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를 자치답게 - 시민이 질서를 정하고 정치와 행정은 이에 따르라 -

  • 등록 2018.07.12 10:5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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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위원
광주광역시 광산구 ‘투게더광산
나눔문화재단’ 상임이사

 

 

주민자치, 아직 갈 길 멀다.


전국 주민센터 ‘주민모임’에 종종 특강을 나간다. 입구엔 참석자 방명록이 있고, 공무원 몇 분이 줄줄이 서서참석확인 서명을 받는다. 단체장의 등장과 함께 개회하고, 익숙한 국민의례가 이어진다. 내빈 소개가 지루할 만큼 길어지고 그때마다 주민들은 건조하게 박수를 보낸다. 사회자는 박수를 유도하고, 단체장은 고개 숙여인사를 한다. 이내 강사소개가 이어지고 강의가 시작될 무렵, 단체장과 내빈들이 썰물처럼 빠진다. 강의가 시작되고, 주민들은 저마다 강의시간을 버티려는 듯 갖가지 모습으로 자세를 취한다.


휴대폰만 보고 있는 사람, 처음부터 눈을 감고 있는 사람, 총기 없는 눈빛으로 앞사람 뒤통수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 천태만상이다. 그나마 십수 명 되는 젊은 청년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자세히 보니 모두 신분증을 패용하고 있다. 아뿔싸, 모두 공무원들이다. 중간에 쉬는 시간이라도 가질 요량이면 그냥 쉬지 말자고 권한다. 중간에 쉬면 주민들이 전부 빠져나가 버린단다. 심지어 강의 끝나고 동장이 귓속말로 한마디 한다.


“주민들을 너무 띄우면 주민들이 말을 안 듣습니다.” 나는말문이 막히고 만다.
“주민은 행정집행의 도구가 아니다. 주민이 질서를 정하고 행정은 이에 따르는 게 진정한 자치”라는 내 얘기에 대한 반응이었다.


주민센터마다 이 모든 광경이 익숙하다. 주민모임에 자발적 참여가 없다. 자영업자와 주부들을 빼곤 대낮 주민센터 행사에 누가 참여할 수나 있겠는가. 강사는 판박이 행사의 소품일 뿐이다. 물론 변화는 있다. 혁신적인주민총회와 공감 토론으로 주민의 힘을 모아내는 저력을 발휘하는 지자체도 눈에 띈다.


그러나 대개 여전히 관치의 망령이 드리워져 있다. 민주주의? 그런 건 없다. 주민은 계몽과 훈육과 동원의 대상일 뿐이다. 민관협력이니 협치니 멋지게 포장은 하고 있지만, 따져보면 허상에 불과하다.


협치의 목표는 ‘자치’다. 공론장을 만들고, 주민 스스로 일상적인 의제를 제시하면서 자치력을 키울 수 있도록지원하는 일이 행정의 역할이다. 마이크를 독점한 소수 엘리트에게서 마이크를 회수해서 마이크 한번 쥐어보지 못한 주민들이 말을 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공론장의 힘이다. 행정과 정치는 듣고 따르면 될 일이다. 행정은 공론장의 보조이고 총회의 조연이어야 한다. 공론장을 지원하고 주민의 집단의사를 경청하면서 주민을 주연으로 빛내는 일이 협치의 방향이어야 한다.


주민총회가 주민을 행정집행의 들러리로 대상화하며 ‘공무원들을 도와달라’는 식의 읍소나 ‘주민들이 깨어나야 한다’는 식의 계몽의 장이 되어선 안 된다. 민관협력과 협치는행정의 결핍을 주민이 보충하자는 뜻이 아니다. 행정과 주민 간의 수직적 위계를 무너뜨리지 않는 자치는 공염불이다. 전국 읍면동에 주민자치위원회가 있고, 지역사회보장협의체도 있다. 민관협력이 필수인 마을의 대표공론장이다. 자치력을 키우는 풀뿌리 마을민주주의 토론마당이다.


마을 의제를 스스로 제기하고 풀어가도록 도우라. 자치는 자치력이 있을 때 가능하다. 자치력은 거듭된 체험을 통해 길러지는 법이다. 시간이 걸린다. 마침내 한국사회를 옭아매고 있는 관치의 독점을 해체해야 가능하다. 협치는 오로지 자치를 향하라. 행정은 보조와 조연이 되어 조용히 경청하라.


자치의 내용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정치인은 주민들의 집단 의사를 대표하는 대리인이다. 그런데도 선거에서 당선되고 나면 주인들 편에 서지 않고 자기 정당이나 계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기초 단위로 가면 더욱 가관이다.


정치를 자영업 수준으로 타락시켜 공공성과는 무관하게 자기 탐욕 채우는 일을 노골적으로 한다. 그렇다고 대리인을 쉽게 바꿀 수도 없다. 바꾼들 그리 탐탁지도 않다. 이것이 중앙정치와 마을자치 과정에서 지금까지 보여준 주인과 대리인 관계의 역설이다.


이젠 주민들이 지방자치에서 대리인에게 위임한 권리를 점차 되찾아야 한다. 물론 철학과 실력이 있는 단체장을 뽑고, 무식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풀뿌리 의원을 잘 식별해내는 선거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마을자치와 정치가 정상화될 수 없다. ‘주민의 힘’을 키워 자치의 중심에 정치의 주인인 주민이 직접 참여하도록 독려하게 근본을 푸는 열쇠다.


주민이 합의의 질서를 세우고 정치가 이에 따르는 게 자치라면, 정치가 일방적으로 만들고 주민들을 동원하는 게 통치다. 마을자치와 자치를 빙자해 토호들이 휘두르는 통치체제의 관행을 진정한 자치로 전환해야 한다. 권력을 나누는 분권을 넘어 스스로가 권력이 되는 자립, 그것이 ‘스스로 시대’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정치 대리인들에게 모든 의사결정을 위임할 게 아니다.


마을에서 풀뿌리 민주주의 농사를 잘 지어가는 게 자치다. 마을권력을 튼튼하고 건강하게 세워야 주민력의 힘이 자연스레 살아난다. 주민의 힘은 마을권력의 권위와 수준에 비례하기 마련인 까닭이다.


마을의 주민들에게 ‘권위’를 키우고, 전문성을 높이고, 마을활동가로서 품격과 만족도를 올리기 위한 ‘마을학교’ 같은 학습조직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학습하지 않는 공동체는 타락하기 마련이다. 마을에 학습조직을 만들고 주민들과 마을대표들이 끊임없이 토론과 배움을 가까이할 때 주민의 힘이 성장하고 축적될 수 있다. 그 성장과 축적이 직업정치에 농락당하고 있는 위임과 대리의 맹점을 보완하고 대체할 희망이 될 것이다.


건강한 마을권력이 펼치는 자치의 방식은 당연히 ‘직접 민주주의’다. 국가 차원의 대의민주주의와 지방과 마을 차원의 직접민주주의가 함께 돌아가는 참여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주민총회의 일상화, 마을 예산 주민참여예산제의 실질화, 읍면동장 주민공모 직선제, 주민자치위원추첨제 민주주의 방식의 선출 등 모든 기제를 활용해야 옳다.


유럽의 여러 정치경제학자들의 분석을 보면, 놀랍게도 직접민주주의가 발달하고 자치가 성장한 지역, 주민의 힘 이 활발하게 작동하는 마을일수록 경제성장률도 높고 주민들의 행복도도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접민주주의는 마을이니까 가능하다.


마을마다 대동회를 열어 마을과 관련된 의제를 공론화하고 바람직한 정책방향과 실천과제를 발굴해 지방의회와 함께 정책으로 만들어가자. 사실상 시민공동정부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보통 사람들이 마을에서 만들어갈 자치의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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