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보다 중요한 도시의 조건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Austin)은 2020년대 들어 미국에서 빠르게 성장한 도시 중 하나다. 한때 대학도시이자 라이브 음악과 스타트업의 도시였던 오스틴은 이제 전기차와 반도체, 인공지능 산업이 모여드는 첨단 제조 거점으로 변하고 있다. 그 전환의 중심에는 테슬라 기가팩토리 텍사스와 삼성 오스틴 반도체가 있다.
오스틴의 변화는 한국 지방정부에도 익숙한 질문을 던진다. 기업은 왜 특정 도시를 선택하는가. 대규모 보조금과 세금 감면만 있으면 기업 유치가 가능한가. 오스틴이 보여주는 답은 조금 다르다. 기업을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빠른 행정, 안정적인 인력 공급, 대학과 기업이 연결되는 산업 생태계다.
테슬라가 바꾼 고용 지도
테슬라는 2020년 오스틴 인근 트래비스 카운티에 기가팩토리 텍사스 건설을 발표했다. 약 2,500에이커(약 1,011만㎡) 규모의 부지에 들어선 이 공장은 전기차와 배터리, 부품을 생산하는 대형 제조 거점이다. 공장 건물 면적만 1,000만 제곱피트(약 93만㎡)로 세계 최대급 단일 공장 건물 중 하나다. 공장이 들어서면서 전기차 산업을 중심으로 공급망과 고용 구조도 함께 이동했다.
고용 효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테슬라는 2023년 말 기준 오스틴 최대 민간 고용주로, 당시 기가팩토리 텍사스에서 2만 2,777명을 고용했다. 2024~2025년 감원으로 직접 고용 인력은 약 1만 6,500명 수준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오스틴 광역권의 핵심 민간 고용주다. 2022년 기준 트래비스 카운티에서 테슬라가 지원한 일자리는 직접 고용과 공급망을 포함해 1만 5,000개 이상이다. 평균 연봉은 약 7만 4,000달러(약 1억원), 오스틴 지역 총 경제활동 유발 규모는 약 21억 달러(약 2조 8,000억 원)에 달했다.
반도체 공장이 만든 지역 경제 효과
삼성 오스틴 반도체 역시 산업 지형을 바꾼 핵심 기업이다. 삼성은 1996년부터 오스틴에서 반도체 사업장을 운영해 왔고, 누적 180억 달러(약 24조 3,000억 원) 이상을 투자했다. 인근 테일러시에는 170억 달러(약 23조 원) 규모의 신규 반도체 팹을 건설하고 있다. 오스틴과 테일러를 잇는 삼성의 투자는 지역 경제를 제조업 중심의 성장 구조로 바꾸고 있다.
2023년 경제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 오스틴·테일러 두 캠퍼스의 지역 경제 파급 효과는 약 268억 달러(약 36조 2,000억 원)에 달했다. 두 캠퍼스가 지원한 일자리는 3만 8,144개, 연간 임금 총액은 17억 달러(약 2조 3,000억 원) 규모였다. 오스틴과 테일러의 지방세 징수 효과도 연간 2억 4,560만 달러(약 3,300억 원)였다. 반도체 공장 하나가 지역 고용, 세수, 협력업체, 교육기관까지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빠른 행정과 인력 양성의 결합
오스틴은 어떻게 이런 기업을 끌어들였을까. 텍사스주는 법인세와 개인소득세가 없는 기업 친화적 환경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세제 혜택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오스틴의 강점은 행정과 교육, 산업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데 있다. 공장 건설에 필요한 인허가 절차를 빠르게 처리하고, 지역 교육기관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 인력을 길러냈다.
특히 오스틴 커뮤니티 칼리지와 텍사스대학교 오스틴 캠퍼스는 지역 산업 생태계의 중요한 축이다. 커뮤니티 칼리지는 현장형 기술 인력을 공급하고, 대학은 연구개발과 고급 인재를 연결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부지와 세금 혜택만이 아니라, 공장을 가동할 사람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기업 유치는 돈이 아니라 시스템 경쟁이다
한국 지방정부도 반도체, AI, 배터리, 바이오 클러스터 유치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 유치 전략이 보조금, 부지 제공, 홍보성 투자협약에 머무르면 지속성이 떨어진다. 기업은 단기 혜택보다 장기 운영 조건을 본다. 필요한 인력을 구할 수 있는지, 인허가가 지연되지 않는지, 협력업체와 연구기관이 가까이에 있는지가 실제 입지 결정의 핵심 조건이다.
지방정부의 기업 유치 정책은 “얼마를 지원할 것인가”에서 “기업이 일할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로 이동해야 한다. 산단 입주기업과 지역 대학의 채용 매칭을 제도화하고, 대규모 투자 사업 패스트트랙 허가 시스템을 마련하며, 기업·대학·지방정부가 인력 양성 계획을 세워야 한다.
결국 기업을 붙잡는 힘은 돈만이 아니다. 공장과 사람, 협력업체와 세수가 이어지는 선순환은 행정의 속도와 인력 공급 체계 위에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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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방정부에 주는 시사점 반도체, AI, 배터리 클러스터를 유치하려 하는 한국 지방정부들에게 오스틴의 사례는 명확한 교훈을 준다. 보조금 경쟁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업이 원하는 인력을 빠르게 공급할 수 있는 지역 대학-기업 연계 생태계와 속도감 있는 인허가 행정이다. 산단 입주기업에 지역 대학과의 채용 매칭을 의무화하고, 패스트트랙 허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강력한 기업 유치 도구가 된다. |
[지방정부티비유=최원경 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