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진과 의원은 식구 같은, 동지적 관계가 있어…” “의정 활동을 하면서 공과 사를 나누기 굉장히 애매하다.” 이 발언은 최근 갑질 의혹으로 도마에 오른 강선우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감싸기 위해 민주당 지도부 한 명이 꺼낸 말이다. 청년으로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진보를 대표한다는 정당의 지도부가 갑질을 정당화하려는 모습도 충격적이었지만, 무엇보다 ‘갑’의 입장에서 “공과 사를 나누기 애매하다”고 말하는 이 구시대적인 인식은생애주 기적으로 항상 ‘을’의 입장인 청년의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강선우 국회의원의 보좌관들과 같이 지금 대한민국 청년들은 매일 ‘사회적 갑질’을 당하고 있다. 세습되는 기득권과 고착된 구조 속에서 청년은 점점 더 많은 것을 빼앗기고 있으며, 그 과정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의 폭력처럼 느껴진다.
오늘날 청년들이 어떤 사회 구조적 억압 속에 놓여 있는지, 그 억압이 어디서부터 기인하는지, 그리고 이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하나하나 짚어보고자 한다.
[지방정부티비유=최원재 연구원]
청년 창업, 사라지는 첫 기회 / 대기업도 외면하는 청년
올해 1분기, 30세 미만 청년 사업자는 1년 전보다 무려 2만6천여 명이 줄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17년 이래 최대 폭 감소다. 코로나 시기조차 버텨낸 청년 창업이, 고금리와 내수 부진 앞에서 무너지고 있다. 휴·폐업이 창업을 앞지르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청년 창업이 집중된 소매업과 음식업에서의 타격이 크다. 이들은 기술 없이, 자본 없이, 작은 매장 하나에 모든 삶을 걸었지만 결국 버티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청년 창업이 기술과 경험 없이 포화된 시장에 뛰어드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취업 문이 열려 있는 것도 아니다. 국내 주요 대기업 67곳의 20대 직원 비중은 2022년 25%에서 올해 21%로 줄었다. 2년 새 4만 명 넘는 청년들이 대기업에서 사라졌다. 신입 채용은 축소되고, 수시채용과 경력직 선호가 확산되면서 청년들이 진입할 통로는 더 좁아졌다.
AI는 그 무엇보다 청년의 일자리를 훔친다!
여기에 최근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은 청년 일자리를 더욱 위협하고 있다. OpenAI가 발표한 ‘OpenAI Agent’는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자동으로 검색, 이메일 작성, 코드 생성, 업무 자동화를 수행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는 단순 반복 업무는 물론, 일정 수준의 사고력과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중간 단계의 직무까지 대체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사무직, 행정직, 마케팅·CS 직군 등 전통적으로 청년이 첫 커리어를 시작하던 분야가 AI에 의해 잠식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에 대한 사회적 준비도, 청년을 위한 재교육·전환 정책도 미비하다는 점이다. ‘신입’이 아닌 ‘AI’가 선택되는 시대에, 청년은 어디서 기회를 찾아야 하는가?
일자리도, 자영업도 안돼... 결국 ‘쉬었음’으로
통계청이 발표한 6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5~29세 청년 취업자는 362만 명으로 전년 동월보다 17만 명 이상 감소했다. 같은 기간 고용률은 1.0%포인트 하락했고, 확장실업률은 16.3%로 치솟았다. 청년 열 명 중 한 명은 ‘실업자’이며, 두 명 중 한 명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더 심각한 건, ‘쉬었음’으로 분류되는 청년들이 40만 명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이들은 구직 활동조차 하지 않으며 경제활동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이다. 이는 사회가 청년을 ‘노력하지 않는 무능한 존재’로 낙인찍기 전에, 왜 그들이 구조적으로 배제되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한국사회는 청년을 위한 공간이 있는가
직장도, 창업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청년들이 마지막으로 붙잡을 수 있는 것은 ‘공간’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제 청년에게 살 공간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2024년 서울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은 11.3배로,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1년 넘게 모아야 평균 수준의 집을 살 수 있다.
고시원과 오피스텔, 원룸으로 밀려난 청년들은 결국 ‘거실이 있는 삶’을 위해 서울을 포기하고 있다. 주거의 질은 곧 삶의 질이며, 그 삶조차 이제 서울은 허락하지 않는다.
근본적 해법은 ‘교육’의 전환에서 시작된다
이 모든 청년 문제의 뿌리를 추적해 보면, 결국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과 맞닿아 있다. KBS 다큐멘터리 <인재전쟁>이 보여주었듯이, 한국의 교육은 여전히 ‘정답을 잘 찾는 능력’에 치우쳐 있고, 창의력·실천력·문제해결 능력 같은 실질적 역량은 무시되고 있다.
대학 입시 중심의 경쟁교육은 모든 청년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억압한다. 그렇게 길러진 청년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현실은 그들에게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끊임없는 변화를 감당하고, 창조적으로 적응하라고 요구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은 청년을 기업이 원하는 인재로도,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물로도 제대로 준비시키지 못하고 있다.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대한민국의 인재들은 의대와 로스쿨과 같은 진로를 선호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변화하는 글로벌 산업구조와 대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고급 인재들이 필요한 산업에 유입되지 못하 는 악순환을 불러일으킨다.
청년의 몰락은 곧 국가의 붕괴다
한국 정치는 여전히 청년을 무시하고 있다. 청년들은 단순한 지원금이 아니라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국가가 되고 싶다면, 지금 당장 교육을 포함해 청년을 위한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하고 AI의 발전이 불러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사회적 투자와 구조 개혁에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