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개헌,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

  • 등록 2018.07.16 11: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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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수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사무총장

 

1987년 6월은 유난히 더웠다. 내가 몸담았었던 경북도청 청사는 대구시에 터를 잡고 있었던 터라, 다른 지역보다 무더웠다. 돌이켜보면 이 시기는 한국 근대사의 분수령이었다. ‘대통령은 우리 손으로 뽑아야 한다’는 한줄짜리 문장은 직선제 개헌 요구로 집약돼 전국 곳곳에서 분출됐다. 그간 억눌렸던 민심은 성난 파도로 출렁였다. 노도(怒濤)를 보고 있자니 배가 뒤집히는 건 시간문제라 여겼다. 아니나 다를까 국가기관이 홍역을 치렀
다.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전국의 자치단체가 시위대에 포위됐다. 경북도청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는 시위대의 도청진압을 막기 위해 맨몸으로 입구를 막아섰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시위대의 요구는 날이 갈수록 거칠어졌고 그들의 기세는 찜통더위에도 꺾이지 않았다. 공권력이 투입되면 유혈사태는 불 보듯 뻔했다. 청사를 휘감은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구호를 들으면서, 우리는 도청이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을 공유했다.


지방자치 제도화, 탄핵정국 큰 소요 없이 평화롭게 마무리 된 요인

‘촛불 1년’ 즈음에, 나는 과거를 떠올리면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1년 전 서울 광화문에서, 광주 금남로에서, 부산서면 중앙로에서, 대구 범어로에서 ‘이게 나라이냐’고 물었던 그들은, 옛날 초년공무원의 눈에 비친 성난 군중이 아니었다. 법과 제도를 존중하며 질서 있는 변화를 요구한 성숙한 시민이었다. 광장에는 살을 에는 추상(秋霜)같은 구호 대신흥겨운 노래가 울려 퍼졌다. CNN을 비롯한 세계 언론은 성숙된 시민의식을 전
세계에 보도하였다. 나라 사정도 그때와 달랐다. 탄핵정국과 이로 인한 여파로 중앙정부의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도 주민과 직결된 도정이나 시정은 중단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사정이 이렇게 달라진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나는 ‘지방자치 22년’의 성과라고본. 87년 민주화로의 이행 이후 1991년 지방의회 부활, 그리고 1995년 단체장 직선제도입으로 풀뿌리 민주주의가 제도화되고 견고해진 결과라는 것이다.


민주화 이전 단체장은 임명직이었다. 우리 지역 대표를 주민 손으로 뽑는 선출직이 아니라, 인사권자의 선택에 따라 그 자리를 맡게 되는 구조였다. 대통령이 단체장을 임명하고, 단체장은 시군 구청장을 지명하는 식이었다.


이렇다보니 지방정부의 위상은 최종 인사권자인 대통령과 중앙정부 아래에 놓이게 됐다. 이런 형태에서는 의사결정이 하향식으로 이뤄지는데, 이런 방식은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할 때 적합하다. 중앙에서 정책을 결정해 아래로 내려 보내면 행정의 통일성을 기대할 수 있고, 집행의 속도를 단축해 비용 발생을 최소화해 정책 집행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집권의 장점이다.


문제는 대통령이 위법행위를 하거나 국민들의 신임을 받지 못할 때 생긴다. 국가지도자의 정통성과 대표성이흔들리면 그 여파가 단체장까지 미치게 되기때문이다. 87년 상황이 꼭 이랬는데, 당시 국정운영이 마비가 되고 국가가 뿌리째 흔들리게 된 배경에는 이런 중앙집권 제도의 맹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때 직선제 개헌이 이뤄져서 다행이었지, 하마터면 국가적 비극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다.

 

"지방분권이 이뤄지면 국가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 지방분권은 지방자치의 제도화를 넘은 자치제도의 공고화이며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권력은 나누면 더 커지는 법이다. 지방분권은 주식투자로 바꿔 말하면 위험을 사전에 막고 안정적 수익을 보장받은 가장 확실한 방안이다."

 

지방자치 더 진전돼야…첫발은 지방분권 개헌
우리가 목도한 2016년 촛불 정국은, 여러 가지 불안 요인에도 불구하고 국가 근본이 흔들리는 파국으로까지치닫진 않았는데, 그것은 우리 지방자치 제도가 이런 중앙집권의 폐해를 사전에 막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주민의 직접 투표로 선출된 단체장과 지방정부, 지방의회가 국가권력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수행하며, 매우예외적 상황이 국정 마비로 이어지지 않도록 충격을 최소화 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민주주의와 지방자치 제도는 갖은 곡절을 거쳐 가며 조금씩 진전해 왔다. 우리가 이미 이런 제도의 효과를 누리고 있는 탓에 주어진 것으로 생각해서 그렇지 그 과정이 간단치 않았다.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하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추자는 얘기는 아니다. 지방자치는 더 진전돼야 한다. 한번 상상해보라. 고용, 산업, 복지,공공안전, 교육, 환경 등 각종 정책이 현지 지자체별로 차별화된다. 주민 직선으로 뽑힌 단체장은 주민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공공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해 행정자원을 쏟아 붓는다. 위상이 높아진 지방공무원도 소신 것 일할 수 있다. 위 과정들이 선순환이 이뤄지면 책임자치가 구현될 수 있다. 이것이 지자체별로 활성화되면 국가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지방자치의 제도화를 넘은 자치의 공고화이며,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 첫발은 헌법 전문과 총강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 국가’임을 천명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 117조는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했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종류는 법률로 정한다’고 단서조항을 달았다. 그러니까 입법권을 쥔 국회가 법으로 규정한 사항만 할 수 있는, 실질적 지방자치를 가로막는 매
우 형식적 조항이다. 그래서 현재 헌법을 고쳐 지방분권 원리가 국정 및 입법과 해석의 근본원리로 기능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지방의 명칭을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지방정부로 변경해 지방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하도록 해야한다. 또 지역주민의 삶에 가장 가까운 지방정부가 우선적으로 사무를 처리하고 국가는 그 지방정부가 할 수 없는 영역에서 보충적 역할을 담당한다는 보충성의 원칙도 세워야 한다. 지방정부의 자치입법권, 자치조직권, 자주재정권 보장 등도 이뤄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헌법 개정은 내년이 적기다. 나는 87년 6월 항쟁이 직선 개헌으로 이어졌듯이. 촛불이 지방분권 개헌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시절부터 줄곧 일관되게 지방분권을 약속했으니, 개헌 실현 가능성도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권력은 나누면 더 커지는 법이다. 지방분권은 주식투자로 바꿔 말하면 위험을 사전에 막고 안정적 수익을 보장받은 가장 확실한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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