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광 가천대학교 대외부총장
공익과 공직사회의 위상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둘이 모여 관계를 맺고, 관계를 엮어 사회를 만든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불린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특성은 다른 사람의 특성과 섞이며 무뎌지고 표준화되어 대중사회를 이룬다. 개인의 이익이 사회 공통의 이익으로 확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시사회는 인간의 사회형성 과정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설명 틀이다. 식량을 찾아 이동하면서 다른 집단과의 충돌이 불가피했을 것이고 이러한 충돌과정에서 집단끼리의 갈등이 발생하여 작은 집단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한 일은 가까운 혈연끼리 뭉쳐 씨족사회를 구축함으로써 해결되고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씨족사회는 삶의 공동터전을 관리하고 유지하면서 지리적 연고성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씨족의 안녕을 기원하였을 것이다. 씨족사회의 공간적 활동범위가 확대되면서 인접하여 활동하던 다른 집단과의 분쟁이 발생할 수 있고 보다 넓은 공동체 형성을 통해 분쟁을 유리한 쪽으로 이끌고자 하는 욕망이 결국 부족사회와 부족국가를 형성하게 하였다.
어느 사회든 인간이 생존하는데 필요한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개인이 모두 해결하도록 맡겨두면 상호충돌할 가능성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영역을 개인이 처리하게 된다면 개인의 이해가 상호 충돌하고 갈등이 늘어나서 공동의 이해를 저해하고 집단의 안전이 위협받게 될 것이다. 혹은 이해 당사자가 담합을 통해 다른 집단에 피해를 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인간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일을 개인이 처리할 경우 상호 충돌하여 집단갈등을 야기하고 불특정한 다수의 개인에게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는 영역을 ‘공공부문(public sector)’이라 하고 이들 상호 충돌을 제3자를 통해 해결하려 했다. 서로 충돌하는 영역을 이해당사자끼리 상호 협상에 의해 해결하도록 맡긴다면 담합과 독점형태로 다른 사람의 가능성을 제약할 수도 있다. 따라서 공공부문은 이해당사자가 아닌 제3자 해결방식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제3자 해결방식의 주체가 공공기관인 정부(government)다.
반면 개별 이익이 사회화 과정에서 상호 충돌하더라도 이해당사자인 개인끼리 서로의 교환율에 따라 처리해도 다른 사람들의 가능성과 기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문도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소유하고 싶을 경우 서로의 자유로운 협상에 의해 맞바꿀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 개인의 이익 충돌은 당사자들끼리의 협상에 의해 해결되더라도 다른 사람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영향이 미미하다. 이러한 영역을 ‘민간부문(private sector)’이라 하고 이의 관리방식을 ‘시장체제(market system)’라 한다. 즉, 시장에서는 다수의 사람이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상호 충돌하더라도 당사자들끼리의 협상을 통해 가격을 결정하고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를 교환한다. 물론 시장에서의 거래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능력에 따라 생산된 재화나 서비스가 필요한 만큼만 거래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전제가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이나 체제를 형성하고 관리하는 영역도 공공부문에 속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1920년대 말 미국의 대공황 사태는 공공부문의 영역을 확대하는데 기여하였다. 이 때문에 공공부문의 영역은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활동이 상호 충돌하는 공공부문(public sector)은 개인이 아닌 공동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조직(통상 정부)으로 하여금 처리하게 것은 모든 나라에서 같다. 이 영역을 개인에게 맡길 경우 사회체제 및 시장기구가 혼란스러워서 개인에게도 추가적인 비용을 수반하고 당사자만의 이익을 내세워 다른 구성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개인이 인간생활에 필요한 모든 재화 및 서비스를 생산, 소비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비용은 가장 적게 들고 효용은 극대화될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그러한 영역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개인의 활동이 상호 충돌하는 영역은 구성원 모두의 합의에 의해 탄생한 공동조직을 통해 해결함으로써 비용은 다소 추가되더라도 사회안전망을 확보하고 사회체제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는 아무리 많은 개인비용을 들이더라도 개인으로는 이 영역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국방과 방범 그리고 사회 전체적인 체제유지가 여기에 속한다. 인류역사는 이와 같은 공공부문의 확대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즉, 정부조직은 대표성을 부풀리고 조직을 확대하여 시장영역에 무단히 개입하기 시작하였고 결국 민간분야와 상호 충돌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큰 정부가 출현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공부문도 속성과 영향의 크기에 따라 국가가 직접 처리할 영역과 작은 지방정부가 처리할 영역으로 구분되게 되었다. 또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상호작용 범위도 확대되고 있다. 이 경우가 ‘제3부문(the third sector)’이 탄생하는 배경이다. 공공재는 우회생산과정을 거치면서 비용이 추가되고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과 우회생산을 거칠 경우 비용도 절감되고 만족도가 극대화되는 영역이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의 발전도 이러한 민간부문과의 상호충돌 영역을 구분하고 이 부분을 우선 시장영역으로 되돌려 주며, 공공영역도 우선적으로 주민에게 가까운 지방정부로 하여금 처리하게 하는 방식으로 접근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적정한 지방자치 수준을 정의하고 정부 간 역할분담을 도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2016년 공직사회의 변화와 발전방향을 논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공공부문의 이해와 민간부문과의 상호작용과정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즉, 공직사회는 공공부문은 물론이고, 제3부문, 그리고 다수의 이익을 조정하는 시장 작동체계 운영자 모두를 포함하여 광범위하게 정의될 수 있다.
공직사회의 변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관계나 상호작용이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제3부문의 역할도 변화하고 있고, 민간부문의 작동체계인 시장(market)도 변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장의 실패를 경험하고, 시장의 실패로 인한 공공부문의 실패 즉, 정부의 실패를 경험한 나라도 많았다. 이러한 정부의 실패는 우선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즉, 정부의 실패는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거나,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섣불리 개입하는 경우에 나타난다. 모두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구분이 잘 못되었거나 역할이 바르게 정의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20세기 후반부터 협치(governance),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동반자 관계(partnership)가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혁명이라는 새로운 잣대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구분을 달리하기 시작하였고, 전 지구적 환경오염으로 인한 인류문명의 위협요소는 정부와 시장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 새로운 잣대와 위협은 과정과 결과를 따로 구분하여 평가하지 않고 이들을 융합하는데 기여하였다. 인류문명의 거대한 흐름에서 종래 불가능하게 보였던 인과율(causality)이 드러나기 시작한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2016년 새해 공직사회의 변화는 다음과 같이 전망된다. 첫째, 공공부문의 축소와 민간부문 및 제3부문의 확대다. 이러한 전망의 근거는 정보·통신 및 교통혁명이다. 이러한 기술혁신은 우선 공공부문 작동체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술혁신은 거리를 축소하고 시간을 단축시키고 있다. 과거 공공부문이 정보를 독점 생산하던 방식에서 이제는 민간부문이 생산한 정보에 근거하여 정부가 공공부문을 관리하게 되었다. 민간부문의 힘이 강해졌고, 민간부문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 간혹 공익을 앞세워 정부가 이들 민간부문을 장악하려 해보지만 부작용만 초래하고 공익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았다. 공공관리라는 틀로 민간부문의 작동원리(즉 시장원리)를 공공부문에 도입하려 시도한 적도 있다. 커져가는 민간부문과 그 성과를 공공부문이 따르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공공관리도 전통적인 공공부문의 역할과 본질을 실천하는데 실패하였다. 결국 제3부문의 영역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고, 협치(協治)방식을 강조하는 새로운 틀을 모색하게 되었다.
둘째, 공직사회 구성원의 융합적 특성을 무시하고는 더 이상 공공부문의 관리가 어렵게 되었다.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공익과 개인의 이익을 모두 추구하는 사회의 구성원이다. 공직자로서 공익을 관리하고 증진하는데 힘쓰는 한편 개인으로서 시장에서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 소비하며 살아야 한다. 이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전통적인 구분체계로 인한 각각의 구성원 역할로는 현대 사회를 설명할 수 없게 된 셈이다. 민간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도 공익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공익의 일부를 책임져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혼자 고립된 세상에서 살지 않는 한 모든 사람은 공동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져야 한다. 그러한 책임과 의무는 공공부문을 존중하고 관리하기 위한 기본 소양이다. 따라서 공직자를 따로 분류하며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구분하는 실익이 작아진 셈이다. 누구든 공공부문을 수호하고 관리해야 할 책임을 져야하고, 다른 사람의 권리와 기호를 부단히 침해하지 않으면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고 기호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환경관리가 공공부문에 속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이와 관련한 인류문명의 지속가능성 확보는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을 따로 떼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실천될 과제가 아니다. 정부가 하는 일이라서 공익에 합치되고, 시장에서 거래되었다고 하여 개인의 이익만 추구했다고 주장할 수 없다. 환경오염의 상당부문은 정부의 책임이라는 사실도 이의 증거다. 정부의 실패는 잘 드러나지 않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시장의 실패는 명백한 증거를 남기는 반면 많은 경우 정부의 실패는 ‘기대에 못 미치는 정도’로 은폐되기 쉽기 때문이다. 공직자도 공공부문 관리자로서의 역할과 개인으로서 시장에 참여할 수 있다. 개인으로서 시장에서의 행위를 공직자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은 모두 개인으로서 민간부문 구성원이고, 집합적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공공부문의 역할 수행자이기도 하다. 두 역할이 배타적 관계이어야 한다는 고전적 공직사회 정의로는 새로운 사회현상을 설명하고 관리하기 어렵게 되었다.
공직사회 발전방향
거대한 인류문명의 흐름을 반영하여 공직사회도 변화해야 한다. 그렇다고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구분이 의미 없다는 것은 아니다. 물이 수소원소와 산소원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여 따로 떼진 수소와 산소가 각각의 존재이유를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듯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이상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존재이유는 인정된다. 다만 수소와 산소가 결합하는 비율과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현상을 초래하듯,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구분체계 및 각각의 역할을 달리하면서 공직사회의 발전 방향을 짚어보는 것도 2016년 새해를 맞이하며 의미 있는 일이다.
첫째, 새로운 시대엔 공공부문을 부풀리기보다 민간부문에서의 공익적 역할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시장의 실패, 과도한 복지정책의 도입, 환경위기를 이유로 정부는 공공부문을 부풀리며 역할을 키워왔다. 민주주의는 속성상 시장순환, 공공비용과 효과의 시간 차이, 환경 순환주기를 제때에 맞춰 비용과 효용을 일치시키는데 한계가 있다. 민주주의 정부도 시장의 실패, 정부의 실패, 환경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고 하여 민주주의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인류 공동체를 관리할 수 있는 최선책이 아닐 뿐이다. 창조자가 있다면 창조자가 끝까지 인류사회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만장일치로 동의하는 창조자는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결국 사람들은 다수가 생각하고 결정하며 행동하는 바에 따라 세상이 관리되는 것에 안주하게 되었고, 이를 흔히 민주주의라 하였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원래부터 소수나 신의 역할을 제한적으로 해석하면서 출발한다. 결국 민주주의가 결정하고 실천하는 것이 항상 인류에게 이로운 것이 아니리라는 예측은 어렵지 않다. 이제 교통·통신의 발달로 인간의 공동체 관리방식도 바뀌고, 공익과 사익의 구분도 바뀌었다. 이는 2016년에 한정된 현상이 아니다. 지금까지 간과되어 왔던 현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즉 이제 공익과 사익의 조화가 요구된다. 공익은 사익에 영향을 미치고 사익은 공익에 영향을 미친다. 공공부문은 개인의 욕망을 초월하는 비용을 수반한다. 공공재와 공공서비스의 속성이 원래 그렇다. 즉, 공공재와 공공서비스는 낱개로 나누어 생산, 공급하기도 어려워서 비용 지불자의 책임과 의무, 그리고 소비자의 효용을 일치시키기가 어렵다. 결국 드러난 인류공통의 문제에 집착하여 공공부문만 키우다보면 지구 전체적인 비용이 늘어나서 인류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저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인류에게 필요한 것도 가급적 비용과 효용을 일치시킬 수 있는 시장기구에 맡기고, 공공부문을 축소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커지면 국가 안에서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거나 책임을 피하려는 국민이 늘어나고, 국가끼리는 분쟁과 갈등만 늘어나게 된다.
둘째,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사람 즉, 공직자의 원초적이면서 이중적인 속성을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공직자라고 하여 그의 모든 행위를 공익적 잣대로만 평가할 수가 없다. 공직자는 공익을 증진시키고 관리하는 역할도 부여받았지만, 시장기구를 통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도 타고 났다. 물론 공직자에게 는 공익적 관점이 강조되고, 민간인에게는 개인의 이익 추구가 정당화되는 범위가 넓을 수 있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게 된 현대사회에서 인류문명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해서는 공직자의 개인 이익 추구 행위도 인정되어야 하고, 민간부문 종사자의 공익적 가치도 요구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직자의 자세도 바뀌어야 한다. 공공부문만이 공익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민간부문은 항상 개인의 이익만 추구하는 관리대상이 아니다. 공공부문의 과도한 민간부문 개입은 분명 커다란 문제다. 마찬가지로 공직자 개인으로서의 시장 참여를 무조건 벽안시하는 관점도 문제이다. 물론 공익과 사익을 구분할 줄 아는 것은 공직에 종사하고자 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자격요건에 속한다. 이러한 자격요건에 미달하는 사람이 공직에 참여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공직자라고 하여 개인적 사익추구를 죄악시하는 것도 문제다. 현실을 무시한 잣대로는 세상을 관리할 수 없다.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을 공인이라고 부르게 된 연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딛고 서있는 입장 차이가 있기 때문에 공직자의 시장 참여범위가 제한적이어야 하고 개인의 이익추구 행위도 민간부문 구성원과는 달라야 한다. 공직자는 사람을 이롭게 해야하지 자기가 하는 일을 정당화하는데 급급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