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시대에 맞는 인사제도 필요”
공정한 인사는 모두의 관심사다. 《월간 지방자치》는 현직·학계 전문가들과 함께 바람직한 인사는 무엇인지, 우리나라 인사 제도의 현실은 어떤지, 인사 제도 개선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의견을 나눴다.
이영애(《월간 지방자치》 편집인)_ 지방분권의 원동력은 공직자라고 말을 합니다. 현재의 지방공무원 인사제도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우영(서울특별시 은평구청장)_ 요즘 공무원들의 태도는 이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마을행정, 마을자치 등 현장의 직접적인 주민참여 활동이 늘어나는 추세죠. 그 속에서 공무원들도 주민과 소통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데요. 그에 비해 공무원 인사 제도는 과거에 머물러있다 생각합니다. 지방공무원을 중앙정부의 지시·명령을 따르는 하부 체계로 보는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죠. 그 때문에 지금은 지역 특성에 맞게 사무국하나를 신설하려 해도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매우 제한적입니다. 조직이란 상황에 맞춰 탄력적으로 운영돼야 성장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사회가 다변화되는 추세에서는 다양성이 더욱 강조됩니다. 최근 지방분권, 좀 더 구체적으로는 자치 조직권에 대한 요구가 확대되는 것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봅니다. 지역의 행정과 사무는 해당 지역이 책임지고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석현정(전국시군구공무원노동조합연맹 위원장)_ 공직자가 지방분권의 원동력이라는 말에 십분 동의합니다. 그런데 현재 지방공무원의 역량이 지방분권을 이끌 만큼 성숙했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저는 그 문제가 인사제도에 있다고 봅니다. 간단히 교육 문제 하나만 봐도, 많은 투자와 자원이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공무원들이 역량을 기르고 싶어도 기회를 갖지 못하는 거죠. 그렇다고 정답이 확실한 문제도 아닙니다. 이번 정부에서 지방분권을 체계적으로 달성하려 하고 있지만, 지방공무원의 인사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겁니다. 장기적으로 다뤄야 할 문제인 거죠.
명승환(한국정책학회장)_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듯 사람을 기용하는 문제는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현재의 지방분권 관련 논의는 재정분권에 치우친 감이 있습니다. 지방재정에 관해서는 분권 비율에 대한 논의까지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인데, 정작 중요한 인사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별로 없는 것에 아쉬움을 느껴왔습니다. 물론 얘기하기 까다로운 측면도 많습니다. 재정분권이란 제도적 차원에서 다루면 되는 부분이지만, 사람에 대한 문제는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하거든요.
“연공서열과 역량평가가 모두 필요하다면 각 요소 간 반영비율을 공개해야”
이영애_ 환경 변화, 기회 불균형, 제도화의 어려움까지 많은 논제가 나왔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인사제도 중 특히 승진 문제가 화두가 되면 특히 날이 섭니다. 공정한 승진은 조직 사기 관리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문제일 텐데요. 이 부분에 대한 의견 부탁 드려봅니다.
김우영_ 큰 틀에서 인사의 주된 쟁점은 연공서열을 중심으로 판단할지, 아니면 능력 중심으로 일신하는 쪽을 택할지의 문제입니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단 상황에 따른 ‘선택’의 문제라고 봐요. 능력 있는 인재를 기용하는 것은 당연히 옳지만 그간 조직에 헌신해온 공직자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주는 것도 필요하니까요.
석현정_ 구청장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인사에 대한 기본 지침이 없다면 직원 입장에선 불안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연공서열과 역량평가가 모두 필요하다면 인사 지침을 발표할 때 요소 간 반영비율을 공고하는 가이드라인 정도는 제시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기관장 입장에선 융통성이라고 표현하는 부분이 현직자들에겐 본인의 필요에 지침을 끼워 맞추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고 염려합니다.
명승환_ 지역의 상황과 현안을 잘 이해하는 리더라면 기계적 시스템보다 훌륭한 인사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구청장님도 초선 당시를 돌이켜보면 지금보다 고충이 크시지 않았습니까? 처음이니까 당연히 겪는 시행착오죠. 인사위원회 같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면 초선 단체장분들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겁니다. 괜한 잡음도 줄일 수 있고요. 정리하자면 지역의 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으면서도 인사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는 표준 인사 모델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우리보다 지방분권이 활발한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도 좋을 겁니다. 어떤 내용을 조례로 규정하고 있고, 연공서열 모델은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등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 데이터베이스를 쌓아가야 합니다. 각 지자체의 인사 경험과 노하우, 패턴을 분석하고 공유하는 일종의 빅데이터 모델이죠. 근거에 기반한 결정이라면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수긍’은 할 수 있습니다. 팩트, 데이터 중심으로 활동을 축적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석현정_ 실제로 전산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로 인사에 대한 잡음이 표면화된 측면이 있어요. 직렬별 승진연한 같은 정보를 누구나 볼 수 있다 보니 예전에는 ‘나만 손해 보는’ 기분을 느꼈던 사람들이 이제는 지표를 보고 전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알게 되는 거죠.
김우영_ 제가 내린 인사 결정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민선 6기 재선하면서 실감했습니다. 이유를 모르면 불만은 자연스러운 겁니다. 비합리적인 오해를 할 수도 있고요. 저희 은평구는 승진 누락자에게 일대일 자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번 승진에 누락된 이유는 무엇이고, 어떤 점을 보완해주면 다음 인사에서 좀 더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식의 조언이에요. 이렇게 자문을 받은 후 6개월, 1년간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고 실제로 개선점도 있다면 조직 입장에서도 훨씬 좋은 일이죠.
명승환_ 직급정원제를 벗어나 통합정원제를 시행한다든가 직급에 탈락하더라도 희망직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직렬간 순환보직도 한 방법이고, 제도적으로도 여러 가지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영애_ 학회장님은 인사위원회 심사위원으로도 여러 번 활동하신 것으로 압니다. 외부 전문가의 시각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었나요?
명승환_ 기본적으로 시간이 부족합니다. 현장에서 모든 것을 봐야 하니 제대로 심사를 진행하는 데 한계가 많죠. 전문가라고 불러놓고 시키는 대로만 하길 요구하는 거에요. 민간위원들도 상근직이나 그에 준하는 역할을 부여하면 좀 더 체계적인 심사가 가능할 것입니다. 외부인 입장에선 지침에 따르는 것이 전부이다보니 분야의 전문성을 녹여내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이영애_ 김 구청장님의 인사 경험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우영_ 하하 별 일 다 있었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마흔 둘에 구청장에 오른 후 이전의 부정승진에 관한 이야기들이 공공연히 이야기되는 것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제 경우는 사무관 승진의 경우 적극적으로 판단하고 관여하는 편이지만 그외에는 거의 인사조직에 맡기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서열순으로 승진이 이뤄집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지방 선거에 3선 불출마 선언을 한 것도 이 문제와 관련이 있는데요. 이 자리에 오래 있다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가 보수화되는 것이 느껴지더라고요. 구민의 입장에선 행정 조직이 적극적으로 변화하고 행정 서비스가 개선되길 바라는데 제가 운영하는 조직에 대한 지침은 안정성 위주로 가는 거죠. 조직은 하나의 생명체입니다. 항상 유기적으로 변화하고 적응해야 해요. 서울시가 진행 중인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같은 활동은 주민 속으로 들어가 함께하는 패러다임의 변화예요. 패러다임을 바꾸려면 기존의 공무원 체제를 흔들어야 합니다. 계약직이나 시간임기제로 전문성을 가진 분들을 발탁하는 것을 비롯해, 여러 혁신적 아이디어가 필요한 때입니다.
석현정_ 많은 기관장분들이 공무원들이 혁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하세요. 그런데 기관장이 주로 대하는 현직은 과장급 이상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 아래의 더 많은 공무원들은 가치 있는 일, 혁신적인 일을 하고 싶어 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어느 순간 획일화되는 거죠. 왜 그럴까요? 저는 기관장의 잘못이라기보단 실무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부서장급의의 문제가 더 크다고 봅니다.
김우영_ 시스템의 잘못도 있죠.
석현정_ 시스템도 문제는 있죠. 하지만 시스템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는 거잖아요. 그보다는 오히려 내부적으로 혁신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봅니다. 이건 구청장의 위치에서는 한계가 있는 일이에요. 매일같이 만나는 부서장들이 변화해야죠.
김우영|서울특별시 은평구청장
이영애_ 젊은 직원들이 처음의 열정을 지켜나갈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김우영_ 군사독재 시기 이후 공무원 조직에는 타율과 견제의 문화가 자리 잡았습니다. 과거의 악습으로 지금의 공무원들이 피해를 보는 거죠. 자율과 권한이 주어지는 조직에서는 모두가 신나게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공무원 조직은 서류에 사인 하나 잘못하는 것으로 생사가 결정돼요. 과도한 책임감을 요구하는 거죠. 예를 들어 최근 밀양 화재참사 이후 관련 시설들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방문하는 공무원들은 점검표에 실명으로 서명을 해야 해요. 그리고는 혹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올까 봐 걱정하죠. 이런 걱정이 사람에게 적극성, 자율성을 빼앗습니다. 남의 눈치 보고, 보수적인 공무원을 만드는 거죠.
명승환_ 앞서 주어진 환경 안에서 여러 대안을 생각해보자고 말씀드렸지만 ‘대안’에는 어디까지나 한계가 존재하는 게 사실입니다. 지식정보사회를 넘어 4차 산업혁명, 지능정보화 사회를 맞이하는 현 시점에서 기존 산업사회의 프레임, 이념에 의해 권력을 행사하던 관료제 중심 문화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분권 패러다임도 이런 맥락에서 제시되고 있는 거고요.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 때입니다. 국가 운영을 정부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정부와 지역, 민간, 시민 4자가 협력적 동반자로 함께해야 합니다. 지금 정부를 이끄는 분들은 자신들이 다 해야 한다는 강박이 교육된 세대예요. 그렇다 보니 하나의 시도를 하는 데에도 두려움을 가지는 거죠. 지금까지 주민의 대리인인 공무원이 정보를 독점해왔다면 이제는 그 정보를 공유하고 권력을 분산해야 합니다. 주민의 주인권을 다시 세운다면 공무원도 무한 책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런 아이디어를 주민자치 등의 제도적 기반으로 확립할 수 있는 법적 작업 전반이 필요합니다.
명승환|한국정책학회장
이영애_ 법적·제도적 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이뤄질 수 있을까요?
김우영_ 현재 제도에서는 동장을 임명직으로, 구의원을 선출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견해를 말씀드리자면, 구의원의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지나치게 견제적 관점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주민 자치가 확대되고 구의원의 고유권한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차라리 동장을 직선 선출하고 동장이 구의원을 겸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명승환_ 더불어 동 체제 자체도 개편이 필요합니다. 현재의 동 단위는 규모가 너무 큽니다.
김우영_ 동의합니다. 현재 동 단위 인구 규모가 3만~5만명 선입니다. 이것을 만 명 단위로 쪼개면 어떨까 싶습니다.
명승환_ 전자투표를 도입한다면 충분히 현실성 있는 구상입니다.
석현정|전국시군구공무원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이영애_ 두 분 궁합이 정말 좋으신데요?(웃음) 모두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계신데요. 하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이 중요하겠죠. 제도 입안자들께 인사와 관련해 전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석현정_ 기관장의 품성과 판단력에 지방공무원의 앞길을 전부 맡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제도화가 필요한 문제죠. 과거 노무현 정부 당시 인사 평가의 50%를 다면평가로 진행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후속 정부 때 이런 정책이 완전히 없어졌어요. 물론 다면평가제에 문제점도 분명 있었지만 그것을 개선할 방법을 고민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직원들을 내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된다면 조직 안의 소통도 활성화될 것입니다. 인사권을 분산하면 공정성은 향상될 것이라 봅니다. 다면평가제의 제도적 보완을 희망합니다.
명승환_ 공무원 개개인의 역량을 100%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겠죠. 기본적으로 정치권의 의지에 달린 문제라고 봅니다. 지방자치의 본질은 권력의 분산입니다. 지금 권력을 가진 측에서 의지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죠. 더불어 저희 학계에서는 정책에 활용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해야겠죠. 조금 과감하지만 구체적인 아이디어도 제안해봅니다. 현재의 공무원 채용 시험은 유효성을 잃었다고 봅니다. 이것을 과감히 폐지하고 공직자를 지금의 로스쿨 개념으로 ‘양성’할 수 있는 기관을 조성해야 합니다. 지역인턴제 확대도 필요하고요. 현재 지방 거주자의 80%가 지역 외 대학에 진학하고 있고 졸업 후 출신지의 공공기관이나 지자체, 공공부문에 취직하는 비율도 10%를 밑돕니다. 9급 공무원 채용은 지역인재할당제 적용 대상도 아니고요. 저는 하위직과 5급 공무원을 교육할 수 있는 대학원을 권역별로 운영해 지역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가진 인재들이 지역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영애_ 오늘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끝으로 2018년 한 해 ‘이것만은 고쳐보자’는 의견을 한 가지씩 말씀 부탁드립니다.
석현정_ 개헌 논의가 뜨겁습니다. 이번 개헌을 통해 지방분권, 지방자치가 잘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명승환_ 그간 국가 발전을 위해 수고해주신 공무원분들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이제는 공무원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변화에 앞장서야 합니다. 상생발전 파이팅!
김우영_ 개인적으로도 올해가 지방분권 개헌의 원년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 정치적 계산 때문에 개헌이 이뤄질지는 미지수지만, 혹 개헌이 안 되더라도 법률 수준에서 개헌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많은 변화가 있기를 희망합니다. 둘째로 민선 7기가 시작될 텐데, 사람 사이의 관계성을 회복하는 마을을 만들어나가시길 부탁드립니다. 공동체정신을 회복해 마을이 살아나는 변화, 더 큰 진보가 일어나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합니다.
이영애_ 오늘 말씀을 들으니 공정한 인사라는 것이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모두의 관심과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인 것 같네요.
※ 좌담회 동영상은 이영애 편집인의 페이스북(www.fb.com/mypola)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