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예산으로 그저 지원금 줄 궁리만 하는 복지 정책이 식상하다면 경기도를 기억하면 된다. 민간투자금으로 복지정책을 시행하고, 목표 달성에 실패하면 민간이 손해를 떠안는 대신 목표를 달성하거나 초과하면 정부가 투자금과 이익금을 예산으로 집행해 보장해주는 ‘회성과연계채권(SIB, Social Impact Bond)’ 방식의 복지 정책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저출산, 고령화, 청년실업 등 시대변화에 따른 다양한 사회문제로 복지 수요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복지재원 조달의 한계로 적극적인 복지 정책을 시행할 수 없었던 많은 지방자치단체에 귀감이 되고 있다.
2010년 9월 영국에서 처음 도입된 채권은 영국 피터버러(Peterborough)시에서 교도소 퇴소자 3000명을 대상으로 3년 뒤 재범률을 평균 7.5%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시작됐다. 이 목표가 달성될 경우 영국 정부는 투자자에게 13%의 수익률을 제공하기로 하고, 달성되지 못할 경우 투자자는 한 푼도 못 받는 복지기금채권이었는데, 록펠러재단 등 17곳의 투자자가 참여해 약 100억 원의 재원을 확보했다.
이 방식은 정부나 지자체에는 예산 절감을, 민간에는 사회공헌 기회와 투자이익을, 사업대상에게는 민과 관이 공동으로 기획한 보다 나은 복지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피터버러시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민간투자자는 일정한 성과를 충족함에 따라 수익을 지급받았다.
사회성과연계채권 방식 복지의 장점은 뚜렷하다. 물론, 성공할 경우에는 정부가 투자금과 이익금까지 집행해야 하지만 모든 공공사업이 100% 성공하지는 않기 때문에 실패할 때는 정부가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만약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예방되는 행정비용은 상당하다. 일명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한 부분이기도 한 것이다.
경기도는 2015년 7월 경기도의회가 「경기도 사회성과 보상사업 운영 조례」를 제정한 것을 계기로 이를 활용한 복지정책을 입안했다. 바로 ‘해봄프로젝트’다. 도내 기초생활수급자 500명을 대상으로 시행되는 이 사업은, 근로의지가 있거나 환경변화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민·관 협업을 통해 자립의지를 향상시켜 취업을 통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탈(脫)수급 시키기 위한 목표로 기획됐다.
경기도가 2015년 12월 공고한 프로젝트 사업비는 총 18억7356만 원 규모로, 그중 민간투자금 15억5256만 원을 제외한 2억2100만 원은 목표 달성 시 경기도가 인센티브로 제공하기로 했다. 경기도가 제시한 목표는 사업 참여자 중 20%의 탈수급이다.
특히 경기도는 투자자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호주에서 보완된 방식을 채택했다. 즉, 20% 탈수급이라는 목표에 미달하더라도 11%까지 달성 시 원금의 최대 91.3%를 지급하고, 12% 달성 시 원금을 보장하며, 13%부터 20%까지는 원금의 최소 1%에서 최대 14.2%까지 성과보장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언급한 피터버러시 교도소의 사례는 투자가가 전액 원금을 날릴 위험이 있어 논란이 많았는데, 그를 보완한 사례를 잘 참
작해 설계한 것이다.
경기도는 사실상 국내에 사례가 전무하다시피 한 사회성과연계채권 방식의 해봄프로젝트 운영을 위해 <그림
1>과 같은 운영 구조를 설계했다.
즉 경기도가 운영기관을 선정하고, 운영기관은 외부 민간투자자로부터 사업자금을 조달한다. 운영기관은 또한 직접 사업대상자들과 접촉할 사업수행기관을 선정해 관리하고, 사업수행기관은 탈수급 문제 개선을 위해 사업 대상자에게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업성과 평가는 사업 종료 후 경기도가 별도의 공고를 통해 선정한 외부의 독립된 평가기관이 운영기관의 실적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경기도는 2015년 12월부터 공고를 통해 외부 운영기관을 모집했는데, 여기에서 총 2억1000만 원으로 책정된 운영기관 운영비의 20%를 자부담할 수 있는 기관으로 신청 자격을 제한해 위탁기관의 재무적 리스크를 최소화했다.
이 같은 절차로 2016년 3월 경기도는 경기도의회의 동의를 거쳐 한국사회혁신금융(http://www.ksif.kr)을 운영기관으로 최종 선정하고 5월 협약을 체결했다. 한국사회혁신금융은 사회혁신기업들과의 장기적인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이들의 성장을 지원하고자 하는 사회적 금융회사로, 2014년부터 사회혁신기업들과 순수민간기금인 사회혁신기금을 조성하고 다양한 관련 금융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사회적 금융회사다. 한국사회혁신금융은 해봄프로젝트의 실무를 추진할 사업수행기관으로 국내 최고의 사회적협동조합으로 관련 분야에 다양한 성과를 낸 내일로(주)(www.ncoop.co.kr)를 선정했다. 이를 통해 한국사회혁신금융은 크라우드펀딩 형태로 민간투자자를 모집하게 되고, 이 기금을 통해 내일로(주)는 경기도가 제시한 가이드라인 안에서 사업을 충실히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해봄프로젝트는 2016년 5월부터 500여 명의 사업 대상자를 모집하고 있다. 현재 모집지역은 경기도 내 수원시, 안산시, 안양시, 시흥시, 광명시, 군포시, 오산시, 여주시, 의정부시 등 9개 지역인데, 모집은 각 기초지자체의 복지 정책 담당부서가 맡고 있다. 모집이 완료된 후 사업기간은 각 1년간 2회를 누적해 총 2년 동안 진행되며 참가자들은 1 대 1 맞춤형 전문취업상담과 다양한 컨설팅 프로그램에 참여해 자립 의지를 키우게 된다.
해봄프로젝트 말고도 경기도는 다양한 복지정책을 운영 중이다. 앞서 살펴본 해봄프로젝트는 단순한 ‘시혜성 복지’가 아닌 자립 의욕을 고취시키는 게 가장 큰 특징인데, 함께 운영 중인 ‘일하는 청년통장’ 같은 프로젝트도 열심히 일하는 청년들의 근로의욕을 고취시키는 복지정책이다.
일하는 청년통장은 관내 만 18세부터 34세까지 청년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이들이 매월 10만 원씩 36개월(3년)동안 지정된 통장에 저축 하면, 경기도가 매칭펀드를 지원하고 민간기부금을 조성해 3년 뒤 1000만 원을 만들어 돌려주는 내용이다.
경기도는 2016년 500명의 중위소득 80% 이하(1인가구 기준 월급여 130만 원) 청년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했는데 500명 모집에 3301명이 신청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났다. 경기도는 2016년 10월 1000명으로, 2017년에는 9000명으로 수급 대상자 규모를 확대할 방침이다.
경기도가 ‘단순하게 주는’ 복지가 아닌 복지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은 일명 수요자 맞춤형 주거복지라는 ‘따복하우스’에서도 드러난다. 따복하우스는 신혼부부의 주거 안정을 통해 저출산을 극복하는 한편 대학생과 노인, 청년층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는 주거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기존의 행복주택사업에 경기도형 3대 시책을 추가한 공공임대주택을 말한다. 이를 통해 경기도는 행복주택을 응용해 경기도만의 독자적이고도 특화된 주거복지정책을 시행 중인 것이다.
따복하우스는 표준임대보증금 이자를 차등 지원하고 신혼가구 전용공간을 확대하는 한편, 하우스 내 커뮤니티시설을 조성하고 다양한 공동체 프로그램을 실시해 입주자 간 공동체를 활성화하게 된다.
이와 함께 따복기숙사를 조성해 월세 거주 비중이 높은 대학생과 근로자의 주거비 부담을 줄이고 주거에 대한 걱정없이 본업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는 국토교통부와 함께 2016년 4월 행복주택과 따복하우스 추진을 상호 협력키로 하고 2020년까지 조성할 도내 행복주택 10만 호 중 따복하우스를 1만 호 건설하기로 했다.
시혜성 복지가 논란이 되는 시대 이 같은 경기도의 민관협력형, 맞춤형, 동기부여형 복지정책은 많은 지자체가 참작할 수 있는 좋은 선례를 만들고 있다. 이를 참고해 우리 지자체가 보다 생산적인 복지 정책으로 대한민국의 부흥을 이끄는 데 크게 기여한다면 지방자치시대가 또 한 번 도약하는 계기로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