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동한
강원연구원장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전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 국장
강원도 접경지역에 때 아닌 전운이 감돌고 있다. 국토의 상단에서 분단을 등에 진 채 받아온 70년의 규제와 희생의 상흔이 여전한데 또 다른 불안 앞에 망연자실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시대 도래를 기대하면서 가져보았던 설렘도 이제는 두려움으로 바뀌고 있다. 국방개혁 2.0. 병력자원 부족에 대비하고 군의 정예화와 전력운영 혁신을 도모하는 계획이다.
이에 따르면 강원도 전방지역의 2만 명 넘는 병력이 감축된다고 한다. 이는 군에 기댄 소비 위주 상권에 어렵게 의존하여 살아온 접경지역에는 폭탄 같은 충격이다. 가뜩이나 소멸위험 지역이란 딱지를 달고 살고 있는데 이것이 실제 상황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양구의 경우 사단 하나가 비면 인구가 2만 명 이하로 떨어지게 된다고 한다. 주민들은 이런 일들이 필요한 정보 제공이나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분개하고 있다.
철원은 군과의 상생 협력 사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일종의 저항운동이다. 힘들게 쌓아 올린 군과의 오랜 신뢰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궐기대회가 하루 걸러 열리고 있다.
접경지역 아래쪽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강원도에는 5,200기의 송전탑이 있다. 그중에서도 초고압 송전탑(765KV)은 334기. 전국 1,040기의 32%를 점하고 있다. 이러한 여건인데 이미 송전탑이 이어진 횡성 등에 추가적인 선로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동해안 지역의 대규모 발전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길이 220㎞, 철탑 440기의 선로가 5개 시·군(횡성·영월·정선·평창·홍천)에 놓여진다는 것이다. 이 역시 입지선정위원회 설치와 같은 협의 절차가 아직 없었다는 입장이다.
주민의 불안은 당연히 극도로 고조되어 있으며 일각에서는 밀양 사태를 거론하기조차 한다. 요즘 이곳에서는 송전탑 건설을 백지화하라는 외침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도와 지역 정치권도 반발하고 있다. 도의회는 ‘송전선로대책특별위’를 만들어 투명한 사업 추진을 정부에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강원도 내 갈등 사안은 이것이 다가 아니다. 설악산 오색삭도 설치, 동계올림픽을 치른 정선 가리왕산 알파인스키장 생태 복원, 동해안 신규 화력발전소 신설, 올봄 동해안 산불 피해 보상 건 등 대형 이슈가 이미 산적해 있다. 무엇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환경, 물, 교육, 물류 등 일상의 분야에서의 구조화된 갈등들은 일일이 세기조차 힘들다.
전국적으로 살펴보면 숨이 더 막힐 지경이다. 필자가 과거 직접 다룬 경험이 있는 이슈들만 따로 정리해보아도 그렇다. 지방공항의 경우 기존 갈등 사안들이 어느새 다시 무대에 올라와 있다. 동남권신공항 이슈는 지난 두 정부가 공약에도 불구하고 김해공항 능력 확충으로 방향을 선회했었는데 올들어 이를 다시 검증하겠다는 틀이 만들어졌다. 제주2공항도 입지 등 주민 반대로 기본계획 고시가 계속 미루어지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 신규 취수원 확보 등 고질적인 영남권 물 문제도 10년 전과 비교하여 진전된 성과가 거의 안 보인다. 과거 정부에서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방안 마련은 기존 계획의 재검토를 위한 공론화가 다시 이루어진다고 한다. 주요 군 공항의 원활한 이전을 위해 특별법까지 만들었는데 수원, 대구, 광주공항 공히 아직 부지 선정을 둘러싼 갈등 단계이다. 노후화되어 위험한 안양교도소는 대안 마련에 힘쓴 지 10년이 넘도록 똑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만연한 갈등은 지난 20여 년 특별히 어느 한 정부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지역별·주제별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양한 사업을 두고 다양한 형태의 갈등이 일상화·구조화되어 있는 것이다. 통상의 인프라 확충 외에 새로운 제도 도입이나 개선에 따른 갈등도 다반사다. 공유경제 활성화를 둘러싼 최근의 극심한 논란이 바로 그 예이다. 지자체의 사업 역시 마찬가지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부지기수이다. 혹자는 이런 우리를 ‘갈등공화국’이라 부르기도 한다.
문제는 대한민국이 이러한 엄청난 갈등 부하를 안고 과거와 같은 성취를 앞으로도 만들 수 있는가이다. 즉 성장잠재력 하락과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는 여건에서 지금과 같은 양의 갈등을 계속 감내할 수 있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나라 구석구석 거친 외침을 담은 현수막이 걸리지 않은 곳이 드물다. 갈등에 따른 손실이 사회적 비용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눈을 돌려왔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사회갈 등지수는 OECD 국가 중 위에서 세 번째에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