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일 미국 경제매체 CNN비즈니스는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각국 정부의 부채가 97조 달러(약 13경481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수준이며, 이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국민들의 생활수준도 점점 위협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정치인들이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각국이 굵직한 선거를 앞둔 가운데 정치인들이 유권자를 의식해 재정 적자 문제를 외면하고 증세나 재정지출 축소 등 해결 방안에 대해 솔직히 말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일부 국가에서는 정치인들이 선심성 공약을 내세우는데, 자칫하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거나 심하면 금융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한다.
미국의 정부부채는 전 세계 부채의 1/3을 상회하는 34조 7000억 달러(약 4경 7848조원)에 달하는데 이 정도의 심각한 부채 문제에도 불구하고 11월 대선을 앞두고 최근 열린 대선 후보 첫 토론에서 민주당, 공화당 양당 모두 재정 준칙에 대한 공약을 내놓지 않았다. 미 연방정부는 이번 회계연도에 이자 비용으로 국방예산(8천500억 달러)보다 많은 8천920억 달러(약 1천239조원)를 지출할 전망이다.
미 의회예산처(CBO)는 30조 달러(약 4경원) 이상의 부채에 대해 내년에는 1조 달러(약 1천390조원) 이상의 이자가 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부채가 10년 뒤에는 국내총생산(GDP)의 122%, 2054년에는 166%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캐런 디난 교수는 미국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증세 등이 필요하다면서 "필요하지만 어려운 선택에 대해 (정치인) 다수가 말하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부채에 대해 "더 이상 공짜가 아니다"라면서 이제 2010년대와 같은 저금리가 아니며 금리 상승으로 이자 부담이 커졌다고 밝혔다.
특히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미국의 높은 부채 규모를 지적하며 "우리가 지닌 부채 수준은 계속 이어지겠지만, 이에 따라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은 지속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4일 총선을 앞둔 영국에서도 정치인들이 부채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
싱크탱크 재정연구소(IFS)는 최근 보수당·노동당이 모두 공공서비스 개선 등을 공약하면서도 자금 조달 계획은 제대로 제시하지 않았다면서 "양당 모두 침묵하자는 모의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극우 돌풍을 잠재우기 위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조기 총선 승부수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간 가운데, 정국에 대한 우려로 프랑스 국채 금리가 오름세를 이어가는 상황이다.
이처럼 정부부채 규모가 커지면 부채 상환 비용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금융 위기나 전염병, 전쟁과 같은 위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공공 자금이 줄어들게 된다.
아울러 국가 부채에 대한 우려로 정부 채권 수익률이 높아져, 가계와 기업이 갚아야 할 대출 이자 비용도 오르게 된다. 정부 채권 수익률은 주택담보대출 등 다른 부채 가격을 책정하는 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결국 경제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 가계, 기업이 짊어진 빚을 모두 합한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2.7배에 달해 주요국 11위 수준으로 나타났다. 5년 전에는 24위로 주요국 평균을 밑돌았지만 거의 매해 부채가 가파르게 늘어나 이제는 선진국 평균마저 앞질렀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가총부채(정부+가계+기업)는 지난해 말 기준 269.8%로 선진국(264.3%) 평균을 5.5%포인트 웃돌았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을 앞선 10개국은 △홍콩(441.7%) △룩셈부르크(407.9%) △일본(398.8%) △싱가포르(347%) △프랑스(320.4%) △캐나다(312.1%) △스위스(294.4%) △벨기에(293.3%) △중국(283.4%) △노르웨이(273.1%) 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