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은 버들양(楊), 수풀림(林) 자를 쓴다.
조선시대 1550년부터 휘늘어진 버드나무가 무성하다 하여 ‘양림(楊林)’라 불리었다고 한다.
이를 말해주듯 양림동행정복지센터 옆에는 엄청난 크기의 건강한 버드나무가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다.
11월 20일 겨울이 깊어가고 있음에도 수양버들잎은 하나도 떨어지지 않고 초록색 그대로 바람에 한들거리고 있었다.
양림동은 사직산과 양림산이 이어지는 능선에 자리 잡은 지리적 특성이 있으며, 옛 광주읍성 바깥에 위치한 관계로 공동묘지가 있었다. 1904년부터 기독교 계열에서 교회, 병원, 학교를 세우면서 근대화가 시작된 곳으로 오래된 교회, 병원, 학교 건물 등 근현대 건물이 많고 특히 양림동 골목은 오래된 개인주택이 많이 남아 있다.
양림동은 근현대의 광주라는 시공간 속에서 120년 전 광주 최초로 선교사를 통해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오웬 기념각, 우일선 선교사사택, 선교사 묘역 등 기독교 문화 유적과 광주광역시 민속자료인 이장우 가옥 등 전통가옥이 자리 잡고 있다. 또 광주의 첫 근대 의료기관인 제중원과 첫 근대학교이자 항일 운동의 본거지였던 수피아와 숭일학교가 개교된 곳으로, 근현대의 광주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또한 ‘가을의 기도’ 김현승 시인의 생가와 요즘 언론에 많이 오르내리는 음악가 정율성의 생가도 있다.
양림동은 한때 광주의 명동 역할을 하던 곳이지만, 광주 교외의 신흥 주택단지가 급속도로 발전됨에 따라 기존의 주택가는 도심 공동화가 진행되고 지역이 쇄락하게 됐다. 오래 거주하던 주민들이 나이가 들고 하나둘씩 빈집이 생겨나 2013년 빈집에 화재가 발생할 정도로 방치되다시피 하던 마을이었던 이곳이 2019년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면서 마을 주민과 행정이 함께 노력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아름다운 거리로 재탄생한 곳이다.
양림동 마을관광의 시작은 당시 펭귄마을 촌장이던 김동균 씨가 쓰레기를 치우고 시계 폐품과 텃밭을 가꾸고 펭귄텃밭이라 부르면서 펭귄마을의 시초가 됐다고 한다. 이후 주민들이 마음을 합해 폐품을 모아 재미있게 꾸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크아트 마을로 탈바꿈시켜 도시 관광의 명소가 됐다.
양림동 펭귄마을 거리 담벼락에 걸린 수많은 벽시계를 보면서 가수 나훈아 노래 ‘고장난 벽시계’ 가 생각났다. “고장난 벽시계는 멈추어 있는데 저놈의 세월은 고장도 없네”라며 쉬지 않고 흘러가는 세월을 원망하는 대목이다.
양림동에 모여 있는 200여 개의 벽시계는 지금은 비록 멈추어 있지만, 과거에 저 벽시계의 명령에 따라 때로는 바쁘게, 때로는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애인과 약속시간도 맞추고 등교하고 출근하는 등 저마다의 인생 시간을 맞추었을 것이다.
벽시계와 어우러진 골목에는 버려진 가스통, 소화기, 항아리, 양은그릇, 배불뚝이 브라운관 흑백 텔레비전 모니터를 비롯해 1960∼1980년대의 향수와 추억 그리고 생활사를 알 수 있는 물건이 많아 어른들은 몰론 어린이와 가족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펭귄마을 안쪽으로 들어와 골목길을 걷다보면 마을 주민들이 입주 공방에서 도자기, 금속 공예, 목공예 등 다양한 분야의 공예 장인들이 정성 들여 만든 작품을 볼 수 있고 마음에 들면 구입할 수도 있다.
양림동 거리에서 만난 전주에서 왔다는 한양림 씨는 양림동이 자신의 이름과 같은 곳이라 더욱 친근감이 들어 좋을 뿐만 아니라 아담한 항아리는 어릴 때 부엌에 놓고 밥을 지으려 쌀을 씻기 전에 좀도리쌀 한 주먹씩 넣어 저축하던 쌀 항아리처럼 생겼다며 어릴 때의 추억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양림동 박중건 동장은 “양림동이 보존과 개발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동네, 수채화 같은 동네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