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위기의 한 축은 인재 부족에 있다
최근 1~2년 사이에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단어는 ‘저출산’과 ‘지방소멸’이 아닐까 싶다. 이들 용어가 자주 언급되면서 드는 의문이 있다. 한 지역이 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살기 좋은 곳, 살고 싶은 곳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도시가 활력이 넘치고 성장하려면 인적·물적 자원의 확보가 중요하다.
도시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는 창조적 도시의 3요소로 3T(기술, 인재, 관용; Technology, Talent, Tolerance)를 제시하기도 했다. 즉 지역개발을 위한 자본 및 사회 인프라와 발전을 주도할 인재가 핵심 요소라는 의미이다. 한편 물적 자원의 확보에도 큰 노력이 요구되지만, 인재 확보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인재 양성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현실을 보면 지방 위기의 가장 핵심은 인재 유출에 있다.
우리나라는 고도성장이 시작된 이래 수도 서울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고, 그 결과 2021년 기준 수도권 인구집중도가 50.2%로 지구상의 어느 국가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대구의 경우 매년 대학입시가 끝나면 고3 졸업생 수천 명이 서울권 대학으로 유출되고, 취업 시즌이 지나면 지역대학 졸업생 중 매년 1만여 명이 수도권으로 떠나간다. 다른 지방 도시도 유사한 상황이다. 지역의 두뇌는 모두 서울로 가고, 누가 지역의 장래를 이끌어갈 것인가? 이러한 지역의 위기를 타개할 방법은 석·박사와 교수·학자 등 각 분야의 두뇌들이 모인 지역대학과 손잡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며 최선의 길이다. 이미 지구상의 많은 도시가 위기 극복과 재도약을 위해 지역대학과 협력하여 탁월한 변화를 이루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와 스탠퍼드대학은 기업과 대학이 한 몸처럼 협력하여 첨단기술을 개발하여 전 세계를 석권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말뫼의 눈물’로 알려진 스웨덴 말뫼시는 쇠락한 도시를 살리고자 정치인·공무원, 학자, 기업이 협력해 말뫼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을 유치하고, 친환경 창업 도시를 구현하여 인구 22만에서 33만의 도시를 만든 성공 신화를 이루기도 했다. 일본은 2014년 「지역사회, 사람, 일자리창출법」을 제정하고, 내각관방의 도시재생본부가 추진하는 각종 사업에 대학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역혁신과 지방대 살리기를 위한 필요성을 인정하고 2020년에 「지방대학 및 지역 균형 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지자체와 대학의 협업체계 육성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고, ‘지자체-대학 협력 기반 지역혁신 사업’을 시작했다. 지자체 중 서울시도 이미 2017년부터 ‘캠퍼스타운 사업’을 추진하여 2,000개 팀의 청년 창업기업을 탄생시켜 지역경제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상생공동체로 나가고 있다. 전북 지역에서는 2021년에 전북대와 전주시, 포스코건설 등 5개 기관이 민·관·학 지역혁신프로젝트를 결정하고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대구 시정부와 지역 대학들의 노력
대구지역도 인재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산학협력 및 지역혁신 사업을 오래전부터 추진해왔다. 하지만 획기적인 변화는 2019년부터 시작된 ‘대경혁신인재 양성사업(휴스타 사업; HueStar Project)’인데, 대구시와 경상북도가 연간 200억 원을 투입하는 공동사업으로 산학관이 협력하여 지역산업을 이끌 기업 맞춤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했고, 이 사업은 교육부의 지역혁신사업(RIS)에서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기존에 시행되던 산학협력선도 대학 육성사업(LINK)이나 RIS 사업 등 5대 대학지원 사업이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로 통합돼 2025년 전면 시행됨에 따라 지방대학 지원 및 협력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한편 대구 지역의 거점 국립대학인 경북대학교는 지역기업 지원기관인 대구테크노파크가 설립될 당시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대학 자체의 산학협력단도 전자, 의료를 비롯한 지역기업과의 협력에 오랜 기간 매진했고, 대학 내 지역공헌센터는 지역민을 위한 봉사와 소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사립대인 계명대학교는 그동안 지역과의 소통 노력을 승화시켜 2019년에 ‘계명대 지역혁신지원단’을 발족하고 학문의 상아탑으로서의 대학이 아닌 지역민과 함께하는 대학으로 거듭나고자 했다. 구체적으로는 단과 대학별로 교수와 학생들의 전공을 살려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시민과 협업하는 사업을 발굴해 연간 30개 이상의 개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의 미래를 위한 담대한 협력과 지속적 노력이 필요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각 지역의 두뇌 집단인 대학과 지역사회가 협력하여 지역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다양한 모습으로 추진되고 있으나, 다음과 같은 과제들도 존재한다.
첫째, 지방 도시의 자발적인 지역 협력 네트워크(협의체)가 필요하다. 이미 법적 근거를 가진 중앙정부의 정책과 지원도 필요하지만, 이는 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한다. 이제는 지역이 대학이고 대학이 곧 지역인 시기가 됐다. 지역의 모든 주체가 참여하는 인재 양성·인재 활용 체계가 필요하며, 개별사업 단위의 협력보다 지역 전체를 총괄하는 협력체계가 작동하여야 한다.
둘째, 항구적인 중앙-지방협력체제를 구축하여야 한다. 현 정부에서 가동 중인 대통령·시도지사의 협의체인 ‘중앙-지방 협력회의’를 참고할 만하다. 몇 년 단위의 공모사업 중심으로 지방을 경쟁시켜 차별적으로 지원하는 낡은 정책은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다.
마지막으로, 지자체 공직자의 인식 대전환이 필요하다. 필자와 인터뷰한 지방 공무원 중에는 대학지원이나 협력이 지방정부 고유의 업무가 아니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는 크게 바뀌어야 할 사고방식이다.
이제는 과거처럼 각자 알아서 살아가서는 지방 도시는 소멸을 면하지 못한다.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담대한 협력과 열린 자세로 협력해야 할 상황이다. 특히 정책적 도구를 가진 공직자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며, 더 나아가 지방정부와 지방대학이 한 몸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제는 손잡는 것을 넘어 지방정부와 지방대학이 진정으로 포옹하고 ‘백년해로’ 한다는 자세로 살 길을 모색해야 할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