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이 지배하는 사회

  • 등록 2019.01.10 09: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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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

 

 

‘1% 대 99%의 양극화 사회’ 유령

현실 참여 좌파 지식인들이 2008년 국제 금융위기 이래 대중 정서를 자극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면서 한국 사회는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시장만능주의 정책으로 인해 ‘가진 자 1% 대 갖지 못한 자 99%,’ 즉 ‘1%

대 99%’ 양극화 사회가 되었다는 유령을 만들어 냈다. 그들은 자유주의 체제, 즉 자유시장경제를 비판하면서 경제민주화를 주장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다. 그 선두에 장하성 교수가 있다. 그가 책에서 케인즈 주의에 입각한 보편 복지 단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사회가 한국자본주의의 현실이라고 한 것은 날조에 가까

운 과장이다.

 

1965년 이후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칠 때까지 32년은 60년대에 시작한 산업화 마무리와 민주화라는 정치적 격동기를 거친 기간으로서 제대로 된 자유자본주의 체제, 정상적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갖춘다는 것은 불가

능했다. 자본주의 체제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경우 수백 년이 걸렸다. 이제 우리는 압축성장이라는 비정상적 성장단계에서 발생한 모순들을 해소하고 정상적 자유자본주의 체제, 정상적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갖추

어야 할 단계에 와있다.

 

한국의 자유자본주의 체제는 후진국 수준이고 자유시장경제 체제는 국가시장경제, 관치시장경제 수준에 머물고 있다. 350여 개 회원사, 1,000여 개 업체, 50,000여 명을 고용하고 있는 주한 유럽상공회의소는 2018년 11월 발표한 규제 백서에서 한국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갈라파고스 규제 국가’ 라고 규정하였고 주한 미상공회의소는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는 조사 대상 기업인 모두를 범죄자로 취급한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장하성 교수는 우파 지식인들이 주장하듯 규제 과잉 국가가 아닌 규제 결핍 국가라고 단언하면서 경제를 시장에만 맡겨둘 수 없다고 강변하였다.

 

그동안 압축성장으로 인해 생겨난 모순들을 극복하려는 정권 차원의 지속적인 노력은 없었고 뒤따라오는 정권이 앞서 간 정권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데만 몰두함으로써 모순은 오히려 누적되어 왔을 뿐이다. 자신들

의 판단과 기준으로 한국의 천민자본주의 체제를 모두가 다 함께 잘 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로 대체하기 위해 건국 이래 견지해오던 경제 체제를 뿌리 채 바꿔놓겠다는 발상 만큼 잘못되고 위험한 것은 없다. 성공 가능성보다 실패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체제를 포기할 수 없다면 자유자본주의 체제와 자유시장 경제 역시 포기할 수 없다.

 

자유시장경제의 생명은 경쟁과 성취에 있고 경쟁과 성취를 통하여 인간은 자립하고 개인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게 된다. 경쟁은 불평등과 양극화를 낳는 근원이 아니라 창조와 성취를 가져다주는 최선의 길이며 부를 안겨주는 가장 빠른 길이다.

 

격차 줄이는 것은 자유주의 원리에 맞게 

자본가와 노동자는 법치주의 정신을 존중하면서 공정한 거래를 하는 관계다. 성장과 분배가 동반자여야 하지만 언제나 앞서는 것은 성장이여야만 한다. 노동이 자본을 압도하고 분배가 앞서는 성장은 있어본 적이 없다.

이렇게 되면 자유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가 질식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장하성 교수를 비롯한 좌파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경쟁을 불평등의 원인으로 규정하고 노동을 자본 위에 놓으면서 결과적 평등

분배를 사회 정의로 내세우는 평등주의 체제가 되면 개인은 정부와 당, 정치인과 관료들의 하수인이 되고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 길은 그동안 우리가 이루어놓은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또

다시 빈곤의 계곡으로 추락하는 길이다.

 

우리 사회는 빈부의 차이가 있는 사회이지만 1% 대 99% 양극화 사회는 아니다.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빈부의 차이는 커질 것이다. 그러한 차이를 좁혀가는 것은 자유주의 원리에 맞게 처리해가야지 평등주의 원리를 작용하려는 유혹을 받게 되면 모든 것을 그르칠 수 있다. 

 

노동 현장에서 착취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대기업주는 죄인 취급을 받고 노동세력은 정권의 대주주처럼 기세등등하지만, 글로벌 시장경쟁에서 선두 주자가 되려면 규모의 경제가 절대로 필요하고 더 많은 대기업 출현이 필요한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불완전한 자유시장경제 체제는 난타당하고 있다. 

 

정상적 자유시장경제 체제 구축이 과제 

우리 경제의 당면 과제는 2008년 이래 좌파지식인들이 만들어낸 유령을 쫓아내고 관치 시장경제 틀에서 벗어나 선진국 수준의 정상적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선진국 수준의 법치주의 환경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모순을 빌미로 자유시장경제 체제 자체를 바꾸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모순을 해소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한 가지는 혁명적으로 바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 체제 골간을 유지

하면서 점차적으로 개선·보완해 가는 것이다. 후자의 방법을 택하는 것이 순리이고 현실적이다.

 

좌파 정부가 좌파적 가치관에 입각하여 경제 정책을 추진하려고 하는 것은 그들로서는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 경제 정책을 둘러싼 논쟁과 시비는 가치관을 둘러싼 시비이자 자유주의 대 평등주의라는 사상 차원의 논쟁이자 시비다. 가치관, 사상을 함께 하는 여당과 제1 야당 간의 정책적 시비라면 타협이 가능하지만 가치관, 사상을 달리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타협은 불가능하고 오직 양자택일만이 가능할 뿐이다. 따라서 가치관, 사상을 둔 충돌은 피할 수 없고 오래갈 수밖에 없다.

 

장하성 교수는 의미 있는 교훈을 남기고 청와대를 떠났다. 국가는 학자의 실험 장소가 될 수 없고 국민은 학자의 실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이다. 정부에 참여하는 학자는 결코 책임지는 일이 없고 자신의 이

론과 주장에 대한 비판을 어떤 경우에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으며 반박 논리를 제시함에 있어서는 달인들이다. 우리는 결코 그들이 만들어 낸 실체가 없는 유령의 희생제물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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