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0년 전 기초의원으로 생활정치를 시작한 김용석 서울특별시의회 의원은 《월간 지방자치》를 탐독하며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곤 한다. 본지는 중후한 관록이 묻어나는 생활정치의 달인 김용석 의원에게 70%가 넘는 초선 지방의원들의 길잡이가 되어 주길 요청했다. 초보 지방의원이라면 지금, 여기 김용석 의원의 원고에 주목하기 바란다.
조례 발의
지방의원 중에 법학이나 행정학을 공부한 분도 있지만 입법 활동에 관해 전문 지식이나 경험이 많지 않은 분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제정하는 입법 기관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조례 발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조례 제정 근거
먼저 조례란 지방자치단체의 의회에서 제정하는 자치법규입니다. 법령의 범위 안에서 그 권한에 속하는 사무에 관하여 지방의회에서 정하는 하나의 규범이죠.
헌법 제117조 1항(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과 지방자치법 제22조(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그 사무에 관하여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에 근거합니다.
특히 ‘법령의 범위 안에서’라고 명시함으로써 조례의 제정 범위를 명문화했고 ‘시·군 및 자치구의 조례는 시·도의 조례나 규칙에 위반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방자치법 제24조(시·군 및 자치구의 조례나 규칙은 시·도의 조례나 규칙을 위반하여서는 아니된다)에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법 22조 단서(다만 주민의 권리 제한 또는 의무 부과에 관한 사항이나 벌칙을 정할 때에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에 따르면 주민의 권리제한 또는 의무부과에 관한 사항이나 벌칙을 정할 때에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고도 되어 있습니다.
이로 인해 ‘붕어빵조례’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례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제정할 수 있기 때문에 지자체 고유의 특성을 살린 창의적인 조례를 제정하기란 근본적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김용석의 TIP 법률만 1,500개가 넘고 시행령과 시행규칙까지 포함하면 5,000개가 넘습니다. 서울시만 해도 조례와 규칙을 합쳐 900개 이상입니다. 900개가 넘는 조례와 규칙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치구 의회는 조례를 제정해야 합니다.
지방자치입법권이 대폭 확대하려면 아래와 같은 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가령 ‘법률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를 뛰어넘는, 이번 개헌안 제1조 3항에 ‘대한민국은 자치분권 국가임을 지향한다’라고 했는데 이보다 ‘자치분권 국가이다’로 선언한다면 그에 걸맞은 입법권을 줘야 하니 국회는 국가 법률에 대해서만 제정하고, 지방자치와 관련해서는 적어도 광역의회에 자치법률 제정권을 줘야 하는 겁니다. 기초지자체는 해당 지역 실정에 맞는 조례를 제정할 수 있도록 하고요.
국가사무와 지방사무를 분명히 나누고 광역의회에 지방자치관련 법률 제정 권한을 준다면 온전히 해결될 수 있겠지요. 장차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2. 평균 자치법규 보유수
2017년 말 기준 자치법규는 모두 99만 795건으로 이 가운데 조례가 7만 5,708건, 규칙 2만 4,087건입니다. 이는 시·도 평균 654건, 시·군·구 평균 392건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광역지자체가 기초지자체보다 1.7배가량의 자치법규를 보유하고 있는 셈입니다.
김용석의 TIP 간혹 국회의원들의 법률 발의 건수와 지방의원들의 조례 발의 건수를 단순 비교하면서 지방의원의 조례 발의 건수가 적다는 기사를 접하곤 합니다. 이는 지방자치나 지방의회를 너무 모른 채 기사화한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조례 발의하는 데 헌법과 지방자치법은 물론 기초지자체의 경우 광역지자체의 조례와 규칙을 위배해서는 안 된다는 제약이 따릅니다. 그다음으로는 국회는 국회사무처를 비롯해 국회입법조사처와 예산정책처 등 여러 기구가 있어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전문 인력이 있는 반면, 지방의회에는 그런 인력이 없어 의원 스스로 해야 합니다. 이런 배경이나 이유는 못 보고 단순 비교해 결과만 이야기하니 왜곡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3. 조례안 발의
조례안에 대한 의원발의에는 대표발의, 1인발의가 있고 의원 공동으로 하는 공동발의가 있습니다. 공동발의의 경우 발의의원과 찬성의원을 구분해야 합니다.
지방자치법 제66조(① 지방의회에서 의결할 의안은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나 재적의원 5분의 1 이상 또는 의원 10명 이상의 연서로 발의한다. ② 위원회는 그 직무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의안을 제출할 수 있다. ③ 제1항 및 제2항의 의안은 그 안을 갖추어 의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④ 제1항에 따라 의원이 조례안을 발의하는 때에는 발의의원과 찬성의원을 구분하되 해당 조례안의 제명의 부제로 발의의원의 성명을 기재하여야 한다. 다만, 발의의원이 2명 이상인 경우에는 대표 발의의원 1명을 명시하여야 한다)에 그 근거가 있습니다.
지방의원의 조례 발의 실적을 알아보겠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15년 8월에 내놓은 ‘광역의회 의정활동 현황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광역의회 의원 1인당 연평균 조례 제·개정 건수는 0.88건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2017년에는 광역의회 의원 1인당 연평균 조례 제·개정 건수가 2.6건으로, 4년 간 의원 1인당 10.4건에 해당합니다.
19대 국회 의원발의 건을 살펴보면, 법안 1만 5,172건 중 가결된 법안은 1,746건으로 4년간 국회의원 1인당 5.8건에 불과하지요.
단순 비교를 하더라도 국회의원에 비해 지방의원의 조례발의 건수가 높습니다만 국회의원의 직접 보좌인력(9명)을 비롯해 사무처와 전문위원실, 예산정책처, 입법조사처, 국회도서관, 국회의정연구원 등 간접 보좌 인력까지 합치면 의원 1인당 수십 명이 보좌하는 셈입니다.
반면 지방의원의 실정은 어떤가요. 기초의회인 강원도 춘천시의회의 경우 재적 의원 21명에 직원 24명으로 의원 1인당 1.14명에 불과하고 서울시 도봉구의회도 의원 1인당 보좌인력 2명으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광역의회도 대동소이합니다. 서울시의회는 직원 350명으로 의원 1인당 3.3명가량입니다. 물론 이 가운데 별정직과 계약직이 176명으로 전체 직원의 절반을 넘습니다.
지방자치법 제90조 사무처 등의 설치에 관한 규정을 보면 지방의회에 사무를 처리하기 위해 사무처를 둘 수 있으나 딱 거기까지입니다. 반면에 국회는 사무처 외에 입법조사처와 예산정책처 등 조직이 방대합니다.
지방의원들이 우수한 의정활동을 하기 위한 조건으로는 사무국 직원 증원과 전문위원실 인력 보강이 필요합니다.
4. 조례 발의의 핵심 '목표 설정과 고민'
저는 제9대 서울시의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2017년 9월 기준으로 26건의 조례를 발의했습니다. 해마다 3~5건 정도 발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만의 조례 발의 팁을 살짝 공개할게요.
김용석의 TIP 먼저 조례 발의는 지방의원의 고유한 입법 활동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1년을 기준으로 두 번의 정례회와 약 8~9번의 임시회가 열린다면 회기마다 2~3건의 조례를 발의한다는 목표로 의정활동에 임했습니다. 2~3건을 발의하려면 사실 머릿속에는 6~7건의 조례를 고민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아무런 고민 없이 조례를 발의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발의하려는 조례안의 3~4배를 고민해야 합니다. 진행과정에서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법적으로 발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거나 의회나 집행부에서 유보되기도 하니까요.
그다음으로는 ‘고민’이 필요해요. 9대 때 조례 발의 관련 파일을 만들어 활용했습니다. 사회적 이슈나 서울시에서 일어나는 일들, 서울시민의 안전 등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시에서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전문성을 갖추고 제대로 하는지를 찾아보며 제도화해 어떻게 안전성을 확보할 것인지를 고민했습니다. 제 경우에는 소속 상임위의 안건이나 이슈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늘 관심을 기울이고 입법화 부분까지 고민했습니다.
제가 발의한 조례 중 전국에서 처음으로 만든 ‘청년기본조례’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청년 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고 그 수준이 단순 일자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용과 공간, 거주에 이르기까지 복잡해지는데 청년기본법이 없는 게 현실이죠. 그렇다고 해서 청년 문제를 방치해둘 수는 없고요. 이를 어떻게 풀어갈지 고민을 참 많이 했습니다.
조례를 발의하려면 근거 법령이 있어야 하는데 청년기본법이 없는 상황에서 청년기본조례는 청년고용촉진에관한특별법을 모티브로 해서 탄생했습니다. 다행히 서울시도 청년 정책에 관심이 있다 보니 협력하고 청년 당사자들과 공청회도 열어 발의하게 되었습니다.
2014년에 청년 관련 예산을 산출하니 300억 원가량이었는데 올해 1,600억 원으로 늘어났더라고요. 추경까지 포함하면 대략 2,000억 원 정도 되리라고 봅니다. 조례가 제정되고 관련 부서가 만들어지며 사업이 확대되면서 청년 관련 예산이 늘어나니 청년에게 혜택이 돌아갑니다.
지금까지 청년들은 공부와 취업 준비에만 매달리느라 지방자치단체에 무언가를 요구하는 세력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청년들이 목소리를 내고 그것이 정책에까지 반영되고 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 밖에 자치법규정보시스템을 서핑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어 제정한 ‘드론 지원 조례’나 ‘남북협력기금조례’, 의회 홈페이지나 의원들과의 교류를 통해 벤치마킹한 ‘김치산업진흥 조례’와 ‘청소년 의회교실 지원 조례’, ‘폐지 줍는 어르신 지원 조례’나 ‘세월호 추모 조례’의 경우 국회 홈페이지나 언론보도 등에서 착안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조례 발의는 주변에 대한 관심과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