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 뿐만 아니라 도시 혁신은 전 세계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일어나고 있다. 전 세계 도시들이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어떤 방법으로 도시 혁신을 이뤘는지, 소개해본다.
조선소 ‘몰락’ 사태 20년 전에 겪었던 스웨덴 ‘말뫼’
에너지자립과 지식정보산업 통해 도시혁신
2002년 울산 현대중공업은 스웨덴 남서부의 말뫼시 코쿰스조선소에 있던 1600톤 규모의 크레인을 단돈 1달 러에 인수했다. 높이 128m, 폭 165m, 자체 중량 7550톤으로 당시 세계 규모였던 이 크레인으로 상정되던 말 뫼는 1980년대 유럽의 대표적인 조선산업 도시였다. 그러나 대한민국 등 신흥 국가의 조선산업 약진으로 스웨덴 말뫼의 조선산업이 붕괴되었다. 어찌보면 오늘 대한민국 조선업의 현실을 20년 전에 경험했던 곳이 바로 말뫼였다. 이 몰락은 ‘말뫼의 눈물’이라는 이름으로 전세계에 회자되기도 했었다.

인구 30만의 말뫼시는 그러나 주저 않지 않았다. 코쿰스조선소를 대신해 말뫼시는 정보기술을 바탕으로 한 지식산업과 에너지 자립이 새로운 시대의 산업 트랜드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말뫼시는 가장 먼저 태양과 풍력에너지에 주목했다. 주거시범단지인 ‘부(Bo)’에 있는 모든 건물의 옥상과 벽면에 집광판을 붙여서 태양광 에너지를 집약시켰고, 말뫼 서쪽 해안 10km 지점에 높이 100m가 넘는 풍력발전기 48기를 세워 무탄소 전력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또한 가정에서 나오는 생활쓰레기를 100% 재활용하고, 음식물쓰레기를 이용해 바이오가스를 생산, 이를 자동차 연료로 사용하는 등 ‘부(Bo)’를 중심으로 100%의 에너지 자립을 실현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말뫼시는 시의 ‘아픔’이었던 코쿰스조선소의 크레인 자리에 미래형 첨단 인텔리전트 빌딩인 ‘터닝 토르소(Turning Torso)’를 세웠다. 스페인의 대표적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설계하고 뛰어난 에너지 효율까지 자랑하는 이 건물은 북유럽의 대표적인 랜드 마크로 자리잡으면서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했다.
말뫼는 또한 시의 부흥을 위해 좁은 해협 건너편에 위치한 덴마크 코펜하겐과 협업해 8km길이의 위레순 대교를 건설, 말뫼와 코펜하겐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연결해 말뫼를 새로운 국제도시로 변모하게 했다. 아픔을 딛고 지식산업과 관광 산업, 에너지자립, 국제화를 추진하며 말뫼는 북유럽의 대표적인 혁신 도시로 떠올랐다.
버밍엄 위성도시 ‘케슬베일’
도시 슬럼화 위기를 주민 참여 리모델링 사업으로 극복
영국의 대표적 공업도시 버밍엄 (Birmingham) 시의 북동쪽에 위치한 위성도시 케슬베일은 버잉엄 지구에서 가장 큰 규모의 주거단지가 건설된 지역이다. 이 지역은 1960년대 이후 경제적 쇠퇴로 야기된 높은 실업률, 열악한 주민들의 건강상태, 낮은 교육수준, 높은 범죄율, 낙후된 사회 기반시설과 환경 등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다. 경제적 쇠퇴로 버밍엄 시의 기업들은 하나 둘 씩 지역에서 철수하기 시작했고, 일자리가 없어진 케슬베일 시민들은 타 지역을 전전하며 구직활동을 벌이는 등 떠돌이생활을 전전해 도시 공동화 문제도 심각했다.
케슬베일시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1993년 지역의 물리적 재개발과 더불어 지역주민 생활의 질을 향상 시키기 위한 도시재생 프로그램 ‘캐슬베일HAT’를 실행 했다. 영국정부와 버밍엄시 지방정부, 건설사와 금융회 사가 3억파운드(5500억원) 가량의 자금을 지원했다. 또한 케슬베일 시의회는 효과적인 도시재생 추진을 위해 케슬베일HAT에 운영전권을 위임했다.
본격적인 사업 실행에 들어간 케슬베일HAT는 시 리모델링 작업 시 단순히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짓는 물리적 측면에만 치중하지 않았다. 건축을 포함해 주민 삶의 질에 영향을 주는 직업 훈련, 건강, 사회보호 프로그램, 청년 문화예술 증진 등을 함께 추진했다. 또한 사업 진행에 지역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해, 지역주민들이 도시재생 사업을 주도해나가도록 했다.
이를 통해 케슬베일 시는 공동화로 청소년 범죄의 온상이 되기도 했던 고층 건물 대부분을 뜯어내 1500채가 넘는 아담한 주택을 건설했고, 노후 주택 1300채에 대해서는 리모델링을 끝냈다. 또한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지역방법제’를 도입해 주민의 안전과 치안, 청소년 활동을 돕도록 했다. 도시 리모델링을 통해 구축한 이같은 주민자율 참여 시스템은 케슬베일 경제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해, 케슬베일시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고 외부의 주민들이 ‘이사 가고 싶은’ 지역으로 재탄생하는데 성공했다.
예술에 대한 한 건축가의 열정
작은 섬 나오시마를 일본 대표 문화관광지로 혁신
나오시마는 일본 세토내해에 위치한 섬으로 3600명 가량의 주민들이 거주한다.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일본 기업가 후투다케 소이치로는 평범했던 작은 섬 나오시마에서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오시마를 현대건축과 현대미술의 복합공간으로 자리잡게 만들었다. 원래 나오시마는 섬 북쪽에서 가동된 제련소 때문에 환경이 심하게 오염돼 방기된 적이 있었다. 처음이 계획을 세운 후투다케 소이치로는 “인류를 구원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예술”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나오시마 전체를 예술의 공간으로 치밀하게 설계했다. 그가 진행한 나오시마 아트 프로젝트는 크게 ▲아트하우스프로젝트 ▲베세네하우스 ▲지추미술관이라는 세가지 테마의 건설 사업으로 진행됐다. 아트하우스프로젝트는 나오시마의 특별할 것 없는 일본의 낡은 가오고가 신사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이 프로젝트는 1998년부터 진행됐는데, 예술가들과 지역 주민들이 함께 일상적 공간을 예술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과정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아트하우스 프로젝트의 특징은 건축 외형은 그대로 놔둔 체 내부를 덧칠하며 건축물에 새로운 개념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래서 옛 시골마을의 정취를 담아내는 한편, 그 마을이 전통을 보존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현재에도 변화하고 있다는 철학을 녹여내려고 했다.
베세네하우스는 호텔과 미술관이 결합된 곳으로, 섬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예술작품을 감상하며 하룻밤 편하게 묵어갈 수 있는 숙박시설이다. 상당히 세련된 호텔 베세네하우스로 가기 위해 방문객들은 아주 오래된 급경사 협궤열차를 타야 한다. 나오시마 곳곳에는 이 같이 ‘현대건축물 사이에서 굳건히 존재하는 옛날 물건’들이 많은데, 그를 통해 현대의 역동성과 함께 과거로 회귀하는 향수도 함께 느끼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지추미술관은 입구 이외에는 건물 대부분이 땅 속에 묻혀 있는 지중(地中) 건축물이다. 이 곳에는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지 않고 클로드 모네, 제임스 터렐, 월터드 마리아 단 세 작가의 작품만 전시돼 관객들이 개개의 예술에 깊이 있게 집중하게끔 유도한다고 한다. 이 같은 프로젝트를 통해 나오시마는 일본 세토내해를 대표하는 문화관광지로 자리잡았으며, 대한민국를 대표하는 예술가 이우환도 나오시마에 미술관을 건립하는 등 많은 예술가들이 주목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고 한다.
천혜의 환경 없이 최고의 도시 설계만으로 최고의 환경상 수상, 꾸리찌바
완벽한 버스설계 등으로 ‘꿈의 도시’, ‘대중교통의 천국’, ‘생태환경 도시의 모델’이라는 평을 전세계적으로 받고 있는 브라질의 혁신 도시 꾸리찌바는 선진국의 유명 도시도 아니고, 자연환경이 뛰어난 천혜의 관광지도 아니다. 그러나 꾸리찌바의 지속적이고도 다양한 혁신은 오늘날 꾸리찌바를 세계 최고의 혁신 도시로 손꼽히게 만들었다.
대표적인 혁신은 버스 시스템이다. 꾸리찌바에는 지하철이 없는 대신 빨간색의 대형 굴절버스가 각 노선별로 쉴새 없이 승객을 이어나른다. 3칸의 차량을 이어서 만든 굴절버스는 도로 위에 그려진 전용 노선을 달리며 시속 30km 속도로 쉴 새 없이 승객을 실어나른다. 한 차량의 정원은 지하 철과 비슷한 270명으로 그만큼 객차당 승객 효율을 최대화시켜 교통체증을 최소화시켰다고 한다. 꾸리찌바 특유의 이 버스시스템은 2000년대 초반 당시 이명박 서울특별시장에 의해 서울시 버스운송체계 개선을 위한 밴치마킹 자료로 이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 같은 꾸리찌바의 도시 계획을 살펴보면 살기 위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세심한 정책들에 경탄하게 된다고 한다. 주요 간선도로변을 따라 고충아파트를 짓고, 외곽으로 벗어날수록 저층의 건물을 짓도록해 밖에서 보면 도시 전경이 3각형을 이루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시 중심 지역에 많은 사람이 거주할 수 있도록 설계한 셈으로 이는 도심지역 주거난을 해소하는데 큰 빛을 발했다.
한편 외곽지역 주민이라고 소외받지도 않는다. 이들은 도심지역으로 진입하지 않고도 모든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행정체제를 갖춘 것. 꾸리찌바는 대표적으로 시 외곽 버스환승 터미널 옆 8곳에 교육, 주택, 수도, 전기 등 각종 업무를 처리하는 ‘작은 시청’을 설치 했다.
이 같이 최고의 교통시스템과 주민불편을 고려한 도시 설계 탓에 천혜의 환경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꾸리찌바는 1990년 환경분야의 오스카상으로 알려진 유엔환경 계획(UNEP)의 ‘우수환경과 재생상’을 수상한 바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지도 꾸리찌바를 지구에서 환경적으로 가장 올바르게 사는 도시라고 평가하는 등 모범도시로서 찬사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