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주 의회를 통과했던 디지털 공정 수리법안은 일부 수정 끝에 지난해 12월 29일 캐티 호철 주지사가 최종 서명함으로써 오는 7월 1일부터 시행된다.
이 법은 소비자가 자신이 쓰던 제품이 고장 났을 때 더욱 손쉽게 셀프 수리를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다. 법안은 뉴욕주에 위치한 원 제품제조업체(OEM)가 제품 수리에 필요한 부품, 제품 매뉴얼, 도구, 설계도, 계통도 등 정보를 제품 구매자와 독립된 수리업체에 제공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로써 수리 비용 절약과 전자제품 폐기물 감축 효과가 기대된다.
소비자보호단체는 전자 부품 조달이 용이해지고 가격도 내려갈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까지 수리업체는 소비자가 의뢰한 제품을 수리하려 해도 필요한 도구나 제품 정보가 없어 수리를 못 하는 경우가 많아 소비자는 제조업체에 수리를 의뢰하거나 제품을 새로 구입해야 했다. 새 법 시행으로 수리업체 간 경쟁이 심해지고 소비자는 기술적으로 직접 수리할 만하다고 생각해 자가 수리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새 법은 기본적으로 7월 1일 이후 생산한 디지털 전자제품에 적용된다.
소비자들은 오랫동안 제조업체의 개입 없이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수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해왔는데 뉴욕주의 디지털 공정 수리법은 소비자의 수리권을 처음으로 광범위하게 보장하는 획기적인 조치로 간주된다. 미국의 40개 이상 주에서 100여 개의 비슷한 법안이 상정됐으나 번번이 제조업체들의 로비로 좌초했다.
법안은 그러나 당초 법안 초안에 비해 소비자 수리권 보호 조항이 크게 후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6월 의회를 통과한 법안은 수리권 보장 범위를 둘러싼 논란으로 수정돼 지난 12월 주지사가 서명한 법안은 냉장고, 세탁기 같은 이른바 백색 가전제품, 트랙터 등 농기계는 빠져버렸다.
또한 디지털 공정 수리법은 소매점에서 산 전자제품만 적용돼 교육청에서 구입하는 크롬북(Chomebooks)이 소매점에서 산 제품과 달리 취급할지 논란이 있다. 또 소규모 업체들이 제조업체로부터 직접 구입한 랩톱은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법안 수정으로 수리권 보장 범위 원안보다 후퇴
수리협회의 한 관계자는 “법안의 일부 문구가 모호해 TV나 비디오게임기 같은 제품의 제조업체들이 법 적용 배제를 요구할 여지가 있어 제조업체들과 주정부가 몇 개월 내에 이를 명확히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조업체가 제품 수리에 필요한 비밀 코드를 자발적으로 제공할 의무는 없다. 또 제조업체가 잘못된 설치로 부상의 위험이 크다고 판단하면 특정 부품 인도를 거부할 수 있다. 이런 유보 조항들에 대해 호철 주지사는 보안 위험과 수리 중의 부상 위험을 완화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했으나 소비자 보호단체는 제조업체들이 이 조항들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남용할 소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 측이 주지사 서명 전에 주지사실에 유보 조항을 삽입하도록 압력을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소비자 보호단체 연합회 관계자는 법안 수정 후 제조업체가 판매해야 하는 부품에 스마트폰 회로보드가 빠졌고 수리업체에 까다로운 보증조항을 게시하도록 의무화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애플 같은 제조업체가 수리 후 부품에 일련번호를 정해 독립 수리업체들이 여분의 부품이나 심지어 똑같은 제품에서 뗀 순정부품으로 수리하지 못하게 막았다고 비판했다.
한편 소비자단체들의 요구에 따라 애플, 구글, 삼성 등 일부 대형 가전업체들이 자체 수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소비자와 독립 수리업체들에 부품과 제품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뉴욕주 이외 주에 사는 사람이 수리 부품을 얻으려 할 때 제조업체가 이에 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제조업체들은 물론 수리 부품과 제품 정보를 뉴욕 주민 이외 주민에게는 제공하려고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