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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지역화폐, 그리고 지역경제 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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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위기 속 전 세계 주목받는 기본소득
경제정책 및 사회정책의 기조가 시장주의와 성과주의에 경도돼왔던 미국과 영국 등의 신자유주의적 정책 성향이 매우 강했던 나라들에서조차 기본소득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이는 정부 재원으로 국민의 소득을 보전해주고 이를 통해 국민이 팬데믹 경제위기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아주 절박한 정책적 문제의식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여파로 급속히 냉각되기 시작한 민생, 서민경제를 살리기 위해 현 정부는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원했다. 이를 계기로 이와 같은 정부가 지원하는 대국민 현금 지급 정책을 상시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기 시작하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토론과 논쟁은 학계 또는 시민사회 영역을 넘어 지금은 보수정당으로 볼 수 있는 국민의힘 김종인 대표가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 기본소득을 향후의 핵심 정책 어젠다로 내세우면서 이제 정치권에서도 그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기본소득 담론을 정치권에서는 가장 먼저 대중화해온 이재명 경기지사의 정책적 노력과 그 선도적 문제의식이 기본소득 논쟁의 정치적 확대 재생산에 기여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렇듯 국내외 정세 전반을 고려해서 볼 때, 지금은 기본소득의 시대임에 틀림없다. 기본소득과 같은, 고통에 허덕이는 국민에 대해 국가가 현금을 지원하는 파격적인 정책을 취하지 않고서는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든 것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기본소득, 즉 모든 이들에게 차별 없이 또 동일하게 지급하는 기본소득이 지역경제 활성화의 동력(Seed Money)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토대로 이를 지역화폐로 지급하자는 주장과 그 정책이 국민의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이는 기본소득 지급의 필요성은 고조되고 있고, 특정 지역에서만 사용하고 또 유통되는 지역화폐가 그 지역 중소 자영업자들의 매출을 늘려 고용도 늘어나고 나아가 부가가치세까지 늘어나게 하는 지역경제적 선순환을 이뤄냈다는 객관적 사실을 국민이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기본소득박람회에 소개된 스페인 익스베소스 지역화폐
경기도는 지난 9월 11일에 제2회 기본소득박람회의 국제콘퍼런스에 ‘기본소득, 지역화폐, 지역경제 살리기’라는 세션을 편성해 관련 논의가 심층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판’을 깔아주었다. 우연히도 지역화폐를 연구해온 필자가 그 세션의 좌장을 맡았는데, 발제자였던 스페인의 수산나 마틴 벨몬테 박사가 소개한 기본소득의 지역화폐화 사례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북동부 익스베소스의 빈곤 지역 600여 가구를 대상으로 지급하는 ‘B-Mincome’으로 불리는 기본소득의 25%를 그 지역에서만 발행, 통용되는 REC(Real Economy Currency)라고 하는 지역화폐로 지급하면서 기본소득을 통해 빈곤 주민을 구제함과 동시에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그곳의 기본소득은 2018년 9월부터 지급되기 시작했는데, 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한 기간은 약 1년 정도다. 기본소득 정책을 도입한 것부터 관련 여러 정책적인 기획들을 주관한 것은 해당 지역에서 활동하는 협동조합 등과 같은 시민사회 단체와 이들의 의견을 존중해온 바르셀로나시의회였다. 빈곤 지역 600여 가구에 대해 매월 1,000유로(약 140만 원)를 지급해오고 있는데, 그중 25%는 13개월간 지역화폐로 지급했다. 한화로 약 27.3억 원 정도, 그러니까 우리나라 지역사랑상품권 발행량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적은 돈이 지역 내에서만 돌고 도는 ‘종잣돈’으로 유통됐다. 이와 같은 기본소득의 지역화폐로의 지급 실험은 투입 예산이 매우 적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지역경제에 대한 파급 효과, 즉 골목상권 승수 효과는 19.5%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이는 유로화의 무려 5배나 높은 수치임을 주목해야 한다. 그간 지역경제적 차원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피폐화 일변도를 보여왔던 빈곤지역 익스베소스가 기본소득과 지역화폐가 접합된 정책적, 시민실천적 대응을 계기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골목상권의 영세 자영업자들의 매출이 늘고, 그들에 의한 고용이 늘어나며, 나아가 이 루트로 인한 주민 소득 증대와 기본소득 지급이 맞물리면서 빈곤 주민들의 실질 소비 능력이 탄탄해졌다. 그 결과 다시 골목상권이 활성화됐고 또 그 지역 생산자들의 생산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스페인 최악의 빈곤 지역에, 필자가 그간 강조해온 지역 ‘내발적 발전(endogenous Development)’, 즉 ‘지역 순환형 경제’가 구축되고 있다. 이렇듯 기본소득과 지역화폐의 조합은 놀라운 성과를 발휘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해서 빈곤 지역 주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주고 또 그 지역경제 역시 활성화하는 데 맨 처음의 과정은 공적자금 지원에 의해 담보되는 것이지만, 그 후에 연쇄적으로 나타나는 일련의 지역경제 활성화 과정은 기본소득과 지역화폐에 의해 ‘살아나기’ 시작한 지역경제의 자체적인 회복 루트에 의해 담보됐다는 점이다. 바르셀로나 익스베소스 지역뿐만 아니라 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하고 있는 더 많은 사례를 폭넓게 검토해봐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기본소득과 지역화폐의 접합이 초래하는 효과를 더욱 탄탄하게 일반화하기 위해서는 그런 작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Co-Production이 필수 키워드 되어야
익스베소스 지역의 경우와 달리 우리나라는 그 ‘규모’가 차원이 다르다. 전 국민 또는 전 지역민을 대상으로 지급할 것을 계획하는 우리나라의 기본소득 구상과 무려 그 발행량이 스페인 REC에 비해 무려 100배 이상이나 많은 우리나라 지역화폐 정책이 조합되면, 스페인 사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지역경제 효과가 창출될 수 있다. 지금의 지역화폐가 경기, 인천, 군산, 포항 등지에서 상당한 수준의 지역경제 승수 효과를 창출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시도를 구상하고 또 이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경기도의 정책 대응은 정책 현실에 대한 매우 정확한 판단에 기인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단, 중요한 과제가 하나 있다. 세션 발제자 수산나 마틴 벨몬테 박사는 지역화폐의 영어표기를 ‘Local Currency’가 아닌 ‘Citizen Currency’로 사용했다.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화폐이기 이전에 그 정책 프로젝트 전반에 시민이 참여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필자 역시 그간 지역화폐는 ‘시민의,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화폐여야 지역화폐의 발행량도 더 늘일 수 있게 되고 그 유통 속도 역시 더 높일 수 있음을 강조해왔다. 그는 스페인 북동부 지역 실험은 기본소득과 지역화폐 정책이 ‘Co-Production’에 의해 기획, 추진, 관리됨으로써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 지역화폐의 본질이 화폐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더 높이는 것에 있다는 점, 시민의 참여와 관심이 지역화폐의 성패를 좌우하는 점, 나아가 민과 관 간의 협치가 정책이 가야 할 이상형(ideal type)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시도에도 ‘Co-Production’은 반드시 키워드가 돼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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