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에서는 AI 에이전트가 공무원의 업무를 어떻게 바꾸는지, 그리고 이를 개인의 업무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시선을 한 단계 더 넓혀야 한다. AI 에이전트는 개인의 업무 효율을 높이는 도구를 넘어, 국가 전체의 행정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행정은 ‘신청주의’를 기반으로 운영되어 왔다. 국민이 필요한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관련 정보를 확인하고, 자격을 증명하며, 신청서를 제출해야 했다. 공무원은 이를 검토하고 승인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 과정은 오랜 기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디지털화되었지만, 여전히 기본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AI 에이전트가 도입되면서 이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다. 핵심은 ‘국민이 신청하는 행정’에서 ‘국가가 먼저 제안하는 행정’으로의 전환이다. 즉, 국민이 자신의 자격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격을 판단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먼저 제안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출생, 취업, 실직, 소득 변화와 같은 중요한 삶의 이벤트가 발생하면, AI 에이전트는 이를 자동으로 인식하고 해당 개인이 받을 수 있는 서비스와 혜택을 분석한다. 그리고 “당신은 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신청하시겠습니까?” 라는 형태로 제안한다. 국민은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단순한 확인만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일부 국가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출생 신고가 이루어지면 별도의 신청 없이도 육아 관련 서비스가 자동으로 연결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덴마크의 경우, 대부분의 납세자가 별도의 세금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관련 데이터가 자동으로 수집되고 계산되어, 국민은 결과를 확인하는 수준으로 행정이 단순화된 것이다.
이 변화는 공공서비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복지 사각지대 문제를 생각해 보자. 현재는 제도를 알지 못하거나 신청 절차가 복잡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AI 에이전트가 도입되면 이러한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 국가가 먼저 대상자를 찾아내고 서비스를 제안하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효율성 개선을 넘어, 행정의 형평성과 접근성을 높이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재난 대응이나 고용 정책과 같은 분야에서도 AI 에이전트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다. 예를 들어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실직자가 발생하면, AI 에이전트는 해당 인력의 경력과 역량을 분석해 적합한 일자리를 추천하고,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을 연결하며, 동시에 지원 가능한 수당을 안내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이 자동으로 이루어진다면, 국민의 불안과 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처럼 행정 시스템이 변화할수록 공무원의 역할도 함께 변화한다. 단순한 신청서 처리와 서류 검토는 점차 AI가 담당하게 될 것이다. 대신 공무원은 정책 설계자이자 조정자로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AI가 제시한 결과를 검증하며,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응하는 능력이 핵심 역량으로 자리 잡게 된다.
또한 AI 에이전트가 올바르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신뢰’와 ‘책임’의 문제도 중요해진다. 데이터의 정확성, 알고리즘의 공정성, 결과에 대한 책임 소재 등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의 본질과 연결된 문제이다. 공무원은 이러한 기준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즉,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넘어, 기술이 올바르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역할로 확장되는 것이다.
결국 AI 에이전트가 만들어가는 정부는 단순히 더 빠르고 편리한 정부가 아니다. 그것은 국민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필요한 순간에 먼저 다가가는 ‘지능형 정부’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여전히 공무원이 있다. 다만 그 역할과 방식이 달라질 뿐이다.
지금 우리는 행정의 큰 전환점에 서 있다. 과거의 방식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더 나은 행정을 만들어 갈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AI 에이전트는 그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강력한 도구이자 동료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이다.

[지방정부티비유=이경상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