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미래다, 미친 공무원을 응원하자

  • 등록 2021.05.06 13: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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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속담에 “아이 하나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사람 모두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또 “마을 하나가 사라지면 박물관 하나가 사라진다”는 말도 있다. 이는 마을이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인 공동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도시와 농촌이 모두 짧은 시간 동안 압축 성장을 통해 큰 변화를 겪었다. 도시는 여러 가지 생활 편의 인프라가 들어서고 외지 인구가 많이 유입됐지만 마을공동체는 오래전에 무너졌다. 농촌지역은 젊은 인구의 유출로 고령화·공동화가 급격하게 이뤄지면서 전통적인 공동체 문화가 사라져가고 있다. 도심은 도심대로, 농촌은 농촌대로 체계적인 진단과 구체적인 처방을 바탕으로 한 차별화된 마을공동체 살리기가 절실한 이유다. 

 

주민 스스로 마을의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주민들이 생각을 나누고 함께 결정한 일을 주체적으로 이뤄가는 마을 만들기 역시 시급하다. 그러나 우리 농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죽은 보조금’이 농촌을 병들게 하고 있다. 마을 만들기 사업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전혀 없는 마을에 난데없이 수 십억 원 규모의 개발사업 자금이 지원되는 경우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또 지방자치 선거를 비롯한 각종 조합장 선거가 이권처럼 작동하고, 그 잇속을 위해 토건 위주의 개발이 난무하는 경우도 많다. 


갈등과 반목이 더해지고, 주민들의 행정 의존도는 높아지는데 반대로 자치의식은 낮아지고 있다. 시골마을에는 이제 ‘사람’ 이 없다. 가장 젊은 마을 이장이 60대고, 퇴임을 앞둔 공무원이 면장으로 오기 일쑤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청년의 희망찬 얼굴도 사라진 지 오래됐다. 진정한 어른이 없고 ‘마을 정치’만 판치는 게 우리 농촌마을의 현실이다.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용포리 평오마을 입구에는 ‘할배·할매 나무’로 불리는 느티나무 한 쌍이 서 있다. 조상 대대로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해오던 300년 묵은 나무 두 그루가 2009년 여름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땅 주인이 마을 사람들 몰래 나무를 수집상에게 팔아버린 것이다. 통틀어 15가구밖에 안 되는 마을 사람들 은 쌈짓돈을 털고 타지에 나간 자식들에게 손을 벌려가며 집집이 200만 원씩 모아 끝내 나무를 지켜냈다. 이 사례는 진정 한 농촌 공동체의 본보기로 손꼽힌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삼촌(三村)마을에 주목하자고 말해왔다. 삼촌마을이란 생태 환경과 마을의 인문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 산촌·강촌·어촌을 뜻한다. 그중 에서도 백두대간의 산촌마을과 낙동강의 강촌마을, 동해안의 어촌마을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오랫동안 전해오는 마을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경상북도만 해도 정감록에 나오는 백두대간의 십승지 마을 부터 금강소나무, 산채, 이몽룡 생가, 낙동강, 종가문화, 울릉도·독도 등 자연· 인문 보물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러한 자원들에 예술성을 보태어 창의적이고도 차별화된 고유의 아름다운 마을공동체를 지속시킬 수 있느냐다. 지금까지의 중앙집권적, 관 주도적, 토목 지향적 마을 만들기 전략은 ‘약발’이 떨어진 지 오래다. 제일 중요한 것은 주민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참여의식이다. 삼촌마을의 경관과 인문자 원을 제일 잘 알고 있는 마을주민과 지역 전문가가 비전을 제시하는 ‘마을 기획가 (Planner)’가 돼야 한다. 이와 함께 지역 안의 관점과 함께 지역 밖의 시선을 동시에 갖고 있는 열정적인 외부전문가가 필 요하다. 지역을 사랑하는 예술가와 마을 활동가 등 전문가 그룹은 ‘예술 지향형 디자이너(Designer)’가 돼야 하고, 지방 공무원과 지역정치인은 ‘기반 지원형 정 원사(Gardner)’가 되어야 한다.

 

마을공동체의 발전은 경관자원(Green), 인문자원(Human), 예술감각(Artistic) 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가능하다. 청년세대가 농촌에 들어와 농촌에 활력을 높이는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 세련되고 감각적인 문화 정책 전략을 앞세워 농촌이 도시와는 다른 삶의 가치로 차별화 될 때 경쟁력을 가질 수 있고,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4도3촌(4都3村)’ 라이프 스타일에 부응할 수 있다. 마을문화를 예술적으로 디자인하고 산업 화하려면 문체부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또 주민과 예술가가 앞장 서고 지방정부, 기업, NGO 등의 거버넌스를 꾸려 창의적인 마을을 만들기 위한 휴먼웨어적 접근방식으로 마을 만들기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자기 고장의 인문자원 을 찾아내고 지역적 다양성을 체계적으로 연구·공유하기 위해 지역학과 마을학을 배우고, 마을아카이브를 쌓고, 마을 대학을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 외국사례 를 벤치마킹하는 것도 필요하다. 일본의 공민관(公民館)제도나 일본의 마을 만들 기인 ‘마치즈쿠리’, 도시민들에게 날것 그 대로의 농촌을 체험하게끔 하는 프랑스의 농촌 체험형 민박인 ‘지트’, 자연 친화적 디자인을 접목한 호텔을 짓는 스웨덴도 눈여겨보자. 우리나라에서 지역공동체 활성화사업을 가장 먼저 시행한 전북 진안군과 완주군도 좋은 본보기다. 


그런데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 지 못한다. 지방행정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필자가 지방공무원으로 오랫동안 일 하며 일선에서 만났던 미친美親(?) 공무원들이 그렇다. ‘마을 만들기’는 마을에 희망을 가진 미친 사람들의 ‘희망 만들기’ 다. 마을의 공동체 의식과 한국적 정서가 살아있고, 열정에 찬 공무원이 있는 한 우리네 마을에는 아직 희망이 있다. 

 

생각해보면 도시에 살건 농촌에 살건 삼 촌 아닌 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면에서 우리는 삼촌마을에 어떤 식으로든 빚을 지며 살고 있다. 삼촌 마을의 정원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이 나올수록, 그리고 이들을 응원하는 박수 소리가 커질 때 우리 마을의 미래는 밝게 변할 것이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한 구절을 인용하고 싶다.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 고/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고.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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