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계 최초로 국가 단위 참여예산제를 개시하며 민주주의 발전을 선도하고 있다. 하지만 배움은 어느 위치에서나 필요한 법. 각국의 참여예산제 사례 속에서 참고할 점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참여예산제의 가치와 목표의식
UN, OECD, UNESCO, 세계 은행 등 유수의 국제 기구들이 참여예산제(Participatory Budgeting)의 확산을 지지하고 있다. 예산 투명성 향상, 행정의 책임성 제고, 재정운영의 민주성과 효율 증진, 사회 자원 재분배 강화 등이 참여예산제의 주요 효과로 이야기된다. 이러한 기대 효과로 인해 참여예산제는 1990년대를 기점으로 전 세계에 확산되며 현재는 1,500곳 이상의 지역에 도입되고 있다.
세계 여러 국가와 지역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그 목적의식은 차이를 보인다. 최초의 참여예산제 시행 지자체인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리시의 경우 정부의 활동과 자원 활용에 있어 대중의 참여를 높이는 것을 제도의 목적으로 삼았다. 브라질은 20년간의 군사독재를 거친 후 ‘권력 분산'을 최우선 과제로 개헌을 진행했고, 포르토 알레그리시는 개헌 헌법에 기초해 예산 편성과 집행 과정에 주민의 직접 참여를 유도하는 참여예산제를 기획한 것이다. 남미의 다른 국가들 역시 부패한 지방의회에 대한 견제 장치로서 참여예산제를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들 지역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에서 참여예산제가 장기적인 정치 의식 변화에 기여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와 달리 동부·중앙 유럽의 경우 민주주의 경험 향상에, 서유럽의 경우 대의민주주의의 한계 극복을 목적으로 참여예산제를 시행하는 경향을 보인다.
시행 범위나 대상에 있어서도 국가와 지역별로 차이가 있다. 연방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아직 참여 예산제는 지자체·지방정부 수준으로 시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캐나다의 경우 아예 참여예산제가 다룰 수 있는 안건의 범위를 공공주택, 공립학교 관련 정책으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참여예산제의 발원지인 남미에서는 도미니카 공화국, 볼리비아, 페루 등이 ‘국가 내 전 지자체’가 주민참여예산제를 운영하도록 법제화하고 있기도 하다. 한국이 중앙 주도형 ‘국민참여예산제’를 시범 도입한 지난해에는 포르투갈 역시 전국 단위 국민참여 예산제 시행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참여예산제 벤치마킹
ATM 투표로 참여율 UP
포르투갈은 전국 단위 국민참여예산제 시행 계획을 발표하며 국민들의 참여를 촉진할 아이디어를 함께 제시했다. 별도의 공간을 조성하는 대신 거리의 ATM을 통해 투표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포르투갈 정부는 ATM을 활용하는 것이 별도의 인력, 자원 투입 없이도 주민들의 신원 확인이 가능하며 투표 접근성 역시 높일 수 있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ATM을 활용하는 새로운 투표 방식은 특히 인구밀도가 낮은 외곽 지역이나 투표를 위해 별도의 시간을 내기 어려운 저소득층에게 제도의 효과가 한층 클 것으로 전망된다.
청년 참여예산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톤시는 참여예산제를 청소년 정치 교육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보스톤시는 2014년부터 ‘청년이 변화를 이끈다’는 표어 아래 연 100만 달러(약 10억 7,000만 원)의 예산을 12~25세 청년들을 위한 정책에 배당하고 있다. 예산 사용처를 제안하고 거기에 투표하는 모든 과정은 청년의 주도로 이뤄진다. 제도의 효과 증진을 위해 시 당국은 방과후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정책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제안서 작성법을 교육한다. 제안된 정책에 대한 투표 역시 학교와 청소년 문화 공간 등에서 곧바로 진행해 참여율을 높였다.
참여 예산 6,5000억 원
예산 집행의 측면에선 프랑스 파리시가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다. 파리시는 상대적으로 늦은 2014년 참여예산제 시범 사업을 시작했지만 첫해부터 시 전체 예산의 5% 수준인 2,000만 유로(약 263억 원)를 참여예산제에 배정했다. 사업이 본격화된 2015년에는 예산 규모가 6,500만 유로(약 855억 원), 2016년에는 1억 유로(약 1,315억 원)까지 확대됐다. 파리시는 2020년까지 총 5억 유로(약 6,578억 원)를 참여예산제에 투입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