상사를 대표적인 ‘개저씨’ 케이스로 소개한다.
특이한 것은 다큐 초반 드라마 ‘미생’에서 ‘직장 내 악마 부장’ 캐릭터를 맡은 배우 송희원 씨를 초빙해 ‘개저 씨’ 캐릭터를 극 중 콩트 형식으로 재연한다는 것이다. 인기있는 캐릭터를 차용해 다큐의 재미는 배가됐지만 다큐는 그 때부터 이상해진다. ‘개저씨’ = ‘꼰대짓 하는 직장 고위 남성 간부’라는 공식을 성립시킨 것이다.
다큐는 이 프레임을 극 종반까지 끌고가는데, 결국 중소기업의 남성 중년 대표와 간부들을 불러다놓고 부하 여직원들이 카페에서 직장 상사 험담을 하는 걸 모자이크 처리해서 보여주며 ‘세대간 소통’이라는 명분으로 이들의 ‘반성’을 유도하는 결론을 맺는다. 물론 다큐 중간중간 아버지로서,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기성세대로서 이들의 고충을 다루긴 하지만 다큐의 주제의식에서는 곁가지일 뿐이다. 때문에 이 다큐의 전개, 즉 ‘프레임’이 논란의 대상이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일단 ‘개저씨’라는 신조어가 ‘중년 꼰대 남성’을 지칭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다큐처럼 ‘직장의 남성 상사’나 ‘남성 대표’만 지칭하는 용어는 아닐 것이다.
또한 따지고 보면 꼰대스러운 중년은 ‘남성’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한편으로 꼰대는 세대가 다른 청년일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어디에서나 꼰대들을 맞닥뜨린다. 지하철이나 기차, 버스, 호텔 등에서 타인을 무시하고 소음을 발생시키는 사람들, 식당 종업원에게 갑질하는 손님들, 공공장소를 무단 점유하거나 시끄럽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방치해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고는 안면몰수하는 사람들…. 이 수많은 꼰대들을 놔두고 왜 ‘개저씨’만, 그중에서도 ‘중년 직장 남성 상사’만 몰아붙이는가?
‘알파고’ 같이 완벽할 필요 없지만 최소한 상처는 주지 말아야
즉, 좀 더 폭넓게 보자면 ‘개저씨’는 우리 사회 속에 양산되고 있는 수많은 꼰대들 중 하나의 케이스일 뿐이 다. 또한 그 탄생 원인을 진단하고 문제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데 있어 보다 복합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그러나 다큐는 ‘개저씨’에 집중하다보니 그 원인도 문제 해결 방법도 허술하게 분석한다.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상명하복 군대문화에 물들다 보니 이들이 이렇게 됐다’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빠르게 취사선택해 용이한 하나의 결론만으로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을 이야기하는 정도로 위험한 작업이다. 그리고 그것은 꼰대들의 의사강요방식이기도 하다. 꼰대들의 말이 그렇듯, 이 다큐도 설득력있게 들리기는커녕 ‘무슨 말도 안되는 말을 하는거야?’라는 마음 속 반발심만 생기게 한다.
물론 미디어가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리고 급박하게 떠오르는 신조어를 다루기에 기획 시간이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알파고’ 같은 완벽한 PD의 편집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최소한 문제를 단순화시켜서 수많은 중년 남성들에게 상처를 주어선안 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