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시대는 저물고 있건만

  • 등록 2021.05.12 11: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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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변화와 기술, 미학의 변화는 새 도시/건축 패러다임을 요구한다.
비대면사회, 도시집중과 도시해체가 동시에 이뤄진다.
상상력과 통찰력을 갖춘 시장을 보고 싶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 생태탕으로 시작해 생태탕으로 끝난 것이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다. 네거티브 캠페인 덕에 각 후보의 정책은 전혀 이슈가 되지 않았다. 그 덕에 실제로 이행됐으면 아찔할 뻔했던 공약이 주목받지 않았고, 선거 후 슬그머니 그 약속을 물리고 있는데도 별다른 반발이나 비판이 없으니 말이다.

 

예컨대 취임 100일 내에 서울 주거지역 용적률을 상향하고 7층 제한을 풀겠다는 오세훈 시장의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될 듯하다. 한강 변 35층 규제도 없애겠다는데 이 또한 1년 임기 시장이 언급할 내용이 아니다. 


한강 변의 높이 제한은 서울시의 최상위 법정계획인 ‘서울플랜(2030 서울도시기본계획)’에 수록된 사항으로 시장 방침으로 쉽게 변경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현실성 없이 내질렀던 주택 정책이 들썩이는 최근 부동산 상황을 빌미로 없던 것이 되거나 미뤄지게 됐으니 이래저래 생태탕은 큰일을 한 셈이다.

 

 

상대편 박영선 후보 공약도 마찬가지다. 실현되지 않을 것이기에 자못 다행스러운 공약이 한둘이 아니다. 대표 공약인 ‘21분 도시’만 해도 파리시장 이달고의 ‘15분 도시’의 카피인 것은 둘째 치고 서울을 21개 권역으로 재편하겠다는 내용인지 21분 내에 주요 생활 거점에 도달하도록 하겠다는 것인지 도대체가 요령부득이다. 이미 서울은 5개 권역 생활권과 116개의 지역 생활권으로 구성된 생활권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해체·재분배하겠다는 얘기인지, 왜 그래야 하는지도 설득력이 없다. 

 

‘수직정원도시’라는 SF 그림도 황당하기는 매한가지, 뉴욕 허드슨 야드의 베슬(Vessel)을 베낀 디자인은 논외로 치자. 멀쩡한 도시 내 녹지 위에 왜 야릇한 구조물을 세워야 하는지 햇볕과 비를 받지 못하는 그 안의 식물이 자랄 것인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아마추어 건축가의 습작을 공약으로 채택하고 있었다. 

 

 

이번 서울 시장 선거에서 후보들의 공약을 비교적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박영선 후보의 경우 관훈토론에 패널로 참여하게 된 기자가 조언을 부탁해 살펴보게 됐고, 당초 당선 가능성이 희박(?)했던 오 후보의 경우 공약조차 변변치 않았던 상황에서 지인이 공약 검토를 의뢰하여 보았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됐다. 첫째, 단체장 후보들과 그의 정무 보좌직들은 도시 행정의 일관성에 대해 너무도 쉽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21분 도시’는 서울의 생활권 계획에 무지하거나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에서 나온 공약이다. ‘35층 철폐’ 역시 ‘서울도시기본계획’의 내용을 몰랐거나 초월할 수 있다고 보아 나온 공약이다. 

 

둘째, 이들은 당선을 위해서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방안 제시보다 쉽게 전달되는 즉물적인 구호를 더 선호한다는 점이다. ‘스피드 주택 공급’ 선언이나 ‘수직정원도시’ 같은 것이 그 예다.

 

셋째, 그 결과 시정의 예측 가능성은 더 불투명해지고 시의 공간 환경과 시민들의 삶은 끊임없는 실험 대상이 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오 시장 당선으로 재개발·재건축 단지에는 벌써 투기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고, 박원순 시장의 역점 사업을 맡고 있던 공무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법 체계는 정치에 의해 행정의 일관성이 영향을 받지 않도록 공무원의 안정적 지위를 보장하고 각종 법정·비법정 계획을 수립하여 사업을 추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상론일 뿐, 실제 일선 행정 부서에서 여러 계획은 캐비닛 속에 잠겨 있고 ‘시장공약집’과 ‘방침’에 의해 대부분의 시정이 운영된다.

 

 

그 결과 장기적인 비전과 관점에서 운영돼야 할 시정은 그때마다의 정치 논리에 의해 널뛰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의 몫이 된다. 서울시는 이미 올해 초 30만 호 공급 계획을 세세히 밝힌 바 있다. 오세훈 시장의 36만호 공약이 굳이 다르다면 공급의 속도일 터인데, 이 또한 말처럼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요컨대 동일한 내용을 레토릭만 달리해 새 정책인 것처럼 말하니 정치공학에 바탕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는다.

 

제발 시장들께서는 최상위 계획인 서울도시기본계획부터 찬찬히 공부하시라. 모쪼록 다음 시장 선거에서는 생태탕 대신 서울의 비전을 놓고 피 튀기게 싸우는 후보들을 보고 싶다. 

함인선 교수 nlnc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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