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사회로 가는 길

  • 등록 2023.02.01 13: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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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소방방재청 정책개발분석팀장으로 전입한 이후 방재대책과장, 두 번의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 근무,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정책과장, 국민안전처 정책기획관, 생활안전정책관, 안전총괄기획관, 행정안전부 재난관리정책관, 재난협력실장, 재난관리실장 등 역임

 

지난해 여름 공직 생활을 마친 내가 퇴직을 체감하는 것은 한량처럼 지내는 생활보다 대규모 재난사고 발생 소식이다. 반사적으로 무언가 하려다가 곧 “아! 내가 퇴직했지” 하고 그만두곤 한다. 2005년 신설 소방방재청에 처음 전입한 이후 재난관리업무는 내게서 몇 번의 멀어질 기회에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의 재난안전관리는 많은 발전이 있었다. 재난안전기본법을 비롯한 많은 법이 제·개정됐고 조직과 인력이 확충됐으며 안전문화·교육, 매뉴얼, 정보시스템, R&D, 재난 안전산업, 사회재난 관리, 수습 지원, 복구 등에 큰 발전이 있었다. 그럼에도 재난은 여전히 빈틈을 찾아 발생한다. 이태원 참사와 과천 방음터널 화재 사고 등 최근 발생한 사고를 보면서 그 예방책이 이전에 마련해놓을 수는 없었는지 내가 담당했던 업무들을 곱씹어보고 관계되는 몇 가지를 되짚어본다.

 

먼저, 재난징후 관리의 전면적 도입이다. 모든 생물은 감각 기관을 통해 위험을 감지하고, 두뇌를 통해 이를 인지·판단해 신체가 신속히 대응하게 함으로써 생존한다. 이에 성공한 생물들은 살아남고 실패하면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재난 관리도 위험을 감지하는 징후 관리가 첫걸음이다. 풍수해 등 자연 재난의 경우 이 역할을 기상청이 기상예보로 해준다. 그러나 화재나 붕괴, 이번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회재난은 각 기관이 소관 분야 또는 지역의 재난 징후를 항상 모니터링하고 평가해야 한다. 그 결과 재난 징후가 있으면 관련 기관 간 정보를 공유하고 상호 협력해 사전점검 등 예방과 대비·대응체계를 신속히 작동해야 한다. 모든 생물이 그 생존을 위해 위험을 관리하듯이 부처와 지자체, 나아가 기업 등 모든 재난 관리주체의 소관 재난징후관리 도입·시행은 그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다음으로 재난관리 전문 인력의 양성이다. 재난관리는 어느 업무보다 오랜 경험으로 숙련돼야 재난 시 당황하지 않고 대응할 수 있는 업무이다. 그런데 상황 근무와 빈번한 비상대기, 재난 발생 시 책임 문제 등으로 재난업무는 기피 업무가 돼 유능한 인력들이 오지 않고 와도 바로 떠나려 한다. 그런데도 재난부서장을 인사 숨통 트는 자리로 인식, 무경험자 배치나 보직 경로 관리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반복되는 사고에도 대응은 매번 미숙할 수밖에 없다. 이는 지자체도 그렇지만 중앙부처도 마찬가지로 대규모 재난 시 잠깐 지적됐다가 도돌이표가 붙은 듯 반복된다. 재난부서에 대한 원칙 있는 인사, 재난관리 자격증 제도 도입, 재난부서 장기근무 유도를 위한 인센티브 등이 과감하게 도입돼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 재난관리를 스마트화, 고도화하는 일이다. 이를 가능하게 할 기술들이 무르익고 그 기반들도 갖춰져 가고 있다. 최근 각종 위험 감지 센서와 CCTV, 사물인터넷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고 활용도 되고 있다. 여기에 오랜 세월 동안 추진해왔던 재난안전통신망이 2021년 완공됐고, 전자지도 위에 관련 기관 간 재난 상황을 공유할 수 있는 GIS통합상황관리시스템도 이미 개발 활용되고 있다. 디지털 기반인 재난안전통신망으로 지자체, 소방, 경찰, 산림기관 등이 스마트 통신단말기로 무전통신은 물론 업무 앱을 통해 현장 점검, 수배 차량 단속, 이재민 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할 수도 있다. 또한 GIS통합상황관리시스템을 통해 노후 교량, 건물, 급경사지, 산불 발생, 홍수 수위 등을 IoT 센서로 모니터링하고 소방차, 산불 헬기 등 재난 대응 세력과 각종 재난자원의 위치를 표출해 일선 현장에서 중앙의 컨트롤 타워까지 모든 기관이 실시간 상황을 공유하여 대응 작전을 진행할 수 있다. 재난관리의 발전을 위해 소방, 지자체 등 각 기관이 재난안전통신망과 GIS통합상황시스템, 그리고 위험 감지 센서와 사물인터넷 등 기술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활용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재난 안전산업의 육성이다. 재난 안전을 공공영역에서 몸으로 때워 하는 시대는 지났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재난 안전산업은 재난 안전 관리에 공적 부문만이 아니라 민간의 기술개발과 혁신역량을 활용해 효과성을 제고한다. 재난 안전산업 육성을 통해 재난관리는 물론 기업에서 국민 개개인까지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관련 각종 기술과 장비, 기기, 서비스들이 개발되고 활용이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재난 안전산업의 육성이야말로 재난관리의 고도화로 가는 최종 단계라 할 수 있다.

 

안전에 대한 욕구 증대로 재난 안전산업에 대한 수요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그 성장 가능성도 크다. 마침 올해 1월 새로 제정된 ‘재난산업진흥법’이 시행됐다. 이 법의 시행으로 재난안전 산업의 획기적인 발전이 기대된다. 그러나 재난안전 기업 대부분은 아직 영세하고 그 수요 기반은 공공 부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법 취지를 뒷받침할 예산이나 조직도 미진하고, 민간 분야의 자생적 조직을 육성할 기반도 부족하다. 법이 시행된 만큼 체계적인 산업 육성 전략과 계획이 수립돼 강력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는데 재난관리도 대규모 재난 피해로 발전해왔다. 이태원 참사는 우리의 재난안전관리 체계에 큰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제 그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해야 할 때다. 무엇보다 과거 대규모 참사에 마련했던 제도나 원칙이 흐지부지된 것이 없는지도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욕구 5단계론을 보면 안전에 대한 욕구가 인간의 두 번째 단계의 기초욕구이다. 20세기 국가는 첫 단계인 생리적 욕구를 사회복지 정책으로 어느 정도 구현했다. 이제 국가는 그다음 단계인 국민의 안전 욕구에 적극 응답해야 한다. 이번 참사에 대한 대책이 단순 동일 유형의 사고를 막는 데 머물지 않고 안전 복지를 이루는 사회, 안전 사회로 가는 길을 여는 데 기여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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