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분권 인식 공유 위해 배려와 포용 필요”
정순관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위원장
이영애(《월간 지방자치》 편집인)_ 지방자치발전위원회가 자치분권위원회로 변경됐습니다. 왜 바뀌었죠?
정순관(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위원장)_ 우리 위원회 설치 근거가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인데요, 입법 의도를 생각해보면 중앙 정부의 권한을 지방에 넘겨주고 중앙과 지방의 관계 속에서 추진해온 지방분권에 대한 반성이랄까요. 그 점이 입법자들에게 투영되어 자치분권 개념이 중앙과 지방의 대결이 아니라 주민과 지방정부 내에 스며들어야 한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영애_ 특별법에 따라 위원회 활동 기간이 5년 연장된 2023년까지인데요, 그 방향성이 무엇인가요.
정순관_ 자치분권이 민주주의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작업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 아이디어는 결국 주권자인 주민을 향하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추진하면 좋겠다는 것이죠. 방향성도 기관 간의 관계가 아니라 주민의견을 들어 수렴·심의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 진행해나갈 것
입니다.
이영애_ 역대 정부의 자치분권 정책과 현 정부 정책 간의 차이점이 무엇인가요?
정순관_ 그동안 추진했던 지방분권이 중앙과 지방 간, 기관과 기관 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현 정부에서는 이전 정부보다 훨씬 강한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바로 국민주권·주민주권으로, 자치분권이 실질적으로 주민 속으로 들어가 주민참여제도 장치를 만들어나간다는 점이 다르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위원회 모토도 ‘여러분이 주인이고 주인이어야 합니다’예요.
이영애_ 범정부 재정 분권 대응TF가 얼마 전 꾸려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지요?
정순관_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재정 분권 전문가들로 구성된 범정부 재정 분권 대응TF에서 재정 분권에 대해 상당히 치열하게 논의 중입니다.
각 부서가 나라 살림 혹은 지방 살림을 경험한 과정에서 축적된 아이디어를 내놓고 처지가 다른 것은 논의해서 조정해가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해당 부서 실무 과장들이 모여 구체적으로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과 문제점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며 조정하고 있습니다. 정부 부처 간 혹은 학자들의 동의를 얻어서 의견이 종합되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완성되기 전이라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이영애_ 네 그러시죠.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출범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데요, 위원장님 말씀을 들으니 자치분권위원회가 굉장히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네요. 위원장님의 역할이 참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순관_ 중요한 역할임은 분명하지만, 우리 사회가 이미 국민적 여망에 따라 자치분권으로 나아갈 시기가 도래했기 때문에 어느 누가 이 자리를 맡아도 그렇게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영애_ 저는 국민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사람으로서 위원장님 같은 사회 윗분들이 중심에서 의지를 갖고 가셔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순관_ 이해당사자들이 많기 때문에 쉽지 않지만, 규범적으로 가야 할 방향이라면 열심히 해야지요.
이영애_ 국민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이 어떻게 다른지 현장 공직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말씀을 해주신다면요.
정순관_ 문재인 정부는 ‘자치분권’과 ‘균형발전’ 두 가지를 국정 중심 가치로 삼고 있습니다.
이 중 균형발전은 국가 자산을 어떻게 재배분할 것이냐, 특히 국가가 재정투자를 어디에 할 것이냐의 관점에서 볼 때 덜 발전되고, 덜 혜택받는 지역과 계층에 좀 더 투자하겠다는 시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자치분권은 이해당사자, 즉 지방의 자율권을 강화하는 것이죠. 의사결정 주체로서 드러나게 하는 것이 자치분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영애_ 말씀을 들으니 두 개의 가치가 일맥상통하고, 같이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순관_ 항상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우리나라가 압축 성장을 통해 능률성을 강조해온 의사 결정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이해당사자가 정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과정이 많이 생략됐습니다. 지방 처지에서 보면 중앙집권적이고 도구적이었죠. 중앙에서 결정하면 이를 달성하기 위해 지방이 따라가는 식이었습니다. 이런 현상이 사회 전반에 걸쳐 축적되다 보니 사회가 ‘우리’ 보다는 ‘나’만 잘사는 형태로 되어왔고요. 평균적으로 잘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 구성원들이 불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회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포용과 배려가 묻어나도록 국가가 덜 혜택받은 지역에 재정을 투자해주는 것은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지방정부 스스로 자율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도록 설계하는 것은 자치분권위원회가 맡고 있습니다.
이영애_ 정부 개헌안이 발표되었는데요, 헌법에 대해서 많이 알고 계신 위원장님께서는 이번 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정순관_ 개헌 문제에서 권력 구조나 기본권보다는 지방분권의 방향과 내용에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에 그 점에서 생각하면 이번에 발표된 정부안이 개헌에 반영되어 결실을 거둔다면 지방과 주민의 자율권이 상당히 확대되리라고 봅니다. 다만 지방분권 국민회의나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내용에 비교하면 미흡할 수 있겠죠. 그런데도 현행 헌법 체계와 이번에 제안된 내용을 비교하면 지방이 스스로 책임지고 권한을 갖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국민 대변기관인 국회에서도 그 점을 잘 수용해 잘 추진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영애_ 이번 정부안과 국회, 특히 야당이 주장하는 부분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정순관_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에 의하면 지방분권 주제에 관해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듣고 있습니다. 다만 일부 야당에서 자치분권을 추진하는 것이 고려연방제를 추진하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만 글쎄요. 어떤 지역에서 자치분권 내용에 대한 강의를 하는데, 플로어에서 일부 야당이 하는 이야기와 똑같은 질문이 나왔어요. ‘자치분권이 고려연방제를 추진하는 기초작업이냐’는 질문을 해서 자치분권에 대한 인식을 같이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
으로 알고 있는데, 여러분은 고려연방제를 생각하며 오셨냐고 질문하자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자치분권을 강화하자는 뜻은 바로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권한을 주자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영애_ 지금 말씀하신 내용을 그대로 믿으면 되겠지요?(웃음) 오랜 시간 학계에 몸담아 오셨는데요, 혹시 주변에서 선거에 나가라는 말씀을 듣지는 않으셨나요?
정순관_ 안 들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오랫동안 학계에 있었기 때문에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었죠. 지금도 무슨 이야기를 하면 ‘나는 정치에 관심 없다’고 합니다. 물론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사회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믿음이 있고, 기회가 되면 그동안 배운 것을 펼치고 있고 지금도 그런 자세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자치와 분권이라는 주제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겠다는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것이 곧 제도권 내의 정치인으로 진입하는 것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영애_ 자치분권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텐데요, 국회와 정부, 지자체와 함께 공유하면 좋을 내용과 함께 공직자와 지방의원 특히 6·13 지방선거를 앞둔 국민 여러분께 소중한 말씀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정순관_ ‘자치분권’이라는 국정 과제는 매우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직접 연관되어 상호 간 이해와 협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자치분권이 왜 필요한지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고요. 권한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민주주의를 천착시키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을 이해해주시고 배려와 포용의 미덕을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협력의 틀에서 대한민국이 한 단계 도약하는 기반을 갖출 것으로 생각합니다.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우선 자치분권위원회에 많은 관심을 두면 좋겠습니다. 우리 위원회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자치분권 측면에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이메일, 전화, 홈페이지 등 여러 채널을 통해 의견을 자유롭게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했을 때 힘을 받아 더욱 용기 내어 좋은 사회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이영애_ 여러분과 만나 의견과 생각을 공유하기를 기대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