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과도한 애국심’을 표현하는 말로 ‘국뽕’이라는 단어가 있다. ‘국뽕’은 마치 ‘민중의 아편’처럼 대중을 환각제에 취하게 만든다. 경제적인, 현실적인 여러 문제는 환상적(가상적) 차원에서 이미지와 표상을 통해서 (허구적으로) 해결되어 버린다. ‘쇼비니즘(chauvinism)’이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 광신적인 애국주의나 국수적인 이기주의”를 말하는데, 아래 글에서 필자는 한국의 문화현상에 대한 해외 반응을 선택적으로 수용하여 이를 국수주의와 애국심 고취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언론과 대중문화의 행태를 지적하고 있다.
주영섭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재학.
국뽕. 국가에 대한 자부심에 고취되어 검증 없이 맹목적으로 국가를 찬양하는 신조어로 최근 많은 영상매체에서 활용되고 있는 주제이다. 작게는 한국 문화에 대한 감상이나 반응에 국한되지만 크게는 쇼비니즘의 영역으로 볼 수 있는 위험한 요소이다.
국뽕이 대한민국 사회에 침투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보상심리에 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은 어느 국가와 비교해도 부정적인 요소가 가득하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과 군사정권, 1997년 외환위기를 비롯해 대한민국이라는 가치를 해치는 요소만이 산재했던 그 역사를 뚫고 21세기에 도착한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누군가가 자신들에게 해주는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고팠을 것이다. 바로 그 틈새를 국뽕이 침투한 것이다.
이전까지 주로 활용된 국뽕 콘텐츠로는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동시에 상업성을 위해 사실왜곡과 과장, 은폐 혹은 교차검증을 결여한 영상물들이 있었고 어느 정도 약발이 다하자 새로운 마약이 등장했다. 바로 유튜브다. 국뽕으로 장사하는 이들은 해외의 언론기사를 왜곡해 한국을 치켜세움으로써 한국인들의 관심을 끌어 조회수를 늘려가는 한편, 외국인들의 반응, 외국 연예인들의 한국음식후기 같은 문화찬양 요소는 하나의 장르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단순히 해외에서의 반응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번역자의 주관, 혹은 통역가의 단어 선택으로 인해 그 의미가 왜곡되고 오역되는 상황은 과거에도 존재했다. 이러한 오역과 함께 해외에서의 반응, 해외의 현황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 제 3자의 관여로 인해 왜곡된 자료를 사실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성마저 존재한다. 그러한 위험성을 최소한으로나마 필터링하려는 수고 없이 대중에게 자극적이고 자기보신적인 요소를 노출하는 것이 작금의 국뽕 콘텐츠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구미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무시한 채 벌이는 시위와 사재기, 인종갈등으로 혼란이 지속되자 대한민국의 국뽕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단순히 방역 체계와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하는 시민들을 소개하던 매체들은 이제 코로나19로 위기 국면에 처한 국가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대한민국의 우월성을 강조하던 것이 타국을 폄하하는 국수주의 성향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K방역의 성과와는 별개로 한국의 우월성을 과시하면서 자국에 대한 과대평가와 다른 나라에 대한 폄하가 이루어지자 그 영상 매체의 객관성과 신뢰도는 하락할지언정 뽕처럼 자극적인 요소를 이용해 국민들의 공허한 자부심을 지속적으로 채워주고 있다. 이러한 비교 중 하나는 사태가 심각한 국가와 대한민국을 비교하는 형식이다. 미국, 프랑스 같이 개인이 중시되는 나라, 혹은 의료체계가 완전히 자리잡지 못한 개발도상국이 대표적인 희생양이다. 역사적으로나 정치적·문화적 차이가 존재함으로 인해 국가들은 서로 다른 현실을 가지고 있음을 모두 인지하고 있지만 국뽕은 그러한 사실을 애써 무시하며 대한민국의 가치를 기반으로 한 평가를 타국에도 적용시키고 있는 것이다.
국뽕은 대한민국과 다른 나라가 처한 상이한 맥락을 무시한 채 대한민국의 기준에서만 평가한다. 서구의 경우 사생활을 중시하기에 대한민국같이 개개인의 방문 지역과 세부요소를 노출하지 않으려 하고 이러한 요인이 감염을 늘리는데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틀림이 아닌 가치의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현상을 비꼬며 비하하는 용도로 작용해선 안 된다. 서구가 대한민국의 ‘국가위기 시에 개인은 어느 정도 희생해야 한다’라는 사회적 동의를 ‘전체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한민국’, ‘군사정권에 길들여진 민주주의 후진국’이라 폄하하면 우리나라 애국자들은 당장 그 나라와의 단교를 외칠 것이 뻔한데 어찌 누워서 침 뱉는 행위를 하는지 알 수 없다.
국뽕이 심각하리만큼 번지고 있는 것은 우리 이웃국가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서쪽의 이웃들은 쇼비니즘으로 왜곡되어버린 중화사상과 주선율 영화를 통해 중국의 주류 이데올로기를 대중적인 형태로 전파하고 있다. 또한 중국의 막대한 인구수가 영화 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자랑하기에 이러한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서구는 자연스럽게 중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중국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당연히 중국은 이를 체제선전으로 악용하고 있으며 이는 곧 서구에서는 Band in China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쪽의 이웃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쪽은 대한민국의 언론과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바로 미디어 주도의 국뽕 프로그램 기획이 그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을 섭외하고 연출 지시를 하는 등으로 자국의 신기하고 기이한 문화를 자랑하는 형태로 국뽕을 주입하고 있으며 그러한 문화 혹은 새로운 것에 대해 호들갑을 떨도록 강제하여 이질감이 들게 만드는 것마저 동일하다. 무엇보다도 인터뷰의 대상은 백인계 외국인이 대다수이며 자국에 대한 비판, 비백인계 외국인이 부재한 것이 1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이 탈아입구 사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만천하에 떠벌리고 있다.
모든 것에는 지켜야 하는 선이 존재한다. 무언가를 전달한다면 그 의도와 사실을 정확하게 하며 비판과 칭찬을 왜곡하지 말고 그대로를 전달해야 한다. 본인의 의견이나 평가가 들어갈 수 있겠지만 본 내용을 왜곡하는 수준으로 넣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타국을 차별하고 무시하며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자세로 접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뽕에 대한 무조건적인 옹호와 이해는 국민과 사회의 정치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행태가 된다면 국민과 시민들은 하나의 시선만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며 21세기의 동반자 대한민국이 아닌 아집과 독선으로 가득 찬 대한민국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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