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의해 창지개명된 ‘심학산(尋鶴山)’을 원래 고유 지명인 ‘심악산(深岳山)’으로 회복시켜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교하 ‘심학산’ 아래 돌곶이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전해지는 설화에 의하면 조선 숙종 또는 영조 때 궁궐에서 기르던 학을 잃어버렸는데 ‘심학산’에서 찾게 되어 산의 이름을 찾을 심(尋)자 두루미 학(鶴)자를 써서 ‘심학산’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미수 허목 선생의 ‘무술주행기’를 보게 되었는데 ‘심학산’이 아닌 ‘심악산’으로 되어있었습니다.
또한 고산자 김정호 선생이 1861년 제작한 ‘대동여지도’와 1862년(철종 13년)부터 1866년(고종 3년)까지 편찬한 지리지 ‘대동지지’를 구입하여 찾아보아도 ‘심악산’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파주위키 이기상 대표 도움으로 상명대학교 정우진, 김일림 교수가 쓴 “한강하구 ‘심악(深岳)’ 문화지형의 형성과 해체”라는 논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심악산’은 조선 광해군 때 교하천도론을 비롯하여 정감록에서 차기 도읍지로 교하가 지목되었고 현대 서울대학교 최창조 교수는 교하가 통일한국의 수도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그 중심에 서 있는 산입니다.
이렇듯 과거부터 현재까지 ‘심악산’은 명당 중에서도 가장 높게 평가되는 ‘비룡상천형(飛龍上天形), 즉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일제가 ‘심악산’에 대한 인근 주민들의 공통된 의식의 해체와 변화를 꾀하여 식민지배를 공고화하기 위해 풍수침략의 일환으로 ‘심악산’을 ‘심학산’으로 개명하였을 개연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심악(深岳)’에 내재된 문화지형과 지역민들의 정체성 회복의 중심에 ‘심악산(深岳山)이 있습니다. 따라서 ‘심학산’을 원래 이름인 ‘심악산’으로 회복시켜야 합니다.
[지방정부티비유=티비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