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도들을 성폭행하고 강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JMS(기독교복음선교회) 총재 정명석은 성경 구절을 왜곡하여 자신의 권위를 합리화함으로서 자신을 신격화 시켰다. 그는 신도들에게 “외부 세계는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다”며 JMS 공동체 안에서만 안전함을 강조하기도 했는데, 그의 언행은 공동체를 위한 봉사 그리고 희생으로 묘사되어 신도들에게 무조건적 숭배를 받게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체포되기 전 올린 영상메시지 중 “이 나라에는 법이 모두 무너졌다”라는 발언은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더 나아가 ‘부정선거’에 대한 꺾이지 않는 믿음, 그리고 계엄을 선포하며 과단성을 보임으로써 극우론자들이 그를 더욱 신봉하게끔 만들었다. 관저를 나가는 대통령을 향해 “울면서 큰절하는 사람도 있다”는 뉴스와 “유혈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한 대통령의 발언은 본의 아니게 성경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메이저 여론조사기관 중 하나인 한국갤럽이 발표한 국민의힘 지지율 상승 그리고 민주당과의 골든크로스는 이를 뒷받침 해준다. 또한 국회의원의 모든 행동은 그들의 재선과 관련된다고 하는데 국힘 국회의원들이 대통령 관저에 몰래 간 것은 분명 보수의 괴멸을 우려하는 것이 아닌 재선을 위한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다. 물론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으려는 유권자들이 상당하다는 점도 배제해서는 안 되겠지만 대한민국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계엄을 옹호하고 이를 이해해보려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는 점은 확실하다. 기어코 윤 대통령은 보수의 神이 된 것이다.
무엇이 우리 대한민국을 이렇게 분열시킨 것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보다 더 염려 되는 것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변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통령 탄핵이 된다고 해도,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이러한 분열 양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민주주의 혼란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데, 왜 그런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살펴 보겠다.
지구 전체가 불안하다! 왜?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계엄 신드롬은 마치 지난 2021년 트럼프 지지자들이 바이든의 대선 승리를 불복하며 의회에 난입한 사건과 유사하다. ‘사기 선거’라고 굳건히 믿은 트럼프 지지자들과 ‘부정 선거’를 믿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의 폭력성도 비슷하기 그지없다. 지난해 영국에서도 이슬람교도 이민자를 겨냥한 극우 폭동 시위가 발발하면서 여행경보까지 발령되었다. 이와 같이 전 세계적으로 불안한 시기를 겪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우리의 삶이 전개되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 수렵-채집 사회를 포함한 이전 세대는 지역적 불안정성(local instability)과 전 세계적 안정성(global stability)에 정의된 세상에서 살았다. 지역적으로는 잦은 전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힘들었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변화가 크게 없던 시대였다. 반대로 현재는 지역적으로는 안정적이나 전 세계적으로는 불안정적이다. 현대 사회의 일상은 극도로 규칙적인 삶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온라인 제품을 주문하면 정확히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있고, 어느 스타벅스에 가도 동일한 맛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AI로 인해 삼성의 주가가 떨어지고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전쟁으로 우리나라의 기름 값이 치솟아 오른다. 이처럼 이전과 다르게 어떤 곳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 파급효과가 더 커지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스타벅스의 커피 맛은 변하지 않지만 민주주의는 붕괴하는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양극화의 아버지는 알고리즘?
친구 녀석이 나의 유튜브 목록을 보는데 괜스레 부끄러웠다. 유튜브에 늘어선 추천 영상들은 그 무엇보다 나의 내면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관심을 최대화하고 시청 시간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설계되었다. 이를 위해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이전에 좋아하거나 시청한 콘텐츠와 유사한 콘텐츠를 추천하며, 점점 더 관심을 끌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는 자신의 기존 신념과 일치하거나 더욱 강렬한 감정을 자극하는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소비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의 신념과 맞는 정보를 더 선호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 일어나는데 결과적으로 사용자는 반대되는 의견을 접할 기회를 잃고 자신의 관점만 강화시킬 확률이 높아진다. 또한 알고리즘은 조회수와 참여도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추천하기 때문에 더 자극적이고 관심을 끌만한 콘텐츠가 추천되기 일쑤이다. 예를 들어, 특정 정치적 관점을 가진 사용자가 해당 관점의 동영상을 클릭하면, 알고리즘은 더 극단적인 내용의 동영상을 추천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과정들은 사용자의 정치적 신념을 더 극단적으로 만들고, 사회 전체의 양극화를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서부지법 폭동’이 생각나는 것은 비단 우연일까...
알고리즘이 탄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효율성과 최적화로 이어진 이윤 극대화이다.
불안정한 모래성의 크기를 줄여야...
모래 알갱이를 하나 하나 계속 더하다 보면 모래성이 쌓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해서 쌓여지는 모래성은 어느 순간 불안정해져, 알갱이 한 개가 모래성 전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게 된다. 현대 사회, 특히 대한민국 사회는 극도의 효율성과 최적화를 추구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대학입시에 필요 없는 체육과 같은 교양 과목은 뒷전으로 밀리고 오로지 좋은 대학에 가는 법만 배운다. 자신의 삶에 대한 답을 추구하기보다 남이 말하는 효율적이고 최적화된 삶을 따라간다.
효율성과 최적화는 결국 이익 극대화(profit maximization)를 합리화 시켰고 이러한 사회 맥락 안에서 국회의원들은 재선만을 바라보고 기업들은 공평한 결과보다 수익에 초점이 맞춰졌다. 유튜브를 비롯해 모든 소비 시스템은 이용자 신상에 최적화 되어 보고 싶은 콘텐츠와 제품에 노출되어 극우와 극좌를 생산한다. 모든 이들의 시야가 좁아지면서 연금을 포함해 모두를 위한 사회 시스템이 지속가능성 보다는 특정 집단의 이익에 맞춰져있고 이에 맞서 청년들은 아이 낳기를 포기하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양극화는 어느 한 집단의 잘못이기보다 우리 사회가 효율성과 최적화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는 위태로운 모래성에 모래를 계속 쌓는 것보다 모래성의 크기를 줄여야 한다!
역사는 항상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기 마련이다. 후퇴도 결국 전진인 셈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우리나라가 전진하는 방향이 맞는가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필자가 주장하는 고효율, 최적화가 지금의 혼돈을 야기했다는 점이 순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지금 당장에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겠지만 근본적인 것들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한강의 기적이라는 이름을 가진 모래성은 언제가 무너질 것이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다수의 국민에게 돌아올 것이다.
[지방정부티비유=티비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