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동한
강원연구원장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전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 국장
갈등(葛藤)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일이나 사정이 서로 복잡하게 뒤얽혀 화합하지 못함을 일컫는데 일반적으로는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하는 상태를 설명할 때 쓰인다. 그중에서도 행정 기관이 공공정책을 수립하거나 집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해관계의 충돌은 별도로 공공갈등이라고 정의한다. 일반적으로 공공갈등은 국가 내부 갈등, 국가-사회 간 갈등, 사회영역 간 갈등으로 구분된다(공공갈등과 정책조정 리더십 2011, 정용덕).
갈등의 대상별로는 이익 갈등, 권력 갈등, 이념 갈등, 정체성 갈등 등으로 나눠지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가 다루었던 수많은 사례를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갈등을 한두 개 유형으로 규정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단언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제주민군복합미항(제주해군기지) 건설 사례를 들어보자. 물론 이 사업의 방대한 내용과 험난했던 긴 과정을 이 글에서 일부라도 담기는 결코 쉽지 않다. 다만 참여했던 직간접의 주체들을 나열해보면 이 사안의 복잡성, 다층적 구조를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국방부(해군), 환경부, 문화재청, 국회, 제주도, 제주도의회, 법원, 강정마을 주민, 정의평화구현사제단 등 종교 관련 단체, 여러 시민·환경단체들. 그리고 전 과정을 모니터링하면서 쉴 새 없이 발생하는 온갖 이슈를 참으로 무던하게 끝까지 관리·조정한 국무총리실까지. 다시 말하자면 행위자별로나 대상별로나 이러한 거대 갈등의 성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편리해서인지 아니면 불행하게도 날로 복잡해지는 갈등구조를 달리 표현할 재간이 없어서인지 우리는 대부분의 공공갈등을 ‘복합갈등’이라는 신조어로 퉁치고 있다.
개발연대 이후 공공갈등의 맥락을 간략히 짚어보면 권위주의 정부하에서 압축성장의 드라이브가 지속 되었고 갈등은 억압되고 잠재화되어 있었다. 그러다 1980년대 이후 민주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비로소 환경, 지역, 인권 등의 가치가 충돌하기 시작하였다. 다양한 시민단체와 NGO가 활발하게 등장한 것도 물론 이즈음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그야말로 갈등이 나라 구석구석 만연하고 일상화되어 있는 형국이다. 시대의 민주화와 다원화라는 찬란한 업적 등 뒤로 갈등영역은 확대되고 또 실타래를 풀 꼬투리조차 찾기 어렵게 아주 복잡해지고 있는 것이다.
갈등은 사회경제적 비용을 증폭시킨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추정에 따르면 갈등으로 인한 국가적 손실이 GDP의 21% 수준에 이른다 한다. 이를 액면 그대로 계산해보면 2018년 기준으로는 무려 400조 원이다. 우리나라 사회적 갈등 수준이 OECD 평균 수준으로만 개선된다면 0.2%p의 성장률 상승 효과가 있다는 분석도 나와 있다. 참고로 우리의 사회갈등지수는 OECD 국가 중 멕시코, 터키에 이어 세 번째라고 한다. 요즘 2%대의 GDP 성장률 유지를 위해 정부가 가능한 모든 수단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볼 때 이는 실로 엄청난 숫자라 아니할 수 없다. 이에 더하여 갈등은 건강한 공동체 조성을 저해하고 국가경쟁력에도 심각한 위해를 끼친다. 나라 구석구석에서 볼 수 있는 살벌한 구호의 플래카드와 관청 앞 삭발한 군중의 외침은 이제는 너무도 익숙하여 오히려 무관심과 체념을 유발할 정도이다.
물론 갈등에 순기능도 있다는 사실을 가벼이 보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과거 수없이 다루었던 부처 간 갈등조정은 상당 부분 정책의 균형과 합리성 제고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기도 했다. 정부 안이 아무런 갈등 소지 없이 진공 상태로 있다면 이는 어쩌면 더 위험한 상태일 수도 있다. 문제는 지금 정도의 갈등 부하를 앞으로 우리 사회가 결코 감당할 수는 없다는 데 있다. 누적된 갈등의 해소나 완화를 위한 사회적 합의 없이 지금처럼 지고 갈 수는 없다. 우리 사회라는 그릇이 쌓인 모순과 비효율을 더 이상 다 보듬고 갈 여유가 없다는 현실을 모두가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저성장시대 도래, 고령화 등 허다한 구조적 난제 그리고 정글같이 험난한 국제정세 속에 사회 모든 분야가 미래 생존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우여곡절이 있으나 남북평화시대에 대한 기대가 엄연하며 이 과정에서의 어려움에 대한 각오도 되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전환기를 현명하게 넘어가려면 우리끼리 만들고 있는 지독한 갈등구조의 무게를 먼저 줄이는 것은 당연하며 누구만의 몫도 아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시민, 정부, 정치, 자치단체, 사회단체 등 개별 주체들이 모두 동의하는 상생과 화합의 국민적 분위기가 반드시 만들어져야 한다. 국가 운영시스템도 아주 스마트하게 업그레이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