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은 전체 인구 중 고령인구가 36%에 달하는 초고령 사회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라는 이중의 파도를 맞닥뜨린 군은, 돌파구를 ‘배움’에서 찾고 있다.
글자를 배우던 문해교육에서 출발한 ‘행복교실’은 이제 디지털·문화·환경으로 영역을 넓혔고, 최근에는 마을로 직접 찾아가는 ‘디지털 에듀버스’를 운행하며 어르신들의 일상과 미래를 동시에 바꾸고 있다. 단순한 교육을 넘어 자존감 회복과 지역 공동체의 활력을 되살리는 새로운 정책 실험이 시작된 것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길을 잃은 고령층
양양군의 주민등록 인구는 2025년 6월 기준 27,322명으로, 2024년 말보다 줄어들었다. 출생아는 상반기 41명에 불과한 반면, 사망자는 185명에 달해 자연 감소가 뚜렷하다. 특히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9,907명으로 강원 설악권에서도 가장 높으며 현남면의 경우 두 사람 중 한 명이 노인일 정도다.
이 같은 상황은 단순한 인구 통계에 그치지 않는다. 병원 예약부터 관공서 업무, 금융·교통 서비스까지 디지털 기술이 일상화된 오늘날, 고령층은 ‘배움의 기회’를 놓치면 곧바로 사회적 배제의 위험에 직면한다. 양양군이 평생학습 정책을 ‘생존과 존엄’을 위한 필수 전략으로 삼은 배경이다.

행복교실, 글자를 넘어 디지털로
양양군의 문해교육은 경로당을 거점으로 한 ‘행복교실’에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글자를 배우는 과정이 중심이었지만, 학습자들의 요구와 사회 변화에 따라 디지털·문화·환경 교육으로 확장되었다.
지난 여름 진행된 ‘행복교실 문화체험 소풍’에는 220여 명의 어르신이 참여했다. 작은 영화관에서 키오스크 사용법을 직접 배우고, 이후에는 문해교육 관련 영화를 관람했다.
“이제는 혼자서도 주문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한 학습자의 소감처럼, 배움은 곧 일상에서의 자립으로 이어졌다. 요트 체험, 선사유적 탐방, 해초비누 만들기 등 다채로운 활동은 단순한 나들이가 아니라 ‘함께 배우고 함께 성장하는 소풍’이었다.

문해교육사, 디지털 안내자로 거듭나다
교육의 성패는 결국 사람에게 달려 있다. 양양군은 문해교육사와 자원봉사자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 역량 강화 과정을 3회에 걸쳐 운영했다.
단순히 키오스크 작동법을 배우는 것을 넘어, 어르신 눈높이에 맞춘 설명법, 오류 발생 시 대처법, 현장 대응 전략까지 익혔다. “글자만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생활 속 기술까지 안내하는 동반자”로 거듭난 것이다.

군의 문해교육은 글자와 디지털을 넘어 환경까지 아우른다. 지난 6~7월에는 ‘찾아가는 생활문해교육’을 통해 기후변화, 탄소중립, 올바른 분리배출, 자원순환 체험 등을 진행했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 생활 속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현장 체험을 결합했다.
마을로 찾아온 교실, ‘디지털 에듀버스’로 진화
이러한 흐름은 9월부터 본격화되었다. 양양군은 강원 디지털 배움터와 연계해 ‘찾아가는 디지털 에듀버스’를 운행한다. 매주 수요일, 총 20개 마을을 순회하며 경로당을 직접 방문한다. 학습자들은 스마트폰 기본 조작부터 병원 예약, 관공서 민원, 교통·금융 서비스 등 생활밀착형 기술을 체험형으로 배우게 된다.
버스 한 대가 마을로 들어오면, 그 자체가 작은 학교가 된다. 어르신들은 낯선 기계를 만져보고, 강사의 안내에 따라 직접 화면을 터치하며 배워나간다. “예전에는 병원 예약을 하려고 새벽부터 줄을 섰는데, 이제는 휴대폰으로도 할 수 있다니 놀랍다”는 학습자의 말은 디지털 배움이 가져온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초고령 사회 대응의 새로운 모델
김진하 양양군수는 “고령화가 심각한 현실에서 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며 “에듀버스는 어르신들이 당당하게 디지털 사회에 참여하고, 스스로 생활을 꾸려갈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발판”이라고 강조했다.
양양군의 에듀버스는 단순한 교육 프로그램을 넘어, 고령층의 사회적 자립과 공동체 회복을 동시에 추구한다. 이는 초고령화 시대 지역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배움의 기회를 설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한 대의 버스가 실어 나르는 것은 단순한 교육 콘텐츠가 아니라, 초고령 사회 속에서 지속 가능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희망의 플랫폼이다.
[지방정부티비유=한승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